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계 5029', NSC가 면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

[기고-최재천 의원] '합참 보고 없어서 몰랐다' 면책 이유 안돼

등록 2005.04.22 13:53수정 2005.04.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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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계 5029'에 대한 문제제기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의 반론이 있었다.

반론을 요약하자면 첫째, 한미 양국은 2003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작계5029' 수립이 아닌 '개념계획 5029'의 수정에 합의한 바 있다. 둘째, 그런 차원에서 2004년부터 한미연합사의 실무협의가 있었고 2004년 여름부터 미측에서 개념계획을 작계화하는 쪽으로 의견을 들고 나왔으며, NSC는 2004년 12월에야 합참으로부터 처음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NSC의 대응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NSC의 말대로 작계화의 가능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NSC 스스로 무능함을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04년 8월에 합참이 작계화의 계획을 미측으로부터 통보받고도 12월에야 NSC에 보고했다는 말을 믿기로 하자. 이 또한 기획·조정 기능을 생명으로 삼는 NSC의 무능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넉 달 이상 보고받지 못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

최소한 넉 달 이상 보고받지 못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 또한 NSC가 보유한 조정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징표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일이다(만일 국방부 혹은 합참에의 책임전가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최근 '전략적 유연성' 논란에서 외교부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와 다를 바 있겠는가?).

NSC에 대한 대통령의 기대는 이랬다.

“대통령은 국정원,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로부터 전체 안보상황에 대한 중요한 국가정보들을 접수받아 대응책을 마련하고, 정보를 각 부처가 공유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확대·강화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국무회의 2003년 3월 18일 : NSC 2004년 3월 발행 <참여정부의 안보정책구상 평화번영과 국가안보> 중에서 인용)


“국가안전보장회의운영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제14조는 NSC 사무처의 직무를 이렇게 정했다.

△ 국가안전보장전략의 기획 및 수립 △ 국가안전보장 관련 중장기 정책의 수립 및 조정 △ 국가안전보장 관련 현안정책 및 업무의 조정 △ 국가안전보장 관련 정보의 종합 및 처리체계 관리 등이다.


또한 규정에 따르면 주1회 소집되는 상임위원회(여기에는 외교·국방장관은 물론이고 국정원장까지 참석하며, NSC사무차장은 당연 배석이다), 역시 매주 소집되는 실무조정회의(안보관계부처 차관보급 참석), 정세평가회의(격주) 등의 회의가 열린다. 더구나 실무조정회의와 정세평가회의는 사무차장이 이를 소집, 운영한다고 정한다(규정 제12조 제3항).

이런 NSC의 설립목적, 법과 규정이 정한 NSC의 기본임무, 대통령이 특별히 부여한 정보종합처리 및 분석임무에 비추어 볼 때 NSC의 반박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외교 협상시 어휘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한정지은 뒤 합의에 응하는 것이 ABC

4월 21일자 <문화일보> 기사에 또 하나의 진실 혹은 또 하나의 이해 못할 부분이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와 문화일보 기자와의 통화내용이다.

“지난 2003년 11월 합의문에는 ‘개념계획을 재작성한다’고만 돼 있는데, 미국은 그것을 ‘작전 계획으로 간다’고 우리랑 다르게 해석했다. 주한미군은 작전계획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고 우리는 개념계획으로만 생각한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때 ‘재작성’을 의미한 단어는 ‘rewrite'였다. 이를 두고 한국은 '수정'으로 해석한 것이고 미국은 '전면 재작성'을 의미하는 '작계로 간다'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외교 협상에 있어 법적·전략적 의미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단어의 경우, 협상시 이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하고, 그 해석을 한정지은 뒤 합의에 응하는 것은 외교의 ABC에 해당한다. 외교 안보분야의 최고 조정기능을 보유한 NSC가 이런 것조차 기획·조정하지 못했다는 게 과연 변명이 될 수 있을까?

SCM이나 한미미래동맹회의(FOTA)는 열리기 전 NSC에서 반드시 기획조정을 하고 회의가 끝난 직후에는 평가회의를 하는 것이 참여정부 NSC의 확립된 전통이다. 그렇다면 2003년 11월 NSC는 이런 협상에 대해서 어떤 지침을 내렸고 어떤 보고를 받았나?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진실공방은 간단한 일이다. 2003년 11월을 전후부터 올 1월까지의 NSC 관련 회의록과 외교전문, 정부훈령, 대통령에 대한 보고 문서를 공개한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이것은 밀행주의·비밀주의 외교를 벗어던지고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지향하는 참여정부의 NSC 입장에서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개념계획'에서 '개념계획'으로의 수정은 당시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일

그리고 덧붙일 게 있다. 백 보를 양보해서 '수정'의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수정'의 의미에는 ‘개념계획’에서 ‘개념계획’으로의 경우가 포함되겠지만, 한 나라의 NCS라면 거기에는 '개념계획'에서 '작전계획'으로의 의미도 포함될 수 있다거나, 혹은 상황변화에 따라 예정될 수 있음을 예지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더구나 '개념계획'에서 '개념계획'으로의 수정은 당시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의미의 수정은 별도의 합의가 필요 없다).

2003년 겨울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둘러 싼 주변 강국들의 각축이나 북핵문제의 악화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이 급속도로 변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NSC가 파악하고 있었다면, 작계화로의 가능성은 당연히 검토대상이었어야만 한다. 2003년 이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언제라도 발생가능한 각각의 시나리오를 예정하고 거기에 대해서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 각종 매뉴얼이나 사전 대응방안을 만들어 보라는 것은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보고가 없어서 몰랐다는 게 반박이 될 수 있는 걸까? NSC 설립초기라면 보고 시스템의 잘못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2년이 다 된 시점에서 이런 반박이 가능한 일일까?

2004년 2월에 열린 제7차 FOTA 회의 당시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의미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유사시 증원군의 한반도로의 배치(flow-in)를 위해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NSC가 미국이 생각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개념 혹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한미 양국의 대응태세를 성찰하고 있었다면 이 때 이미 미국 측의 전략변화를 읽어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전략적 유연성의 하위 개념 차원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공세적 군사계획은 작계화의 요구와도 당연히 연결될 것이다.

평시 작전권은 이미 한국군의 소유이다. 전시 작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다. 급변사태는 전시가 아니다. 급변사태에 대해 한미연합사가 공동으로 작전계획을 마련한다는 것은 평시 작전권의 대부분을 회수해 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작계화 논의의 진행방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그것도 합참으로부터 한참 뒤에야 보고 받았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합참의 보고가 없어서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면책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혹여 NSC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워낙 중요한 문제라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신중히 검토한 다음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내부적으로만 논의하고 결정은 미루어 둔 것이라고.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결정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략적 모호성'을 외피로 모든 국가적 결단을 무작정 미루기만 하는 것은 '책임의 부정에의 회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또한 직무태만에 불과할 것이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특히 '작계 5029'와 같이 주권 문제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은 내부 논의를 거쳐 대통령께 보고하고, 그 훈령을 받아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합참의 보고가 없어서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면책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법률 격언 중에 "법의 부지(不知)는 용서되지 아니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책의 부지(不知)' '전략의 부지(不知)'는 용서될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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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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