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처럼 닳고 닳은 절굿공이

[부모님 자서전] 어머니, 영원한 마음의 고향

등록 2005.04.26 19:19수정 2005.04.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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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우리의 아낙네들은 김치를 담가 먹었다. 김치를 담기 위해서는 마늘과 고추 등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돌 절구통에 넣어 절굿공이로 싸악싸악 갈아 맛을 우려낸다.


우리의 어머니도 그러했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또 한참 위의 어머니,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의 최초의 어머니요 할머니인 웅녀(熊女)가 계신다. 웅녀할머니는 당초에 곰이었는데 사람이 되고 싶어 마늘 20쪽과 신령스런 쑥만을 먹고 21일간을 햇빛이 없는 굴 속에서 살다가 여인으로 환생하였다.

웅녀의 아들 단군(檀君)은 마늘이 든 김치와 쑥국을 먹었다. 여인이 된 웅녀할머니는 천제(天帝)의 아들 환웅(桓雄)과 결혼하여 단군님을 낳고 그때부터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태백산 박달나무로 만든 절굿공이를 잡고 손바닥이 곰 발바닥 되도록 마늘을 갈아 김치를 담그고, 쑥을 찧어 쑥국을 끓여 단군님을 키우시니 단군할아버지 시절부터 절굿공이는 가정의 생명이요, 사랑이 되었으며 어머니의 손끝은 곧 맛이며 사랑이요 생명이었다.

우리 어머니의 김치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성질이 불같은 아버지를 섬기면서 8남매를 키우시기 위해 절구통에 양념을 넣고 사랑과 정을 쏟아 부어 싸악싸악 갈아 맛을 우려 낸 다음 배추김치, 무김치, 갓김치는 물론 푸성귀라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으로 만들어 먹였다.

열아홉 나이에 장성군 진원면 고산(高山)마을에서 나씨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할머니가 되기까지 아들 다섯 딸 셋을 쑤욱 쑤욱 낳아서 제 때 제 때 밥해 먹여 제 갈 길 잘 가도록 가르치고 키우면서 40년 동안 절굿공이를 갈았다.

열아홉 아가씨의 손마디에 괭이가 박힐 때까지 세월을 되돌아 볼 틈도 없이, 옆도 안보고 산 나날들이 어언 환갑을 지나 진갑 되기까지 절구질하여 박달나무 원목으로 만든 절굿공이가 닳고 닳아 반으로 줄어들었다.


a 2002년도 어버이날 기념, 영산강변 구진포에서

2002년도 어버이날 기념, 영산강변 구진포에서 ⓒ 나천수

꿈 많은 청춘을 다 사르고 나씨 집안 시집살이 안으로 삭힐 때 가슴속의 절굿공이도 반은 사랑이요 반은 한(恨)으로 닳았다.

어머니의 댁호(宅號)는 고산(高山)이다. 어머니는 항상 높은(高) 산(山)처럼 사셨다. 어려서 효성이 지극하여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1년간 똥오줌을 받아 내시고 꽃신을 선물로 받았는데 꽃신이 작아 발을 줄여 신으셨단다.


노령산맥 발꿈치에 위치한 고산마을에서 자란 어머니는 학력은 없지만 영리한 두뇌를 가지고 여러 가지 재주를 익히셨다. 춤추기를 좋아하시고 육자배기 노래도 꽤 잘 하셨다.

어머니는 면허증 없는 재주가 여러 개 있다.

어머니의 가마솥 솥뚜껑 운전재주는 가히 신기(神技)이다. 솥뚜껑을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아마도 보리 백 섬, 쌀 백 섬을 가마솥에서 익혀내어 가족을 먹여 살렸다. 가마솥 무쇠가 윤기 나도록 닦으면서 부엌이 수 천리 되는 듯 이리저리 뛰면서 아궁이에 불 지피랴 설거지 하랴 반찬 장만하랴 허리가 휘도록 부엌을 지켰다.

요즈음은 전기밥통, 압력밥솥이 부엌을 차지하고 전기 스위치만 누르면 밥이 되고 국이 되는데, 그것도 하기 싫어 즉석요리 식품으로 무슨 정을 만들어낼까.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도 일류 재단사이시다. 옛날에 무슨 재봉틀이 있으랴. 오직 바늘 침 하나로 꼼꼼히 바느질하여 한복은 물론 양복도 만들어 자식들 예쁘게 입히셨다. 좋은 옷을 보면 자식 입힐 욕심이 많아서 신문지로 본을 떠서 밤 세워 똑같은 옷을 만들고야마는 눈 때가 매서운 솜씨를 가지셨다.

이제 어머니도 팔순에서 구십을 바라보기까지 늙으셔서 절굿공이로 김치를 담글 힘이 없다.

어머니도 늙고 절굿공이도 다 닳고 또 쓸모없게 되었다. 다 닳은 절굿공이가 반평생을 어머니의 손에서 어머니와 같이 절구통 바위 돌에 닳고 닳아서 어머니를 닮아 버렸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너무 변하여 절굿공이로 김치를 담그는 것은 향토 박물관에서나 볼거리로 변모해 버렸다.

아울러 절굿공이 사랑이 깃든 웅녀의 이야기도 한갓 전설로 흘러가 버리고, 김치 양념도 전기 믹서로 갈아버린다.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은 김치와 쑥국보다는 서구식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마늘 김치와 쑥국으로 사람이 된 웅녀 이야기가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는 한 어찌 김치의 향수를 잊을 수 있을까. 한국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의 흔적을 절굿공이 박달나무에 새겨 이 글과 절굿공이를 길이길이 보존하고자 한다.

어머니 만수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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