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개선할 점 많다

문화재청 주최 '중요무형문화재제도 개선 연구결과 발표'에서 전문가들 지적

등록 2005.04.16 06:11수정 2005.04.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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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2시부터 국립고궁박물관(경복궁내 구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는 음악·무용·연극·공예·놀이와 의식 ·음식·무예 등 무형문화재를 7개 분야별로 나눠 지난해부터 연구를 시작한 "중요무형문화재 제도 개선에 대한 연구결과의 발표"가 문화재청 주최로 열렸다.

a 고궁박물관 강당 발표회장

고궁박물관 강당 발표회장 ⓒ 곽교신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인사말에서 "무로 깍두기를 담그기는 쉽지만 담근 깍두기의 맛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비유로 시행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정책에 손을 대는 일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오후 6시 20분까지 장장 4시간 20분간 진행된 이번 연구 발표의 주제는 '중요무형문화재의 분류체계 및 지원관리방안'으로 되어 있었으나, 발표 내용은 현행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의 대표적인 문제점들을 비교적 상세히 언급했다.

제도 전반을 총괄적으로 연구한 이필영(한남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기초자료 조사 단계부터 엄격한 관리가 시작되어야 한다"면서, 현행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과정을 "임기응변식, 투망식 심의 지정"으로까지 표현하며, "무형의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이고 완벽한 조사 연구"가 제도 개선의 정점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일단 지정받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자 및 지정자 주변의 '권력화' 현상에 대해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 "문화권력화 현상"은 오늘날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의 본 뜻이 훼손되는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 교수의 '권력화' 언급은 중요무형문화재 기 지정자들이 제도 본 뜻을 망각하는 행위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문화재청이 연구자의 발표 형식을 빌려 스스로 '문화권력화'를 공개 지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음악분야를 연구한 신대철(강릉대 음악과) 교수는, 운동장 경연을 위하여 농사 현장의 모습을 버리고 '무대음악화'한 농악을 예로 들면서, 일부 종목이 무형문화재 지정 후 오히려 자연스런 원형을 훼손당한 채로 2세대 전승이 완료 단계에 접어들어가고 있는 심각성을 지적했다.


공예분야를 맡은 장경희(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주로 혈족에게 내리물림으로 기능이 세습되는 공예부문의 특성상, 사제간 전수에 인센티브를 주어 혈족 외의 기능 전달이 활발하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대목장 보유자가 참가해 복원한 경복궁 내부에 보유자들이 제작한 전통공예품 대신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싸구려 모조품들이 들어가 있는 부조화를 꼬집으며, 보유자 공예작품들의 전시 공간 확보도 지원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놀이와 의식 분야를 맡은 김명자(안동대 민속학) 교수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것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지름길인 현 심의조사 과정상의 부적절한 문제를 제기했다.

또, 많은 지역에 분포되어있던 강강수월래를 마치 진도 해남에서만 놀던 놀이로 인식하게 만드는 강강수월래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예로 들면서, 부문 대표성에 대한 정확한 검증의 필요성도 지적했다.

분류체계와 명칭의 중요성

이번 발표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의 분류체계 및 지원관리방안'이라는 주제에도 나타나 있듯이 각 분야의 명칭에 대한 세부적인 지적이 눈길을 끌었다.

평택·이리·강릉 농악과 달리 '임실필봉농악'처럼 행정구역 단위를 다르게 부르거나, 원래 합주 구성요소의 한 단위인 대금, 정악을 따로 떼어 지정한 경우 등의 지적(신대철 교수)이나 '안동차전놀이'처럼 의미가 중첩되어, 마치 "이발을 깍다"가 된 경우의 지적(김명자 교수) 등 명칭에 대한 예민한 지적이 많았다.

각 부문의 명칭이 차지하는 상징성과 대표성을 생각할 때, 오랫동안 이에 대해 별 생각없이 썼다는 것이 무형문화재 제도에 대한 그간의 무관심을 대변하는게 아닌가 한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문상원 과장(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은 "오늘의 발표는 정책 당국의 무형문화재 정책 개선 의지를 확고히 밝히는 일종의 중간 제의이지 이것이 결코 방향 제시의 전부는 아니다"는 점을 기자에게 강조하며 앞으로의 일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 내용들이 무형문화재 정책의 알파요 오메가는 아니겠으나 적어도 향후 무형문화재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이었음에도, 200여석의 크지 않은 발표회장에 끝까지 경청한 '관객'이 불과 50여명이던 모습은 전문가 그룹의 무형문화재에 대한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자리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현장에서는 더 큰 목소리로 불만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작년 가을 국회공청회 이후 불과 5개월의 짧은 연구기간에 제한된 인원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의 모든 문제점을 시원히 풀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이필영 교수가 '난맥상'이라 단적으로 표현한 문제들이 솔직하게 해부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이러한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가 거듭될 때 '무형문화재 관리의 선진국'이라는 외국 학자들의 인정이 진정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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