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미안...아직 한번 못 안아봐"

산모 난치 투병 중, 7개월만에 출산...용접공 아빠 치료비 '막막'

등록 2005.04.24 17:18수정 2005.04.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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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난치병을 앓던 산모의 병이 재발해, 7개월 1일째 만에 태어난 하진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난치병을 앓던 산모의 병이 재발해, 7개월 1일째 만에 태어난 하진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 이국언

고사리 같은 손이 가파르게 떨리고 있다. 22일 밤 전남대병원 소아병동 중환자실. 실핏줄이 선명해 보이는 '하진이'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오늘도 그렇게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생후 28일째다.

임신 중 난치성 질환이 재발 돼 7개월여 만에 아이를 낳게 된 산모 유점숙(28)씨. 그녀는 오래 전부터 전신 홍반성 낭창 증세인 '루프스'라는 병마와 싸움 중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발병한 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온 것만도 수 차례. 직장생활이 어려웠던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고향 여수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있던 중 신앙생활을 통해 남편 유종균(36)씨를 만났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임신 중 그만 병이 재발하고 만 것이다.

심장수술...무호흡 증세 보이기도

태아 때문에 제대로 된 투약도 어려운 상태에서 병원에선 부득이 '수술'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산모와 어린 생명까지 위험한 상태였던 것이다. 28주 1일, 7개월에 막 접어든 때였다. 연이어 산모는 맹장염증으로, 미숙아였던 하진이는 심장 동맥관 이상으로 수술을 받은 상태다.

"아이를 지우는 게 좋겠다고 얘기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볼 수만 있고 생각할 능력만 있으면 어떻게 든 키워보려고 합니다."

아빠가 된 유종균씨의 말이다. 아이는 가끔 무호흡 증세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산소를 투입하는 한편, 우유는 위관을 투입해 공급하고 있다. 한 번의 사산 끝에 얻은 새 생명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이제 체중 1.9㎏를 갓 넘어서고 있다.


a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두차례 뿐, 엄마는 아직 한번도 안아 보지 못했다.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두차례 뿐, 엄마는 아직 한번도 안아 보지 못했다. ⓒ 이국언

이들 부부가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하루 두 차례 주어지는 면회시간 뿐. 산모는 얼마 전 먼저 퇴원했다. 그녀는 "집에 있으면 아기 생각이 자꾸 나, 일부러 청소를 하기도 한다"며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태어난 뒤 아직 한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가엔 벌써 물기가 서려 있다.

일당 2만4000원 용접공, 치료비 1천만원 넘어서


안타까운 것은 가난한 이들 부부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병원비. 남편은 일당 2만4000원의 하남공단 용접공이다. 이미 산모 퇴원에 400여만원의 돈이 들었고 아이의 병원비는 1천만원이 넘어서고 있다.

몇 개월째 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으로 달려가다 보니 잔업을 한다고 해도 고작 60∼70만원을 넘기 어렵다. 지난달에는 직장 동료들이 바자회를 열어 마음을 보탰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꿍꽝거리는 공장의 소음소리에도 어디 일손이나 한번 잡혔을까. 한 직장 동료는 "아이의 생명을 의지할 데라고는 병원밖에 없는데, 병원비가 없는 중소사업장 노동자에게는 병원이 또 하나의 하나님"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넓은 하늘처럼 베풀고 살라는 뜻으로 '하진'이로 이름 지었습니다. 난치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동안 아파도 힘든 표정 안 보이려고 새벽에 혼자 나가 토하고 있는 부인을 생각하면, 제가 더 용기를 내야죠."

가난하지만 맑은 부부의 바람처럼, 하진이는 다시 환하게 나래를 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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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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