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눈꽃처럼 피었어요

토라진 아이의 마음을 달래준 벚꽃

등록 2005.04.23 16:50수정 2005.04.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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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는 제 아빠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아이는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유치원을 가지 않는 토요일. 아이는 제 아빠도 집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 하나 봅니다.


“아빠! 그럼 복희는 언제 아빠하고 놀아. 다른 날은 복희가 유치원 가니까 안 되고, 오늘은 아빠가 일하러 가야니까 안 되고….”

남편은 그런 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한참을 품에 안고 다독거립니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아닌 남편은 언제고 일이 있으면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일터로 가야 하기에, 아이의 그런 애타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지만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떼를 쓰는 아이가 안쓰러워 그렇게 한참을 품에서 떼어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나간 후. 아이는 있는 대로 풀이 죽어 그저 멍하니 제 아빠가 사라져간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난데없이 아이의 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밤에 눈이 왔나봐. 저 나무에 하얗게 눈꽃이 피었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어 아이의 아침을 챙기던 저는 가까이 가서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집 건너 영미네 집 앞에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벚꽃이 아주 탐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활짝 만개하지 않았었건만 밤사이 아이의 말처럼 나무에 눈이 내린 것처럼 어찌나 소복하고 탐스럽게 꽃송이들이 폈는지….


a 눈꽃처럼 탐스럽게 피어 있는 벚꽃

눈꽃처럼 탐스럽게 피어 있는 벚꽃 ⓒ 김정혜

지난해 겨울, 눈이 내렸을 때는 그 나무에 탐스러운 눈꽃이 피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한참 눈꽃구경을 하였던지라 멀리서 바라본 그 탐스러운 벚꽃송이들이 아이 눈에는 마치 눈꽃송이처럼 보였나봅니다. 좀 전까지도 잔뜩 풀이 죽어 있던 아이의 얼굴엔 어느새 하얀 웃음이 번져나고 있었습니다.

“엄마! 우리 구경하러 가자. 그리고 나. 사진 찍어주세요.”


워낙에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사진 찍을 생각에 제 아빠와의 슬픈 헤어짐은 벌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니 역시 '아이는 아이구나' 싶었습니다.

안 그래도 우울한 아이의 기분을 어떻게 달래주나 내내 고민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얼른 아침을 먹여 아이를 데리고 벚꽃구경을 나갔습니다. 정말 벚꽃이 탐스럽게도 송이송이 달려 있더군요.

a 파란 하늘에 탐스럽게 수 놓아진 벚꽃송이

파란 하늘에 탐스럽게 수 놓아진 벚꽃송이 ⓒ 김정혜

누군가 벚꽃이 팝콘을 닮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기도 하고 하얀 솜뭉치를 얹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 입에서나 제 입에서나 연신 "와 예쁘다" 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정신없이 그 벚꽃나무 아래를 뱅뱅 돌아다니던 아이는, “엄마. 나 집에 가서 곰돌이 데리고 올래. 곰돌이에게도 꽃구경 시켜 줘야지” 합니다.

아이는 넘어질세라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곤 제 몸집 만한 곰돌이를 안고 나왔습니다. 아이는 곰돌이를 안고 예쁘게 포즈를 취했습니다. 하얀 벚꽃나무 아래에선 딸아이와 곰돌이는 눈이 부시도록 예뻤습니다.

a 곰돌이를 안고 예쁘게 포즈를 취한 딸아이.

곰돌이를 안고 예쁘게 포즈를 취한 딸아이. ⓒ 김정혜


a 곰돌이를 안고 마냥 신이 난 딸아이.

곰돌이를 안고 마냥 신이 난 딸아이.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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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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