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장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5.04.18 11:33수정 2005.04.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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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후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아까울 정도로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지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뜻밖에 그의 남편과 함께 와서 드라이브를 하자고 합니다.


청주의 벚꽃을 보려면 무심천과 산성에 올라야 합니다. 청주대학교 뒤 우회도로를 가며 아직까지 남아있는 벚꽃과 개나리, 또 한창 피어나는 진달래의 군락지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올해의 유행색이 핑크라고 하던데 진달래 색깔만큼 예쁜 색이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딸기라도 먹고 갈까요?”

지인의 제안에 파라솔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웬일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한가합니다. 그때 마이크 소리가 산골짜기를 타고 들려옵니다. 무슨 소린가 귀를 기울여 보니 농작물을 심는 요령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였습니다.

a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주말농장 전경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주말농장 전경 ⓒ 허선행

저희 일행은 그 소리에 이끌려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늑한 곳에 위치한 꽤 넓은 밭에서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더 큰 긴 호미를 든 어린아이부터 나이 드신 어른들까지 보입니다. 파라솔 밑에서 못 본 사람들이 그곳에 다 모여 있었습니다.

'주말체험농장'이 개장하는 날이라고 어떤 분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미 10평씩 두부모처럼 조각 낸 땅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이 꽂혀 있었습니다.“지금이라도 신청해도 되나요?”같이 간 지인이 친정어머니 소일거리로 채소를 가꾸면 좋겠다고 선뜻 신청의사를 밝혔습니다.

사실 저는 겁이 났습니다.‘씨만 뿌려 놓고 가꾸지 못해 풀밭이 되면 어쩌나’‘따가운 햇볕에 나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엄두가 나지 않아 저는 신청도 못했습니다. 신청해 놓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어야 추가 신청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며 연락처를 적어 놓고 가라고 합니다.


지인이 신청을 하는 동안 저는 밭에서 열심히 씨를 뿌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까지 데리고 와서 땀을 흘리며 농사짓는 모습이 마냥 부럽습니다. 놀이공원이며 야외로 놀러가는 쪽보다 농장에서 채소를 가꿔보려는 그들의 마음이 갸륵하기까지 합니다.

오늘은 상추, 쑥갓, 열무를 심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밭으로 넘어가는 넝쿨식물은 안 되고 진딧물이 꼬이는 식물도 안 된다고 합니다. 여럿이 농사짓는 곳이라 약간의 제약이 있는 듯 했습니다.


시청의 공무원이 다른 곳에도 주말농장이 있다며 소개를 해 줍니다. 저는 누가 농사지으면 뜯어다 먹는 걸 해야겠다고 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노인복지마을의 텃밭에서 아는 분이 가꾼 상추를 얻어다 먹은 적이 있습니다. 손수 가꾼 분들의 정성이 들어 있어서인지 더 맛있었습니다. 모처럼의 봄나들이에서 땀 흘려 일하는 분들을 보니 그들이 가꾼 채소들이 쑥쑥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주말농장 이야길 했더니 “혹시 신청 한 거 아니야?” 하며 깜짝 놀랍니다. 농사라고는 지어 본 적이 없으니 겁이 나는 모양입니다. 어떤 집은 남자분이 더 서둘러 신청한다던데 우리는 아무래도 부창부수인가 봅니다.

‘집에서 수경재배라도 해 볼까?’

아파트에서 스티로폼 박스에다 각종 채소를 가꾸는 분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추며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있어 마냥 신기했었습니다. 봄이 내 마음에도 와 있는 걸까요? 아니면 주말농장에서 본 광경 때문인지 채소를 가꿔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듭니다.

‘볕 좋은 베란다에 모종 몇 그루만이라도 심어볼까?’

이제라도 빈 화분을 챙겨 주말농장의 흉내를 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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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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