▲색이 검고 발이 많이 달린 설게김정혜
제가 남편과 결혼하고 맞은 첫 봄에 아버님께서 잡아오신 설게를 처음 보았습니다. 색깔이 좀 거무죽죽하여 약간 징그럽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적 아주 두메산골에서 자라 계곡에서 가재잡고 놀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설게란 것이 그렇게 징그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님께서 얼큰하고 시원하게 끓인 설게탕과 고소한 설게 튀김으로 저녁상을 차리셨습니다. 아버님은 그 저녁상을 앞에 놓고 그날 하루 설기 잡았던 무용담을 신나게 풀어놓으셨습니다.
"애미야! 설게가 구멍으로 튀어 나올 땐 정말 신바람이 나더구나. 그럴 때 한바탕 봄 바다에 대고 크게 '뻥이요'하고 소리치면 가슴은 또 얼마나 시원해지는데" 하시며 안 해 본 사람은 도저히 그 쾌감을 알 수 없다며 자랑이 대단하십니다.
또 생전 처음 그 설게를 마주한 제게 설게탕이 얼마나 시원하며 설게튀김이 얼마나 고소한지를 설명하시느라 열변을 토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과 남편은 아버님의 그 열변에 그저 묵묵부답 그 어떤 반응도 없을 뿐더러 설게탕과 설게튀김에는 숟가락 한 번 젓가락 한 번 대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아버님이 왜 그렇게 외로워 보이던지. 저는 아버님의 그 외로운 열변에 열렬한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해서 설게탕을 한 번 떠먹고 설게튀김을 하나 집어 먹어 보았습니다.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설게탕이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뭔가 싸르르 하는 그 얼큰함과 시원함에 두 번 세 번 숟가락질을 하게 되고, 설게튀김 역시 바삭거리는 고소함이 오징어 튀김이나 야채 튀김은 저리 가라더군요.
그날 이후 저는 아버님의 설게 찬양론에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아버님의 지지자를 한 사람 더 만들었습니다. 바로 올해 일곱 살 된 제 딸아이입니다. 무엇이든 아무 거나 잘 먹는 제 딸아이도 다른 어떤 튀김보다도 설게 튀김을 좋아한답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자태를 뽐내는 봄이 오면 또 그 봄이 일요일 저녁을 만나면 우리 집 저녁풍경은 진정 행복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펄펄 뛰는 바다 내음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아버님의 바다 나들이. 설게가 갯구멍에서 펄쩍하고 튀어 오를 때의 그 환희와 "뻥이요"하고 외칠 때의 그 통쾌함. 그 일련의 것들을 눈으로 보는 듯하게 구구절절 침을 튀기시며 들려주시는 아버님.
그런 무용담을 두 귀 쫑긋 세우고 듣다가 제 때에 튀어나오는 제 맞장구. 얼큰하고 시원한 설게 매운탕과 고소한 설게 튀김에서 피어오르는 아버님의 그 열정.
그건 감사함인 것 같습니다. 칠순의 연세에도 일요일이면 바다를 찾으시는 아버님의 건강과 그 열정이 못내 감사하기에 설게 매운탕도 설게튀김도,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듯이 그렇게 맛있나 봅니다.
올해도 이렇게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버님은 어김없이 일요일을 바다에서 보내실 것입니다. 더불어 저는 이 봄에 몸과 마음이 더욱 더 살찔 것 같습니다. 아버님의 그 열정에 대한 감사함으로 마음의 살이 찔 것이고, 설게로 인하여 몸이 살찔 것 같습니다.
올 봄엔 저도 아버님을 따라 자주 바다에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님과 좋은 시간을 많이 만들려 합니다. 그런 좋은 시간이 내년에도 후 내년에도 그렇게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그리고 이 맏며느리가 아버님을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한답니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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