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60

남한산성 - 말을 달려라!

등록 2005.04.21 16:59수정 2005.04.2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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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폐하 납시오!"

처음으로 남한산성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선의 원군까지 쫓아낸 청나라 군대는 또 하나의 희소식을 접하고서는 크게 사기가 올랐다. 청의 황제 홍타이지가 친위병을 이끌고 남한산성에 다다른 것이었다. 병사들과 장수들이 땅에 엎드린 가운데 홍타이지는 그 위세를 뽐내듯 천천히 단위에 올라 의자에 걸터앉은 후 용골대를 불렀다.


"예! 황제폐하!"
"조선에서는 강화할 뜻이 없다고 하는가?"
"강화할 뜻이 있다면 응당 재상과 세자를 내어놓으라 했으나 저들이 듣지 않사옵니다."

홍타이지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앞에 펼쳐진 남한산성을 바라보았다.

"산성의 방비는 어떤가?"
"얼마 전 성 밖으로 나와 공격해온 조선군을 크게 물리쳤사옵니다."

홍타이지는 의자바닥을 우렁찬 소리가 나도록 내려쳤고 청의 대신과 장군들은 그 모습에 크게 움츠러들었다.

"너희들이 맡은 바는 조선군이 성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공격을 퍼붓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조선군이 밖으로 나와 도리어 우리 군을 치려고 했단 말이냐?"


용골대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황제의 질책어린 말에 대답했다.

"조선의 길이 험하여 대군이 일시에 들이닥치지 못하였고, 성안의 조선군은 비록 그 수가 적으나 단단한 성벽을 의지해 버티고 있어 섣불리 공격하면 우리 군의 희생이 큽니다."


홍타이지는 천천히 자리에 일어서 남한산성을 바라보았다.

"통사 정명수는 앞으로 나오라."

"예 폐하!"

정명수가 재빨리 앞으로 나왔고 홍타이지는 그를 앞세우고 남한산성을 둘러보고 오겠노라 명했다. 정명수의 옆에 있다가 청나라 황제의 모습을 볼 기회를 얻은 계화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황제까지 왔다면 청에 있는 병력은 모두 조선 땅에 왔다는 것이 아닌가? 이제 무슨 수로 저들을 막아낼꼬!'

수시로 자신을 부르는 정명수가 홍타이지를 수행하고 있으니 도망을 친다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명수는 사람을 보내어 계화가 홍타이지의 수행 대열에 합류할 것을 지시했다.

"저 조선여인은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인가?"

정명수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홍타이지에게 말했다.

"저 여인이 여진어와 문자를 알기에 데려 왔사옵니다. 조선에서는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그 말에 홍타이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여진어로 계화에게 말했다.

"진중의 생활은 할 만 하느냐? 불편한 것은 없더냐?"

계화는 떨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런 불편함이 없사옵니다."

"폐하 제가 외람되오나 한마디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정명수가 간교한 눈빛을 번득이며 청을 올리자 홍타이지는 이를 가벼이 받아들였고 정명수는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어 올렸다.

"이 두루마리에 여진의 문자로 조선의 긴밀한 일이 적혀 있음이 틀림없사온데, 저 여인이 글을 알면서도 읽어주지를 않습니다."

홍타이지는 여진 문자를 읽을 줄 알았기에 두루마리를 펼쳐보더니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것은 여진의 전승을 기록해 놓은 것뿐이니라. 네가 잘못 보았구나!"

정명수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지나가려는 찰나, 웃으며 두루마리를 계속 읽던 홍타이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커지며 방금 전의 큰 웃음을 거두고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두루마리는 어디서 구했느냐?"
"듣기로는 남한산성에서 구했다고 하옵니다."
"이 두루마리는 온전치 않다. 나머지 부분을 찾아내면 크게 득이 있을 것이니 구해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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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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