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한산도 제승당 찾은 까닭은

[정치 톺아보기 88] 역대 대통령의 휴가와 <칼의 노래> 현장답사

등록 2005.04.24 16:30수정 2005.04.24 17:10
0
원고료로 응원
a

2004년 12월 이부스키의 하쿠스이칸(白水館)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하는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 오마이뉴스 김당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경남 진해로 2박3일의 휴가를 다녀왔다. 금요일 일과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진해로 이동해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인 24일 오후에 상경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5월에도 대통령 취임후 첫 휴가지로 진해를 택해 이 근처의 저도(猪島·13만여평)의 일명 청해대(靑海臺)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즐기기도 했다. 노 대통령 부부는 이때 형님 노건평씨 부부를 청해대로 불러서 저녁을 함께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단출하게 다녀왔다. 경호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저도의 청해대 대신에 진해 해군기지내 귀빈 숙소를 이용했다. 그래서 '진해 구상'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진해 저도 인근에 북한 잠수정 추정 괴잠수함 출몰을 계기로 청남대 건설

역대 대통령들은 머리를 식힐 때는 물론 국정이 꼬일 때나 결심이 필요할 때 대통령 전용 휴양시설을 찾아 거기에서 정국 구상을 가다듬곤 했다. 즐겨 찾던 휴양시설을 보면 그 특징의 일단이 드러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른바 '김일성 별장'이 있었던 강원도의 화진포별장을 주로 찾았다. 이 노대통령은 일부러 50년 한국전쟁 전에 김일성 별장이 있었던 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북진통일'을 구상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a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휴가를 가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저도 백사장에서 찍은 사진. 2003년 12월 국정홍보처가 발간한 <대한민국정부 기록사진집>(제7권)에 수록돼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해군 시설이 있는 진해에서 배로 30분 거리의 외딴 섬 저도에서 해마다 2주 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곤 했다. 물론 근혜·근영·지만을 데리고 이곳을 찾곤 했다. 그래서 당시 소녀 시절에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찍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사진이 국정홍보처에서 제작한 정부기록사진집에 실리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단출했던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가족의 휴가에 동행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주간의 휴가 가운데 기자단을 1주일 동안 저도로 초청해 쉬도록 배려했다. 작고한 이득렬(전 MBC 보도본부장)씨 등 그때 출입기자들은 근혜양과 베드민턴을 치면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작고하기 이태 전부터는 북한 선박으로 추정되는 괴잠수정이 저도 인근에 출몰하는 것이 포착되어 설악산 등지로 2박3일씩 가볍게 휴가를 떠나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대통령 휴가를 앞두고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사전답사를 가는데 그때 경호실 사전답사팀장이 전두환·노태우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들이었다.

한산도 제승당 즐겨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에 주로 사용된 대통령 휴양지는 충북 대청호 주변에 새로 만든 '청남대'(靑南臺)이다. 80년 말 대청댐 완공 직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에 별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낸 후 공사가 시작돼 83년에 완공되었다.

작전차장보 시절에 외딴 섬 저도 주변에 괴잠수함이 출몰한 정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군·경호실 출신 대통령이기에 그는 저도행을 꺼려 청남대를 만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재자'가 만든 휴양시설에서 휴가보내는 것을 싫어한 노 대통령은 취임후에 청남대를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해 이곳은 현재 충북도에 귀속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금융실명제 발표나 전임대통령 구속을 앞두고 청남대에 들어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복절기념사 등을 이곳에서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1년 3월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여론이 악화되자 이곳을 찾아 개각구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언론들은 대통령이 이곳으로 가면 으레 '청남대 구상'이란 표현을 써가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행정구역이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산 88-1'인 저도 내의 청해대를 가장 자주 찾은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곳을 자주 찾은 데는 해군이 관리하는 한적한 섬이라는 점도 있지만 이곳 일대가 박 전 대통령이 '성웅'(聖雄)으로 추앙했던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파했던 전적지(戰跡地)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휴가를 보낼 때면 인근 한산도의 '제승당'(制勝堂)을 찾아 참배하곤 했다.

a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작전회의를 했던 한산도 제승당. ⓒ 네이버

제승당은 1593년 8월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통제사를 제수받아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하였을 때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던 운주당(運籌堂)을 세운 그 자리다.

정유왜란 때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1739년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제승당'이라고 이름붙였고 1976년 박 전 대통령이 작고하기 3년 전에 지금의 제승당과 충무사, 한산정, 수루 등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탄핵기간의 노 대통령 "한산대첩 유적지 한 번 보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번처럼 저도의 청해대에 머물 경우 경비선박까지 띄워야 하는 등 경호상의 문제점을 감안해 해군기지 내 숙소를 이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대통령은 23일 제승당 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아 제승당을 방문해 헌화하고 이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또 한산도에 올라 한산대첩의 격전지를 지켜보기도 했다. 충무공이 원균의 모함을 받아 서울로 떠날 때까지 세 해 여덟 달 동안 머물면서 "긴 칼 옆에 차고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은 시름하던" 그곳이다.

이 일대는 바로 옥포 해전과 당항포 해전 그리고 전세계 해군 전쟁사에 남아 있는 한산도 해전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 충무공은 왜군을 충무 앞바다로 유인해 내서 조선수군 54∼55척으로 이른바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왜군 수백 척을 격멸하고 불과 14척만이 도망을 허용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탄핵 시기에 청와대 경내의 식목일 행사에 참석했을 때 "한산대첩의 유적지를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탄핵으로 묶여 있는 기간에 노 대통령은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즐겨 읽었다. 말하자면 이번 한산도 방문은 '칼의 노래'의 현장답사 여행인 셈이다.

과거사 문제를 앞두고 상반기 한·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일합'을 겨루게 될 노 대통령이 어떤 진(陳)을 펼칠지 주목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