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으면서도 쓰고 그린다

광수생각 그 네 번째 이야기 <광수 광수씨 광수놈>

등록 2005.04.18 11:12수정 2005.04.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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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광수 광수씨 광수놈>

책 <광수 광수씨 광수놈> ⓒ 랜덤하우스중앙

조선일보에 꾸준히 연재되었던 <광수생각>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과 글이 주는 풋풋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책 또한 꽤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동안 뜸하던 그의 글과 그림이 다시 책으로 편찬되어 나왔다.

책이 나오지 않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시련을 경험한 그의 글은 조금 성숙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기존에 보이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낭만적 스토리보다 ‘세상에 대한 외침과 냉철한 인식’이 덧붙여진 점에서 색다르다.


다른 <광수생각>들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의 사생활을 문제 삼아 많은 ‘욕’을 먹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만화가의 상상력이란 항상 샘솟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만 어디서 인용을 하여도 ‘표절이 많다’는 등의 비판 또한 박광수를 늘 따라다녔다.

책 <광수 광수씨 광수놈>은 그러한 점에서 철저히 자기비판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다른 매체에서 감동 받은 이야기를 각색하여 전달하면서 ‘어디어디에서 참조하였음’이라는 댓글을 다는 것. 이것은 기존의 박광수표 만화와 글에 대한 다른 이들의 비판을 작가가 수용적 태도로 승화하였음을 보여 준다.

어떻게 보면 정말 그가 지극히 ‘순수한’ 사람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던진 비판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글과 만화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제목조차 <…… 광수놈>이 아닌가.

조금 냉소적인 태도가 엿보여서 기존의 풋풋함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솔직하게 문제점을 인정하는 태도는 그의 만화 세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책의 첫 표지에서 “어느 순간 날개를 잃어버렸다. 날고 싶은, 그러나 날개를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라는 말로 자기표현을 시도한다.

그가 잃어버린 날개를 다시 찾았는지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아직은 모두 찾진 못했으나 그래도 날 수 있는 방법은 찾았다’고 말하고 싶다. 철저한 자기반성이 이루어질 때에 그 사람은 날 수 있지 않겠는가. 책의 머리말을 장식하는 두 대조적 글이 그것을 보여 준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라는 제목에 달려 있는 그의 특성. ‘부모님께 효도하려 애쓰고 불우이웃돕기에 앞장서고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하는’ 등의 착한 성격들은 그를 차지하는 한 모습이다. 반면에 나쁜 모습들도 대조적으로 제시된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 – 나는 부모님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는 놈이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다. 나는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 명령 80시간을 받은 놈이다. 나는 시간 약속이나 원고 마감을 잘 지키지 않는 놈이다. 나는 힘들 때면 노약자에게 자리를 비켜 주지 않으려 못 본체 하는 놈이다.”


그럼 그는 과연 나쁜 사람인가, 착한 사람인가? 이런 모순적 행동은 사실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이며, 그가 이처럼 자신의 행동을 까발려 말하게 된 데에는 많은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그에 대한 비판이 있을지라도 솔직한 모든 인간의 특성을 예리하게 발견하고 위트 있게 전달하는 만화가적 재주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만화를 읽는 목적 또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단순한 그림과 글로 표현된 단세포적인 매체. 하지만 그 속에 오묘하고 고귀하며 깊이 있는 삶의 진실이 담겨 있을 때 우리는 ‘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박광수의 글과 그림이 바로 그런 매력이 있기에 많은 이들이 그 만화에 감동을 받는 것이다.

“내 냄비의 물이 빨리 끓는다고 좋아할 것 없다.”
“작은 냄비의 물이 빨리 끓는 법이다.”


그렇다. 누군가가 이런 작은 발견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화가들은 작고 작은 네모 칸들과 말풍선을 갖고 세상의 지혜를 재미있게 담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부단한 노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한 어머니가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어머니는 단 한번만, 단 한번만, 5분만이라도 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들을 5분 동안 만나게 해 드릴게요. 그런데 몇 살 때의 아들을 만나게 해 드릴까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언젠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나에게 사과하러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오던 그때의 내 아이를 만나게 해 주세요. 그때 그 아이는 너무 어려서 무척 낙심하고 있었어요. 눈물로 얼룩진 애처로운 그때 그 애를 만나, 다시 한 번 내 사랑과 온기를 전해 주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박광수의 글은 따뜻하다. 그리고 재치가 있다. 우리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삶의 어떤 특별한 지혜들을 누군가의 글과 그림을 통해 깨닫는다면 그 작가는 작가적 임무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새 책 <광수 광수씨 광수놈>은 잃어버린 날개를 달고 다시 날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인다.

광수 광수씨 광수놈 - 개정판

박광수 지음,
홍익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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