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내 도시락을 빼앗았어요"

호주, 초등학교 도시락 검사 도입에 잡음 무성

등록 2005.04.20 09:52수정 2005.04.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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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이상 세대라면 학창시절 공포의 점심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다름 아니라 보리와 잡곡이 섞인 혼식 도시락 검사 때문이다. 그 때 그 시절, 그로 인해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이 일순간 긴장된 순간으로 변하곤 하던….

선생님의 판단 하에 혼식 불량 판정을 받을 경우 그 날 점심은 굶은 채 도시락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교무실 앞에서 무릎 꿇고 반성(?)을 해야 했다. 일부 약삭빠른 아이들은 옆 친구의 도시락에서 보리 몇 알갱이를 '뽑아다가' 제 도시락 위에 '심기까지' 했었다.

선생님들도 이런 얌체족에 질세라 아무래도 수상쩍다 싶을 때면 "도시락을 거꾸로 엎어라"라고 해 아이들의 허를 찔러 '보리심기'를 한 아이들을 기어이 색출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일이다.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한국의 70년대 점심시간 풍경이 뜬금없게도 호주에서 재현될 조짐이다.

호주 퀸스랜드주 교육부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도시락 검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점심시간에 습관적으로 먹는 초콜릿이나 감자칩, 과자, 사탕, 주스 등 인스턴트식품이 소아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도시락 검사를 통해 학교에 가져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이다.

매 점심시간마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일일이 검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끼리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친구들을 선생님께 제보하도록 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만약 인스턴트 군것질 거리를 가지고 온 아이는 도시락을 뺏고 그 날 점심은 굶긴 채 집에 갈 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심코 인스턴트 음식을 넣어준 학부모는 학기말에 학교로 불려가 '해명을 요구하는 문초'를 당해야 한다.

교육부는 호주의 2세에서 17세 사이의 어린이와 청소년 4명 중 1명이 과체중이나 비만인 것으로 조사돼 어릴 적부터 식습관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이 같은 강경책을 시행키로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교사나 학부모 심지어 영양사들조차 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철저히 단속을 한다고 해도 집에서까지 먹는 것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교육목적이라 해도 도시락까지 빼앗아가며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다는 것이 교사들이 이 방침을 반대하는 이유다.


한편 영양사들은 초콜릿이나 감자칩을 못 먹게 한다고 해서 당장 영양 밸런스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아동들의 도시락 내용물을 강제로 규제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고생하는 호주 아동들과 청소년들의 식습관 개선은 사실상 시급한 상황이다. 평소 식단도 고 칼로리에 고 지방이 주를 이루는 데다 간식이나 도시락에서조차 신선한 과일 등의 영양 균형을 갖춘 먹을거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식습관에 대한 획기적 개선과 대안이 없는 한 당뇨나 뇌졸중, 심장마비 등 성인질환을 앓는 10대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날 추세이다. 그렇게 되면 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들의 평균 수명이 부모세대보다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식습관을 심어주고 건강을 되찾아 주기위해 마련된 호주 퀸스랜드 교육부의 '도시락 검사' 방침. 하지만 시작도 전에 잡음이 너무 심하다.

덧붙이는 글 | <한국 교육신문> 에 공동게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한국 교육신문> 에 공동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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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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