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원권 지폐 속의 율곡은 '서양인'이었다?

[지식뉴스] 영국인 시각에서 만든 '서양 율곡'... 5년 후에야 교체

등록 2005.04.20 17:44수정 2005.04.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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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월 처음 발행된 5000원권(위)과 77년 6월에 나온 현행 5000원.
1972년 7월 처음 발행된 5000원권(위)과 77년 6월에 나온 현행 5000원.
최첨단 위·변조방지기능을 갖춘 새 지폐가 내년 상반기부터 통용된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씨 성을 가진 남자' 3명(세종대왕 포함)을 위주로 된 지폐 인물 도안이 바뀌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가질 사람도 있겠지만, 한때나마 우리 지폐에 '서양사람'의 초상을 담았다가 교체한 해프닝을 생각하면 화폐도안 변경이 쉽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율곡 이이의 초상을 담은 5000원권이 처음 발행된 것은 1972년 7월이었다. 지금의 화폐(사진 아래쪽)와 비교해보면 인물 초상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72년 디자인된 지폐 속의 율곡은 오똑한 콧날에 날카로운 눈매, 갸름하고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마치 서양사람이 정자관(程子冠)을 썼다는 느낌을 준다. 5000원권이 처음 도입될 때 국내 기술수준으로는 은행권 원판을 만들 수 없어서 영국의 화폐제조사(Thomas De La Rue)에 5000원권 제작을 의뢰한 것이 이 같은 결과를 빚어냈다.

영국인 화폐 디자이너가 조각가 김정숙씨가 만든 율곡 동상을 토대로 원판을 도안했지만,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동양인의 이목구비를 구현하다보니 우리 정서에 전혀 맞지 않는 율곡 초상이 만들어졌다.

'서양 율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5000원 화폐는 시중에 유통되면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고, 정부는 77년 6월이 되어서야 이종상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을 토대로 새로운 5000원권을 발행했다.

반면, 75년 8월 발행된 1000원권 속의 퇴계 이황은 또 다른 측면에서 뒷말을 낳았다. 1만원권의 세종대왕과 5000원권의 이이에 비해 몹시 야위고 병약한 인상의 이황 모습을 담아 형평성 논란이 생긴 것이다.


1000원권의 초상은 훗날 표준영정으로 추인된 이유태 화백의 작품인데 "이황이 어려서부터 잔병이 많고 마른 체형이었다"는 고증이 나오면서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5000원권 화폐의 변천사는 일국의 화폐가 그 나라의 기술과 정서를 반영해야 한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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