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짧은 편지김지영
저도 자식을 키우지만 그래서 어머니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지만 어머니가 주신 짧은 편지 한 장 때문에… '고맙게 생각한다'는 글귀 하나 때문에… 저는 또 가슴이 무너지고 맙니다.
제가 건강해서 고맙다는 말씀보다 '니가 나한테 잘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이 이젠 늙어도 단단히 늙어 버리신 어머니가 해야 하는 말씀임에도 아직껏 당신의 넷째 아들은 어머니에게 존재 이상의 효도를 못해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숱하게 편지를 주고 받았던 군대시절 절절한 편지들마다 '제대하면 꼭 효도하겠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지만 제대한 지 13년이 넘어서 버린 아직까지 효도는 못 할망정 늙으신 어머니 마음 깨나 고달프게 한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고향에 가까이 살 때는 '딸내미 같은 아들노릇'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서울로 올라와 버린 후로는 어머니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깝고, 보여드릴 수 없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남쪽 하늘만 바라봐도 고개가 수그러지는 저였습니다.
제가 그냥 잘 살아줘서 어머니가 고마울 수 있다면 그래서 기꺼운 마음으로 사실 수 있다면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지요. 그런데 저는 어머니가 오래 오래 살아주셔야 고마울 수 있겠습니다.
그 연세에도 여전히 교회 잘 다니시고 바깥 나들이 잘 하신다는 소식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입이 벙긋 벌어져 버린다는 걸 어머니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연세만큼 많은 약을 드시고 종종 지병에 맥이 풀려 방안에 누워계시는 일이 잦기도 하지만 훌떡훌떡 일어나셔서 또 금세 나들이 다니신다는 말씀을 거짓말로라도 들을 때면 제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지고 날아갈 것 같은지 모르실 겁니다.
제가 잘 살아주는 것으로도 어머니가 기쁘시다면 어머니 건강하게 웃음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저 역시 기쁘기 한량없음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진을 부쳐달라는 늦은 전화를 받으시고는 쏟아지는 초저녁 잠을 물리시고 낡은 앨범을 뒤척이며 어머니 젊으셨을 때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행복했던 시간들과 고난의 시간들을 되새기고, 그 중 맞춤 한 사진 몇 장 골라 놓고는 노트 한 장 찢어 볼펜을 누르고 엎드리셔서 당신의 넷째 아들에게 안경 너머로 한자 한자 정성껏 적어 넣으신 마흔 다섯 글자 편지 때문에, 당신 아들 얼굴 떠올리며 가슴으로 써 넣으신 그 짧은 편지 때문에 저도 이렇게 늦은 밤 불 밝히며 어머니께 한자 한자 적어 보내 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ingstory.com 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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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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