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신경전'... 방문 목적이 뭔가?

[해외리포트] 환영받지 못한 푸틴의 이스라엘 방문

등록 2005.04.30 04:33수정 2005.05.0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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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이스라엘의 적을 돕고 있다" (<마아리브> 4월 28일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착 보도 헤드라인)
"푸틴 왈 : 미국이 회교 극단주의자들을 부추기고 있다" (<예디옷아하로노트> 4월 29일자, 샤론 수상과 푸틴 대통령간의 회담 직후 헤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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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일간지 <마아리브>의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문보도 헤드라인. "푸틴은 이스라엘의 적들을 돕고 있다" 4월 28일자 1면.

지난 2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동 방문은 역사적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중동여행지인 이집트는 러시아(옛 소련 포함) 대통령으로서는 41년만이고,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최초의 방문이었다.

냉전 체제하에서 옛 소련의 위세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세 대의 벤츠 방탄 전용차량을 직접 공수해왔고, 경호원들은 극비리에 경호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푸틴의 중동 방문을 두고 이스라엘 내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환영 보도 대신 선동적이고 위협적인 헤드라인을 달았고, 그나마 샤론 수상과의 회담은 헤드라인으로도 다루지 않아 푸틴의 방문의미를 축소시켰다.

사실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푸틴의 이스라엘 방문은 시기적으로 양측 어느 쪽도 방문하고 맞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푸틴이 이스라엘 방문을 전격 제의했지만 방문 동기나 목적이 불명확했던 것.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측은 푸틴이 중동방문 직전,이스라엘 TV채널1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결코 시리아 미사일 판매나 핵 기술 지원을 취소하지 않겠다"고 밝히자마자 등을 돌려버렸다.

떨떠름한 이스라엘의 영접

러시아 대통령의 역사적 방문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접은 떨떠름했다. 푸틴이 이집트를 거쳐 이스라엘에 도착할 때 그를 기다린 건 에후드 올므레트 부총리였다. 그 시간 아리엘 샤론 수상은 집에서 쉬고 있었고, 외무장관 실로반 샬롬은 에일랏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노동당 당수로 두 번의 수상을 지냈고, 오슬로 중동평화 협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베테랑 정치인 시몬 페레스 부총리는 어떠한 경로로도 푸틴 만남에 초대되지 않았다.

이번 방문에서 설전에 설전을 거듭한 논쟁 이외에 얻은 것이 있다면 러시아 대통령과 이스라엘 대통령간의 공동성명서 발표로 공동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나가고 양국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자는 것, 이것이 전부였다. 중동 현안에 있어 러시아의 중요한 위치로 봐서 전혀 얻은 것이 없는 외교 행보였다.

중동방문 첫 도착지인 이집트에 방공장비 수출을 희망했지만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이집트 대통령에게 올 가을 모스크바에서 중동평화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이집트는 유보입장을 밝혔고, 이스라엘은 즉각 거절했다.

중동평화에서 가장 큰 현안인 시리아 단거리 미사일 판매와 이란 핵 기술 이전문제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취소를 요구하는 이스라엘과 결코 이스라엘 안보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러시아의 설전만이 오갔다.

마지막 방문지 팔레스타인에서 제안한 50여대의 장갑차와 두 대의 헬기 판매 제안도 이스라엘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팔레스타인의 입장만을 들었을 뿐이다. 그도 이스라엘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즉각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푸틴-이스라엘 시종일관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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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왈 "미국이 이슬람의 극단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샤론 수상과 푸틴 대통령 회담 직후 발간된 일간지의 헤드라인. <예디옷아하로노트> 4월 29일자 1면.

특히 이스라엘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 대통령은 푸틴에게 '이스라엘의 친구'란 호칭을 썼지만, 푸틴의 인터뷰 내용은 두 나라 사이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아래는 푸틴이 이스라엘 라디오 등과 가진 인터뷰에서 오간 내용이다.

- 러시아가 시리아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에도 무기를 공급해 줄 수 있습니까?"
"만일 이스라엘이 러시아와 20억 달러(이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주는 원조금액을 지칭)의 무기 공급 계약을 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용맹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시리아에 판매한 미사일이 이스라엘 안보에 위협적이지 않나?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쳐들어가 맞기 전에, 그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이스라엘 내에 미치지 못 한다."

- 이란과 같이 이스라엘과도 핵기술 상호협력을 할 수 있냐?
"평화적인 목적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돕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군사적인 목적 외에) 이러한 (평화) 핵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 (러시아 내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반유대주의 사건을 꺼내며) 러시아 내의 유대인 묘지 낙서라든지 회당 방화 및 유대인 구타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내가 듣기에는 이스라엘에서도 당신들의 지도자들, 예를 들어 이츠하크 라빈 등의 무덤에 그를 모독하는 낙서가 있다고 하던데…."

- 당신네가 판 무기들이 중동의 테러단체로 들어가지 않느냐?
"중동전체 무기 거래가 매년 90억 달러에 달한다. 이중 미국이 68억 달러를 차지하고 우리는 단지 5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판 그 많은 무기들이 테러단체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러나 우리 것은 결코 이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이민자들에게도 외면당한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 중동국가 무기판매에 대한 강경태도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약 1백만 명의 러시아 이민자들로부터도 외면받았다.

이들은 90년대 페레스트로이카 민주화 개혁에 힘입어 이스라엘로 들어온 러시아 유대인이다. 현재 530만(총 670만 중 아랍 이스라엘 130만 명을 뺀 유대인 수) 이스라엘 인구에서 러시아 이민자들은 20%에 육박하고 있다.

이중 러시아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이 약 2만여 명이고, 이민 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사는 이스라엘 시민권 소유 러시아 국민이 10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나 이스라엘 부적응으로 잠시 떠나있을 뿐 언제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어 외국 체류자 신분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의 국내 정치력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구가 12만여 명이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정치력이다.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한때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이스라엘 선거에 출마하면 당선될 수 있다"라는 농담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러시아의 행보에 이들의 민심은 푸틴에 등을 돌리고 있는 추세이다.

유일하게 푸틴 대통령의 숙소에서 시위를 벌인 러시아 이민자들의 시위 슬로건도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자라났고, 당신을 위해 살았다"였다.

러시아 이민자당의 나단 샤란스키 장관은 이스라엘 대통령이 주관한 푸틴 대통령 기념 만찬장에 불참했다. 두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인 가자 지역 방문 때문이라는 게 불참 이유다. 이스라엘 내 러시아인으로서는 가장 영향력 있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샤란스키 장관의 옛 자국 대통령 외면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푸틴의 이스라엘 방문의 진짜 이유는?

푸틴 대통령은 29일 저녁(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방문을 끝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푸틴의 중동방문은 아직도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 대통령과 채택한 공동성명으로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역사적인 관계를 공고히 하고 앞으로 양국간의 우호를 증진하자는 것이지만 과연 이것만을 위해서 중동을 방문했을까?

이스라엘 언론들은 두 가지를 추측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푸틴 대통령은 중동방문을 통해 중동평화의 중개자는 물론 세계 정치계의 강자로서 러시아의 위상을 각인시키려 했다는 분석이다.

시리아에 미사일을 판매하고, 이란에 핵 기술 지원을 하고,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장갑차를 건네준다는 러시아의 약속에 대해 이스라엘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이 곳을 방문함으로써 중동에 대한 거침없는 그의 영향력을 과시했다는 풀이다.

또 하나는 그답지 않은 행동으로, 바로 '성지' 방문이다. 러시아는 현재 러시아 정교회가 여전히 확실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다가 종교적인 부흥기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푸틴이 이스라엘 도착 직후 그 밤으로 예루살렘 예수의 무덤과 겟세마네 동산을 방문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유대인 국가를 방문한 예의로 유대교의 최고 성지 '통곡의 벽'을 방문한 것은 이해하지만,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를 방문한 것은 의아한 일이다. 이러한 푸틴의 제스처는 러시아 내에서 그의 입지에 해가 되지 않으며 동시에 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충분할 것이란 분석이다. 푸틴 자신만을 위한 방문이라는 것.

그럼에도 '대국' 러시아 대통령이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친히 방문한 것은 중동사에 전환기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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