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에피소드] 신랑, 야수로 돌변하다

등록 2005.04.24 09:58수정 2005.06.0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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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는 결혼식 날 아침, 멋쟁이 신랑으로 다시 태어날 당신이 뜻하지 않게 야수와 같이 흉측한 얼굴로 둔갑한다면 당신은 그 모습으로 결혼식장에 당당하게 들어설 수 있을까요?


활짝 핀 봄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이상 주체하지 못하고 마냥 지쳐버리기만 할 즈음에 우리의 결혼식 날짜는 다섯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성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이 즈음해서 내 아내가 될 여인은 들뜬 마음으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긴 뭐 멋진 남자와 한평생을 함께 할 기대로 가득 차 있는 처녀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지요.

물론 결혼식을 앞둔 나 역시 여느 신랑과 다름없이 들뜨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곧 겪어야 할 새신랑의 독특한 통과의례를 생각할 때면 들뜨고 설레는 마음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새신랑의 끔찍한 통과의례

당시만 해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결혼식 날은, 신랑에게는 아주 끔찍한 날로 기억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어떤 신랑들은 짓궂은 친구들에게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발바닥을 맞기도 했고 또 어떤 신랑은 승용차 트렁크에 연결된 줄에 손을 묶인 채 맨발의 마라토너와 같은 꼴로 온 시내를 뛰어 다니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이보다 더 험한 장면도 종종 볼 수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내가 직접 고난의 주인공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장면은 결혼식이 많이 치러지는 봄, 가을에 마치 꽃구경이나 단풍구경을 하듯 흔하면서도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곧 내가 그 수난을 당해야할 판이었으니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없었지요.

이러한 수난을 피하기 위해 며칠을 고심한 끝에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결혼식 전날 하루 동안은 친구놈들을 왕처럼 모시며 놀아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면서 피로연장에서 겪을 수난의 강도와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하루 앞둔 저녁, 친구놈들을 내가 준비한 만찬장으로 불러냈습니다. 절대 그렇게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해도 내 얼굴이 그렇게 보이는지 놈들이 은근히 내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우리한테 정성들이고자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이 정도로 내일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겠냐? 내가 결혼하던 날 고생했던 장면이 어제처럼 훤하게 생각난다."


이렇게 말하는 놈은 이미 그 무시무시한 통과의례를 끝내고 이제는 아들, 딸을 낳을 만큼 낳아서 살고 있는 놈이었습니다. 그 말하는 모양에 한결 여유가 묻어나는 듯도 하면서 또 무슨 보복의 쾌감을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말투입니다.

그러나 이런 녀석들보다 더 경계해야 할 쪽이 바로 내일 모레면 노총각 딱지를 붙일 친구놈들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제놈들만 두고 먼저 장가든다고 노골적으로 질투하는 녀석들이니만큼 그저 달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을 하루 앞둔 저녁부터 이튿날 먼동이 터올 무렵까지 이 악당들과 함께 기나긴 만찬을 즐겨야 했습니다. 하여 결혼식 날 아침 머리가 찌끈찌끈 아프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것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를 두고 어머니께서 걱정 반, 질책 반으로 한 말씀 하십니다.

"큰 일을 앞두고 무슨 술을 그리 마셨니?"
"머리가 그렇게 아프면 여기 두통약이라도 먹지 그러냐."
"어디 그런 몰골을 해서 결혼식장이나 갈 수 있겠니? 빨리 약 먹고 목욕탕 가서 사우나라도 하고 오너라."

멍한 정신에 어머니께서 주신 두통약을 냉큼 받아서 먹고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몸도 한결 개운해지고 정신도 말짱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은근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는 두 눈을 스르르 감고 오늘 있을 결혼식 장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멋지게 꾸민 드레스를 입은 아내는 한없이 우아하게 보입니다. 그 옆에는 비록 백마 탄 왕자와 같이 멋진 남자에 견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절반 정도의 흉내는 낼만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내 자신입니다. 드디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멋지게 행진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어오른 눈두덩이

그런데 갑자기 눈이 간질거렸습니다. 손으로 두 눈을 가볍게 누르고 있으니 조금 괜찮아집니다. 그런데 이내 또 간질거립니다. 조금 비벼보았습니다. 여전히 간질거립니다. 아니 점점 더 심하게 근질거리기 시작합니다.

'어, 이거 왜 이래? 눈병이라도 났나?'

거울 앞에 섰습니다. 두 눈두덩이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습니다. '왜 이러지?' 하면서 거울 가까이에 다가간 순간 내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낱말이 있습니다. 알레르기!!!!

그랬습니다. 나는 심한 알레르기 체질로 특정 종류의 약물에 이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걸 잊고 약을 먹었으니 이제 곧 일어날 내 몸의 변화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지요. 낭패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두 눈두덩이가 조금이라도 덜 부어오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도 잠시였고 목욕탕에서 집에 오는 길에 내 눈은 이미 부어오른 눈꺼풀에 덮여 버렸습니다. 거울을 보니 두 눈두덩이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쪽으로도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랍니다. 서둘러 앉아서 대책을 강구해 봅니다만 이 난관을 수습할만한 뚜렷한 묘수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짙은 검정색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광대뼈 쪽까지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오히려 기괴함만 덧붙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식 날짜를 미루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내 말에 어머니는 펄쩍 뛰어 오릅니다. 어머니와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어머니의 단호한 태도에 눌려 할 수 없이 친구놈을 불렀습니다. 얼굴은 이미 망가졌지만 머리라도 다듬고 신랑 화장도 해야된다고 거듭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친구놈 차로 예약된 미용실로 갔습니다.

"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미용실 직원의 목소리를 쫓아 빠끔하게 실눈을 뜨고 겨우 자리를 찾아 앉으려니 갑자기 그 직원이 나를 제지하고 나섭니다. 그러고는 출입구 쪽에 서 있는 친구놈을 향해 말합니다.

"오늘 결혼하실 분이 먼저 하셔야 되는데…."
"내가 신랑될 사람입니다."

불쾌한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리에 풀썩 앉자 그 분은 어쩔 줄 몰라합니다. 하긴 미용실 거울을 통해서 본 내 얼굴은 내가 보아도 흉측할 정도로 변해버려 오늘 당장 결혼을 앞둔 신랑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용실을 나서니 이제 결혼식이 시작될 시간이 반 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논쟁한 시간이 너무 길었나 봅니다. 서둘러 예식장 근처 옷집에서 턱시도를 갈아입을 때도 역시 똑같은 무안을 당했습니다. 기괴하게 변해버린 내 얼굴을 보고 옷가게 직원이 한 마디 합니다.

"그전에 오셨던 분이 맞으세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그때는 이미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곧 오늘의 주인공 옆에 또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해야할 나로서는 이런 형상으로는 내 사랑하는 여인 앞에 도저히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내 아내가 될 여인이 평생 기억할 이 중요한 순간에 이런 몰골로 나선다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때 그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만 돌아올 일이 차마 걱정되어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혹 땅이 꺼지는 일은 없나, 하고 헛된 기대도 해 보았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 몸이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버리는 행운도 없었습니다

이미 완전히 야수의 얼굴로 돌변한 내가 체념과 더불어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다잡아 식장에 들어서자 은은하게 흐르던 음악도, 유쾌하게 웃어젖히던 하객들의 웃음소리도, 내게 축복의 인사를 건네려던 지인들의 다소 과장된 몸짓도 모두 멈추어 버린 듯하였습니다.

어리둥절함과 경악과 충격으로 가득찬 하객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신부대기실로 가는 내 발걸음에는 오만가지 사념이 묻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여인은 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를 알아보기나 할까?' '혹 기겁을 하고 정신을 잃지는 않을까?', '내 가슴을 밀치고 예식장 밖으로 나가 버린다면?' 이런 생각으로 신부 대기실까지 가자니 발걸음이 천근만근같이 느껴졌습니다.

미녀, 야수를 받아들이다

드디어 신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벌렁거려 호흡이 막힐 듯했습니다. '내 모습을 보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러나 잠시 후, 지금까지 내가 지레짐작했던 방정맞은 생각은 다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내 아내가 될 여인은 이제 곧 제 남편이 될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 어느 때보다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걱정했잖아. 혹시나 엉뚱한 생각하는 줄 알고. 어머니께 들어서 알고 있었어. 생각보다 훨씬 미남이네 뭐. 아무튼 와 줘서 너무 고마워."

그날 내가 결혼식을 끝내 감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위와 같은 내 아내의 위로의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아내 될 사람이 그때 내 모습을 보고 경악스런 표정만 지었다면 내가 감히 어떻게 그날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용기를 얻었겠습니까.

드디어 신랑이 입장할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내게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걱정이나 두려움이 이미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감히 예상치 못했던 위로의 말을 받았던 순간부터 난 이미 세상 모두를 내 것으로 얻은 듯 기뻤습니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지만 하객들 사이로 신나게 행진해 들어갔습니다. 두 눈두덩이는 무거웠지만 발걸음만은 유난히 가벼워서 그랬을까요. 잠시 발이 꼬여 뒤뚱거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코를 박는 실수는 피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윽고 내 사랑하는 여인이 나에게 사뿐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퉁퉁 부어오른 무거운 눈두덩이를 들어올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합니다. 서둘러 마중을 나가서 팔을 잡았습니다. 야수의 얼굴을 한 사내에게 아리따운 여인은 가볍게 몸을 기대어 왔습니다. 그 순간 난 불현듯 외치고 싶었지요.

'부럽지 않으세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신부를 데리고 가는 이 남자를. 이렇듯 못생기고 추한 얼굴로 변한 사내에게 거리낌없이 제 몸을 맡기는 이 여인의 사랑이 보이지 않으신가요?'

그렇게 우리가 나란히 입장할 때 누군가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러더군요.

"한국판 미녀와 야수의 결혼식 장면 같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그토록 걱정하던 피로연 시간이 다가왔지만 그때 난 이미 세상사에 초탈한 듯한 신랑이 되어있었습니다. 무서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친구 녀석들이 오히려 내 눈치를 보는 듯했습니다. 아마 그 시절 그런 피로연장의 분위기는 이곳 지역에서는 최초로 목격되는 희귀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무튼 뵈는 게 없는 상태로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완전히 끝내고 나와 아내 단 둘이 지낼 첫날밤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야수가 된 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고 내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이나 쳐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첫날밤을 그렇게 성스럽게 보내고 말았습니다.

결혼 십 년째가 되어 가는 요즘에도 간혹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아내에게 묻곤 합니다.

"결혼식 날 내 얼굴 보고 어떤 심정이었어?"

"처음에는 나도 속상했어.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속상해 한다고 뭐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구, 그래서 마음 편하게 생각했어. 이를테면 남편 흉한 얼굴 덕분에 상대적으로 신부 얼굴이 돋보이겠구나 하는 얌체 같은 생각도 하구 또 야수를 사랑하는 마음씨 착한 미녀 노릇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나름대로 재미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결혼식 다시 하고 싶지 않아?"

"또 야수로 돌변하려구."

"아니, 이제는 그런 실수 안 할 자신 있는데."

그러자 아내는 내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합니다.

"우리 나중에 금혼식 때 다시 해 보자. 알았지?"

아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벌써 우리의 금혼식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멋진 신랑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결혼식 에피소드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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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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