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봉투속에서 나온 건, 바로 35장의 상품권

어차피 보는 TV, TV도 보고 상품도 타고 그게 바로 일석이조

등록 2005.04.22 06:52수정 2005.04.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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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가 온 시골동네를 뿌옇게 덮어 버렸습니다. 아름답고 고고한 자태를 한껏 뽐내던 자목련도, 노란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던 개나리도, 봄날의 불청객인 황사에 맥을 못 추고 모두 기진맥진한 듯 고개를 움츠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의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창을 활짝 열고 오늘은 또 누구 집에 무슨 꽃이 새로운 봄날 아침을 맞이하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고개를 있는 대로 빼곤 두리번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건만, 황사는 무슨 심술보가 터져 버렸는지 오늘은 제 시야를 뿌옇게 가려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잠깐의 눈요기가 아쉬워 자꾸만 눈을 비벼가며 길게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다다다다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체부아저씨가 탄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 일찍부터 까치가 요란스럽게 울어대던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칩니다.

집 앞에 오토바이를 세운 우체부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제게로 다가섰습니다. "오늘은 봉투가 꽤 묵직합니다."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주간지며 월간지며 책이며 또 그 외 우편물로 인하여, 우체부아저씨는 일주일에 한 서너 번은 우리 집 앞에 그렇게 오토바이를 멈추십니다.

주간지나 월간지나 책은 모두 제가 돈 한 푼 안내고 구독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방송에 사연이 나가고 그 상품으로 정기구독권을 주시기에 공짜로 보는 것들이며, 책들은 제가 모월간지의 북 모니터 요원이기에 또 그곳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것들과 아는 지인들이 좋은 책이 있으면 고맙게도 발 빠르게 구입을 해서 보내주고 있는 것들입니다.

하여 우체부아저씨는 매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그렇게 책을 많이 보냐며 넌지시 저의 정체를 물어 보시지만 저는 아저씨의 그 궁금증을 어떻게 풀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딱히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아무런 그 무엇도 없을 뿐더러, 참으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줌마이기 때문에 그럴 땐 그냥 실없이 웃고 맙니다. 그러나 이렇게 방송국에서 가끔 우편물이 올 때는 그 궁금증이 극에 달하기도 합니다.

"그 묵직한 봉투 안에 뭐가 들었습니까. 도대체 방송국에서 뭘 보내준 겁니까."


매번 실없이 웃고 말았지만, 이번만큼은 아저씨의 그 궁금증을 풀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궁금하시면 한번 뜯어보죠 뭐."

아저씨 눈은 마치 철없는 어린애가 할머니 주머니에서 어떤 맛난 과자가 나오나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그런 신기함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봉투겉면엔 'KBS 도전지구 탐험대'라고 적혀 있었기에 저는 이미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우체부아저씨의 그 궁금증을 증폭 시켜 주기 위해 "도대체 무엇이 들었는데 이렇게 묵직한 거야. 돈 다발이라도 들었나…"했습니다. 봉투의 입을 열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건, 바로 35장의 관광 상품권이었습니다.

만원권으로 35장이나 되는 상품권.
만원권으로 35장이나 되는 상품권.김정혜
아저씨는,

"이게 뭐예요. 돈은 아닌 것 같고 관광 상품권, 이거 어디다 쓰는 거예요?"
"이거요? 이 걸로 놀이동산도 갈 수 있고,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가서 물건도 살 수 있고, 음식점에 가서 외식도 할 수 있고, 미장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요."
"그럼 돈이나 마찬가지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거 주는 건데요."
"시청자퀴즈에 응모하면 추첨해서 주는 거예요. 그런데 당첨되기가 아주 힘들어요. 작년에도 한 번 당첨 되었는데 그때도 응모한 지 7개월만에 당첨이 되었고, 이번엔 거의 1년만에 이렇게 당첨이 된 거예요. 끈질기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당첨도 되니까 아저씨도 한번 해보세요."

아저씨는 빳빳한 35장의 상품권을 몇 번이나 만져보더니 못내 아쉬운 듯 미련어린 눈길을 제게 남겨두곤 오토바이를 타고 뿌연 황사 속으로 휑하니 사라졌습니다.

만 원 권으로 서른다섯 장이나 되는 관광 상품권! 그건 KBS '도전지구탐험대'라는 프로의 시청자퀴즈에 응모를 했다가 운 좋게도 당첨이 되어서 그 선물로 제게 온 것이었습니다.

작년 4월경에도 한번 받았으니, 꼭 일 년만에 다시 당첨이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 그 상품권을 받아들었을 때, 아니 TV화면 당첨자 명단에서 제 아이디를 확인하는 순간, 정말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쾌감을 느꼈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그 달콤한 늦잠도 마다하고 TV 앞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을 했습니다. 그리곤 맨 마지막에 나오는 퀴즈에 응모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응모만 계속될 뿐 당첨의 기회는 7개월이 다 되 가도록 제게 찾아오지 않더군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끈질기게 응모를 하였습니다. 결국 퀴즈에 응모한 지 장장 7개월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만 원권으로 30장의 관광 상품권이 우송되어 왔더군요.

그 상품권을 처음 손에 받아 들었을 땐 단순히 관광하는 데만 사용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용처를…. 작년 8월. 부산 사는 동생네가 쌍둥이 조카들을 데리고 여름휴가를 왔을 때 저는 누나로서 또 고모로서 아주 의기양양하게 한턱 크게 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상품권으로 용인 에버랜드를 갔었습니다. 입장료에서부터 안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 타는 것까지 또 맛있는 간식까지. 그날 두 쌍둥이들과 제 딸아이는 더운 줄도 모르고 아주 신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에버랜드에서 하루종일 신이 났던 딸아이와 쌍둥이 조카들.
에버랜드에서 하루종일 신이 났던 딸아이와 쌍둥이 조카들.김정혜
그렇게 쓰고도 몇 장이 남았습니다. 그건 바로 딸아이가 미장원갈 때마다 한 장씩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달까지. 미장원에서는 만 원 권 한 장을 주면 오히려 2000원을 거슬러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 년만에 또 이렇게 당첨이 되어 작년보다 오만원이 더 늘어난 자그마치 35만원어치의 관광 상품권이 우송되어 온 것입니다.

시청자퀴즈! 그건 제 평범한 일상에 뜻하지 않은 깜짝 보너스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시청자퀴즈가 있는 프로는 거의 다 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결과 MP3, 백화점 상품권, 문화상품권, 29인치 완전 평면 TV,밀폐용기 세트, 식기건조기, 식품건조기, 화장품 세트. 이렇게 나열해보니 지난 일 년간 꽤 많은 상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일 년이 훌쩍 넘도록 응모를 하고도 아직 당첨이 한 번도 안 된 프로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응모하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당첨의 행운이 깜짝 보너스가 되어 제게 짜릿한 행복으로 덮쳐올 테니까요. 어차피 보는 TV. TV도 보고 상품도 타고 바로 그것이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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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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