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 전쟁을 다시 시작하며

중년의 나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등록 2005.04.24 12:25수정 2005.04.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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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마라톤 대회를 마치고 긴장이 풀렸는지 지지난 주부터 특별히 바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전혀 운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또다른 대회에 나가야 되는데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걱정이 태산입니다. 더구나 며칠 쉬는 동안 반갑지 않은 뱃살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내가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게 무슨 작정을 하고 그리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다 저녁 시간을 방안에서 뒹굴며 지내다 보니 그 다음날도 그렇게 되고 또 그 다음날도 당연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습관의 무서움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특히 불혹이 가까워지다 보니 몸을 움직임으로 해서 느끼는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몸을 게으르게 하면서 얻게 되는 편안함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보니 집안에서는 그저 누워서는 텔레비전이나 보고 앉아서는 컴퓨터나 하는 버릇이 일상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뱃가죽살만 하루하루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중년의 게으름에 따라 살이 찌는 속도도 가속이 붙는 듯합니다.

이로 보아 중년 나이에 하루하루 운동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과의 싸움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중년 나이가 부여하는 반갑지 않은 살과의 싸움이고 게으름과의 싸움입니다.

사실 나도 애초 이 싸움에 나서기까지 실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총각시절에는 필요한 근육을 빼면 군살 하나 붙지 않은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던 나도 결혼과 동시에 여기 저기 솟아나는 살들을 보며 처음에는 조금 충격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부위별로 적당히 살이 찐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 자신에게서 알지 못할 품격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답니다. 얼굴만 해도 그랬지요. 예전에는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와 무언가 조금은 날카롭고 여유가 없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양 볼에 살이 두툼하게 붙으면서 인상도 한결 유해지고 보기에 따라서는 후덕함까지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예전 총각시절 친구놈들이 이렇게 후덕해진 내 모습을 보면서 '야 너 요즘 제수씨가 잘해 주는 모양이다. 어쩜 그렇게 탐스럽냐?'며 농담을 할 때는 적당히 살찐 내 몸이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적당한 몸집 불리기가 경계를 넘어서면서 곤혹스런 일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당혹스러움은 먼저 얼굴부터 왔습니다. 어느 날 안경을 쓰는데 안경이 얼굴에 너무 꽉 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게 너무 좁혀졌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안경다리가 배불뚝이처럼 밖으로 불룩하게 만곡선을 그리게 된 것을 보고 안경점을 찾아 갔더니 그럽니다.

"얼굴에 비해 안경이 지나치게 작아졌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배와 엉덩이 쪽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바지란 바지는 모두 허리를 늘리지 않으면 버려야 했습니다. 어디 바지뿐이었겠습니까. 속옷도 입으면 무슨 발레 하는 남자 옷처럼 너무 꽉 끼다시피 해서 내가 보기에도 조금은 민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어깨와 등 쪽으로도 살이 올라 티셔츠나 난방 같은 옷을 입으면 꽉 끼다 못해 축 늘어진 살에 옷이 배겨 들어서 미묘한 패션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몇몇 옷가지를 입는데 변화가 있다고 해서 내 몸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에 지난해 입었던 옷이 작아져서 더 이상 못 입게 되어 버려야 했던 것처럼 그저 살이 쪄서 못 입게 되는 옷을 버려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의 불거진 몸을 보고서 너 나 없이 놀라움을 표시할 때 그게 마치 내 인격이나 품성의 고양이나 되듯이 우쭐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나는 내 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건물 복도를 우연히 지나가다가 저 앞쪽에 놓인 전신거울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 앞에 놓인 전신 거울에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데 그 모습이 참 낯익으면서도 코믹하게 보였습니다.

배를 쑥 내밀 듯이 걷고 있는 그 모습은 흡사 올챙이와 흡사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똥똥하게 보이는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누굴까?' 하는 생각으로 내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의 인물도 내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거울에 가까워질수록 그 모습이 더욱더 낯익어 보입니다. '아뿔싸!' 그 올챙이가 바로 나였습니다. 똥똥한 몸매에 아랫배가 와이셔츠를 불룩하니 내밀고 있는 그 사나이는 바로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밥의 양을 줄였습니다. 어쩌면 내 인생의 즐거움 중 상당 부분은 먹는 것에서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식사량에까지 신경을 썼다는 것은 당시 내 몸에 대해 내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식사량을 줄이면서 동시에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살과의 싸움이 시작된 이후 다행스럽게 예전 총각시절의 몸을 거의 되찾아 가고 있기는 합니다만 중년의 나이가 되어 갈수록 요즘처럼 이렇게 게으름이 점점 더 생활의 자연스런 유혹으로 다가오면서 그 싸움도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중년의 게으름이란 어찌 보면 하루 종일 직장생활로 시달리고 난 이후 갖게 되는 짧은 휴식시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마저도 살과의 싸움이라는 긴장으로 보내야 한다니 중년의 나이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만만치 않은 시간을 앞둔 지금, 이제 그만 게으름을 피우고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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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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