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김지영
거 사극에 가끔씩 나오는 투전 판에서 길다란 종이 두 장을 빼꼼히 바라보며 상대방의 인상을 훑는 그런 장면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판돈이 별로 없는 저는 그것 없어지면 털고 일어날 요량이었죠.
어쨌든 저도 그 쌈지 돈을 밑천으로 노름에 끼어 들었습니다. 시간은 이미 상당히 늦어 있었죠. 이게 소위 포커페이스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이더군요. 제가 워낙 착한(?) 인상인지라 조금만 표정관리를 잘해도 상대방이 쉽게 넘어갔습니다.
제 수중으로 지폐 다발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한겨울이었고 새까맣던 밤이 어느새 동쪽 창문 밖으로 하얗게 지워질 때 게임이 종료가 되었는데 제 수중으로 지폐 다발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렇게 판돈이 큰 놀음판도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많이 따보기는 죽을 때까지도 없을 일 같습니다.
하여간 그런 노름판 뒤의 관례 대로 많이 잃으신 어르신들 순서에 입각해서 약간씩의 밑전을 떼주고 나니 백 만 원이 넘는 돈이 제 수중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뒷주머니 불룩하게 튀어나오고 묵직하게 엉덩이를 누르는 기분 좋은 압박감을 생각하면 놀음에 목 매는 사람들 심정을 알겠더군요. 1992년 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에헤라디야, 기분 좋게 어머님 계신 집으로 가고 있는데 무전기 만한 모토로라 휴대폰이 '띠리리링' 소리도 요란하게 차 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여보세요?”
“선배! 나야~”
저와 결혼을 앞둔 지금의 아내였습니다.
“어! 아니 이 시간에 웬일이야.”
“엥! 몰랐어? 오늘 예물 하러 새벽 같이 서울 가기로 했잖아?”
“어어…. 그랬지. 모르긴 왜 몰라, 그러지 않아도 지금 거기로 가는 중인데.”
깜빡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날이 예물 하러 서울 세운상가에 있는 제 선배 형의 보석가게를 찾아가는 날이었습니다. 예물이라고 해봐야 비록 금가락지 한 쌍과 실용적인 시계 정도로, 그것도 선배를 등에 업고 싼 가격으로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본 백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손목시계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썩 도덕적이진 못했지만 뜻하지 않게 예물을 해결하는데 대단한 밑천이 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환상적인 보석가게에서 눈이 돌아간 아내는 아주 검소하게 금가락지 한 쌍으로 만족하기로 했던 저와의 굳은 약속을 여지없이 깨버렸습니다.
결혼해서 신혼 초 친구들 모임에만 세상 빛을 잠깐씩 보았던 아내의 반지에는 조그만 다이아몬드가 박혀야 했죠. 어쨌든 아직까지 매일매일 저를 움직이게 하는 손목의 시계 역시도 그때 노구를 이끌고 사무실 책상에서 밤을 지새며 돈을 잃어야 했던 어르신들의 덕택으로 8년이 넘은 지금까지 끄떡없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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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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