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농법으로 무농약 유기농 쌀을 생산한다

[인터뷰] 유기농 친환경 농업의 선두주자 김성수씨

등록 2005.04.26 12:51수정 2007.06.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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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라는 이름은 언제 들어도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따뜻함이 스며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죄다 허물어진 인상들 속에서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고향은 어머니의 정겨운 미소가 있기에 생각만 해도 아름답고 눈물겨운 곳이다.

그러나 근대화란 미명아래 추진되어온 산업화, 도시화, 기계화는 서울로 서울로를 낳았고 이제 고향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자꾸 변해만가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곳에는 하얀 머리칼 날리는 노인들만 남아서 돈도 되지 않는 고된 농사일에 매달려 하루하루 희망 없이 살아가는 곳으로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쌀 수입개방, 농축수산물 전면개방의 파고는 증산정책 일변도로 농업을 몰아왔던 탓으로 미처 질적 향상을 꾀하지 못한 우리 농축수산물을 경쟁의 최하위 부류로 전락하게 하고 말았다. 거기다 가까운 중국에서 무방비적으로 들어오는 농축수산물은 이미 우리 소비시장을 온통 점령하고 말았다.

이렇게 젊은 사람 하나 살지 않는 살길 막막해진 고향을 지키며 그래도 우리들의 영원한 먹을거리인 식량창고 농업에 종사하며 땀 흘리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 때나 되어야 겨우 소주 몇 병이나 과일 주스 한 병 사들고 출세한 폼 내며 늙은 어른들 찾아보고 선산의 무덤이나 들러오는 이러한 삭막한 시대에 그나마 그들이 있어 고향은 아직도 훈훈한 우리들의 안식처가 아니겠는가.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에 가면 친환경 오리쌀 작목반이 있다. 물론 이 연화리에도 젊은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마을에 50대가 세 명, 내가 63살이니 일할 사람도 없고 힘들지요. 이게 우리나라 전국의 농촌 실정입니다.”
곡성군 오산면 친환경 오리쌀 작목반장인 김성수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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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쌀 작목반장 김성수씨 ⓒ 강형구

김성수씨는 1943년 연화리에서 태어나 자랐고 28세 되던 1967년부터 광주시 광산구 송정리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미군들 숙소관리 잡일을 하는 인부로 근무했다고 한다. 거기서 14년 정도 일을 하다 1979년 미군부대 인원 감축이 단행될 때 퇴직하고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어왔다고 한다. 마침 그해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에게 있어서 귀향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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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리 표지석 ⓒ 강형구

귀향한 그해부터 김성수씨는 아버지가 짓던 논농사 4000평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81년 기계화 영농단을 만들기 위해 정부에서 융자를 받아 콤바인, 이앙기, 트랙터를 사 운영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기계를 잘 부리는 숙련도도 떨어졌고 또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하여 정부에서 바라던 대로 성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 빚만 잔뜩 안았다고 한다.

그때 마침 곡성에 하우스 딸기 농사가 시작되었고 김성수씨는 딸기 작목반을 만들어 딸기 재배를 했다고 한다. 비닐하우스를 짓고 딸기를 재배해 팔았는데 마을에서 30여 가구가 딸기 재배를 했다고 한다. 딸기 농사를 지어 2남 1녀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살아왔는데 결국 아내 정덕순씨가 과로로 병이 나 15년이나 해오던 딸기 농사를 그만 두어야 했단다. 이러한 증상은 비단 김성수씨 집만이 아니었다. 연화리에서 딸기 농사를 했던 집 아낙들은 고된 일에 건강상태가 안 좋아져 더 이상 딸기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 김성수씨는 곡성군 농민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수세거부투쟁 등도 벌였고 노태우 정권시절에는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하여 경찰서에 가서 취조를 받는 등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쌀농사 짓기도 어렵고 딸기 비닐하우스도 그만 두어버린 2000년, 김성수씨는 마침 곡성군에서 친환경 농업의 일환으로 단행된 오리농법을 시도하게 된다. 그때 고작 곡성군에서 다섯 명이 오리농법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그 중 한사람이 김성수씨였던 것이다. 농산물 개방화 시대에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유기농 친환경 농업을 통해 질 높은 쌀을 생산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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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농법단지전경 ⓒ 강형구

오리농법은 모내기 1주일 후 100평당 10마리씩 부화 후 15일 되는 오리를 넣는다고 한다. 6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정확히 70일간 논에 오리를 놓아기른다는 것이다. 먹이는 하루에 한번 아주 적게 준다. 그러면 오리는 하루 종일 온 논바닥을 부리로 쪼고 다니며 흙탕물을 일으켜 햇빛 투과를 막아 잡초의 발아와 성장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고 또 물 바구미 같은 유해 해충을 잡아먹기에 농약 살포할 필요 없고 또 제초제 뿌릴 필요 없기에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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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이들과 함께 논에 오리를 넣는 김성수씨 ⓒ 강형구

말 그대로 무농약에 비료도 쓰지 않는 유기농 재배였던 것이다. 오리 똥이 그대로 비료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겨울에 퇴비작물인 자운영을 뿌려 거름을 직접 생산해 쓰는 것이었다. 물론 쌀 수확량은 10%정도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김성수씨는 화학비료가 아닌 유기비료를 보충해 주어 생산량을 높이는 방법 생각해두고 올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리농법에는 두 가지를 잘해야 합니다. 첫째는 논물을 충분히 담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논둑을 단단하게 하여 물이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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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오리 ⓒ 강형구

오리가 논둑을 자꾸 부리로 쪼아 물이 새나가면 논에 잡초가 자라난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무농약 유기농 쌀을 생산해놓아도 판매가 어렵다고 한다. 또 무농약 인증서를 받으려면 농가당 18만원의 경비가 소요되어야 품질인증서가 나오기에 부담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행정기관이나 농협에서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까지는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이었다.

“행정기관이나 농협에서 유통판매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말로는 농민 위한다고 하고 말로만 100대 과제 추진한다고 하지만 농자재 전부배달 되는 줄 압니까. 정말 큰 문제예요.”

김성수씨는 농협문제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인다. 시중은행에서는 금리가 3.5%인데 농협은 최저금리가 8.5%라면서 대부분 농협조합장이 1억이 넘는 엄청난 연봉을 받으면서 정작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안한다고 울분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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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쌀 포장지

김성수씨는 생산지원보다도 행정기관에서 유통판매를 전담하여 맡아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예로 작년에 충북 청원군 오창농협 견학을 다녀왔는데 그곳 농협 조합장은 농민 사정을 잘 아는 유기농 작목반 출신이 조합장으로 당선되어 무농약 유기농 쌀을 농협이 전량 수매하고 또 판매를 도맡아 한다는 것이었다.

올해는 참여농가가 많아 25ha에 9000수 가량의 오리를 들일 거라고 한다. 특히 나이 많은 노인들이 농사짓기엔 비료와 농약을 하지 않는 오리농법이 제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말목을 막아 논 전체를 철망으로 막아야 하는 데는 아직도 인력이 많이 소요된다고 한다.

사람이 먹으면 즉사한다는 제초제와 농약을 대량 살포하여 지어낸 쌀은 우리 몸에 들어가 암이나 각종 질병을 유발하게 한다. 더구나 수입쌀은 각종 농약과 방부제를 온통 뿌리기에 몇 년을 두어도 바구미도 살지 않는다고 한다.

김성수씨는 이제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 쌀을 먹는 수준 높은 식생활 개선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면서 제발 우리 쌀 좀 사달라고 하소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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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정덕순씨와 함께 ⓒ 강형구

“돈이 많은 게 행복이 아닙니다. 사람답게 참되게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게 행복입니다.”

농촌에 사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김성수씨는 활력 있게 움직이는 농촌이 되도록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농법 개발과 공장 건설, 그리고 교육 문화 시설 등 복지혜택을 대폭 늘려 우리 고향 농촌을 살리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김성수씨는 오늘도 고향 들녘을 홀로 거닐며 올해 풍년농사를 고민하고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어려운 농촌살림살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WTO, 농산물시장 등의 파고에 맞서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 쌀 생산을 위하여 노력하는 분들을 통해 우리 농촌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극복하는 대안을 모색하는데 작으나마 보탬이 되고자한다.

덧붙이는 글 어려운 농촌살림살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WTO, 농산물시장 등의 파고에 맞서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 쌀 생산을 위하여 노력하는 분들을 통해 우리 농촌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극복하는 대안을 모색하는데 작으나마 보탬이 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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