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언니네 과수원에 핀 사과꽃정명희
오랜만에 엄마의 집엘 다녀왔다. 여느 때 같으면 엄마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언니네 집에 들러서 함께 갔을 것인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농번기인지라 과수원이다 뭐다 해서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언니였다. 그래서 일 나가고 없는 언니의 빈집에 마실 것만 들여놓고 엄마네 집으로 갔다.
“큰언니는 바쁠 것 같아서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왔다.”
“잘 했다. 지금 사과꽃 따느라고 정신이 없을 기이다.”
“사과꽃을 왜 따는데?”
“사과꽃이 많이 달려 있는 가지는 꽃을 좀 쏙아 줘야 하고 비스듬히 달려 있는 꽃 또한 딴다고 하더라. 그래야 알이 굵어진다나. ”
“그 많은 꽃을 어떻게 일일이 다 검사를 하노?”
“그러니 뼛골이 빠지제.”
“잘생긴 사과 하나 만들어내려면 지금부터 수확하는 그 순간까지 온갖 정성 다 들여야 된다. 그에 비하면 먹기는 얼마나 쉽노.”
어릴 적에는 과수원이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간 언니가 무척 부러웠다. 아니 언니보다 과수원집 딸로 태어난 조카들이 너무 부러웠다. 요즘처럼 내 돈 주고 마음 놓고 과일 같은 것을 사먹지 못하던 가난한 시절, 사과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니 얼마나 ‘때깔나’ 보이던지.
그러나 과수원집 딸들은 사과를 지천으로 봐서 그런지 ‘그게 뭐가 그렇게 맛있노’ 하면서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남은 못 먹어서 한 이구만은 정작으로 조카들은 ‘사과 말고 다른 과일 뭐 없나’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생각만 해도 침이 생기던 사과를 늦가을이면 언니는 맛에는 지장이 없으나 인물은 좀 못한 사과를 두어 자루씩 갖다 주고는 하였다. 그러면 나는 이 세상 행복을 다 가진 듯 벅찼고 한참에 예닐곱 개는 예사로 먹었다. 물론 고맙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언니는 가을이면 언제나 나에게 사과를 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드니, 잘생긴 사과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언니가 들이는 정성을 생각하니 당연하게 생각하던 내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사과나무와 더불어, 언니의 일생을 관통하는 끝없는 노동에 가슴이 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