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59

남한산성 - 말을 달려라!

등록 2005.04.19 17:01수정 2005.04.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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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래 칼솜씨가 별로 는 것 같디 않구만!"

이진걸은 장판수의 칼과 부딪쳐 서로 밀어내는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여유 만만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이진걸의 얼굴은 온통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이마에는 핏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순간 장판수는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이진걸을 힘껏 밀어내었고 그 기세에 주춤거리는 이진걸의 가슴팍을 베어버렸다. 장판수는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힘쓸 때 기렇게 말이 길면 좋지 않습네다!"

장판수는 가슴팍을 잡고 뒹구는 이진걸을 바라보면서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일어나시라우요. 칼이 먹힌 곳이 살이 아니라는 걸 압네다."

이진걸은 킬킬거리며 잽싸게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이진걸은 옷 안에 두꺼운 면갑(면으로 된 갑옷)을 겹쳐 입고 있었다.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새에 확 찔러버리지 않고 뭐했네?"


"다가가면 엎어진 자세에서 발모가지를 베어 버리려는 속셈인가 알고 있습네다. 이번에는 그쪽에서 한번 들어 오시라우요."

"니야 말로 말이 많디!"


이진걸의 칼이 칼등을 위로한 채 슬쩍 들여 올려졌다. 그와 동시에 이진걸은 한발을 맹렬히 내딛으며 장판수의 머리를 향해 하늘에서 칼을 수직으로 내리꽂듯이 바람처럼 돌진해 들어왔다. 그 일격은 너무나 세차고 빨라 장판수로서는 피할 엄두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죽는다! 물러서기에 늦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장판수는 몸을 피하는 대신 자신도 모르게 칼을 든 손을 주욱 뻗었고 그와 동시에 섬뜩한 생명의 마지막 전율이 팔을 타고 전해져 왔다. 이진걸은 배에서 선혈을 뿜으며 서서히 주저앉았다.

"니래 이겼구만."

장판수는 만약을 대비해 떨어진 칼을 발로 치운 후 이진걸의 상처를 보려했지만 그는 손을 내밀어 거부했다.

"내래 틀렸어. 찔리고 베인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이번에는 전혀 아프지가 않아. 그냥 정신이 흐려지는 게 정말 죽으려나봐…."

이진걸은 숨을 헐떡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래 널 죽이려고 했다고 마지막 말까지 허투루 듣지 말디… 이 길로 가서 전란이 끝날 때 까지 숨어 지내라우. 그러면 니래 오랫동안 살 수 있어…."

"날 왜 죽이래 했습니까? 누가 시킨 것입네까?"

이진걸은 입에서 피를 토해내더니 장판수가 자신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게 답답한지 찡그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니래 너무 고지식해. 기래서 죽이려는 거디. 별 뜻은 없었어."

말을 마친 이진걸은 마치 잠이라도 드는 듯이 눈을 서서히 감고 한차례 몸을 떨더니 숨을 거두었다. 장판수는 두 구의 시체를 길옆으로 치우며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당신들이래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해치려다 목숨을 잃은 것이네?"

장판수는 어릴 때부터 보아온 죽음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아버지는 명나라 군사들의 횡포를 보다 못해 뛰어 들었기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지만 지키고 빼앗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목숨을 잃은 이유가 별 것이 아니라 해도 살아가는 이유는 뭐 그리 대단한 거 있어? 죽이려 하고 죽임을 당한다는 거… 기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어. 그래서 무서운 것이지만 굉장한 건 전혀 아니지. 기렇다면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어도 살아서 내 소임을 다하는 것이 하찮은 일은 아닌 게 아닌가? 이진걸의 말은 틀렸어.'

장판수는 씁쓸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수원에 이르러서 전라도에서 올라온 원군이 머지않은 곳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장판수는 잠시 쉴 틈도 없이 수원에서 말을 빌려 타고선 원군이 머물러 있다는 진영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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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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