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74회

등록 2005.05.03 07:49수정 2005.05.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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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옥대장군은 초창기 대명을 건국했던 공신 중 비교적 젊은 축이었다. 서달이나 탕화 등 노회한 개국공신들이 전쟁이나 수명을 다해 죽고, 두 차례에 걸친 호유용의 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에는 그와 견줄 장군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그의 인품이 후덕해서인지 그의 휘하에는 뛰어난 장수들이 많았고, 홍무 11년 서번(西蕃) 정벌로 영창후(永昌侯)에 봉해졌다. 홍무 20년에 풍승(馮勝) 장군을 따라 북원의 승상(丞相) 나하추(納哈出)를 정벌하여 대장군이 되었고, 이듬해 역시 몽골에 원정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그는 양국공(凉國公)에 책봉되었다.


그 뒤에도 그의 승승장구는 계속되어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올랐으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주원장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수하를 옆에 둘 위인이 아니었다. 더 이상 무인으로서 오를 수 없는 위치에 선 남옥대장군의 태도는 조금만 이상해도 어쩌면 오만불손해 보일 수도 있었다.

"누가 그런 황제의 칙령을 본 적이 있다고 하던가?"

"남옥의 주위를 정리하라고 주원장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나?"

"그것은 사실이네."

"그가 그 칙령을 거부하지 않았나?"

"고민했지."


남옥대장군은 그가 모신 인물이었다. 그리고 남옥대장군을 따라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 역시 그였다. 남옥대장군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젊은 나이에 그런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남옥대장군을 숙청하는데 거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황제의 명이라도 그는 그런 일만큼은 할 수 없었다.

"결국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물러난 것 아니냔 말일쎄. 그것이 황제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추었을까? 남옥과의 관계를 잘 아는 주원장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뻔한 일 아닌가? 엄격히 본다면 그것도 항명(抗命)이 아니었느냐는 말일쎄."


"그렇다고 태조가 그 양반이 수장으로 있었던 균대위에 바로 그 양반을 죽이라고 칙명을 내릴 정도로 바본가?"

"바보가 아니라 너무 간교한 자였지. 분명 그런 칙령은 내려 왔으니까."

"자네의 그 말은 지금 우리가 그 양반을 시해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마노로서는 정녕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그로서는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라고 할텐가? 그런 칙령이 내려왔다는 사실은 그 이후 균대위의 수장인 강중이 인정했어."

아니다. 이건 아니다. 설사 그런 칙령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파렴치한 일을 할 놈은 균대위 내에 결단코 없었다. 더구나 두 사람 사이는 좋아 보였다. 그들이 가진 속내야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강중장군… 그와 가까운 무리가 있었던가?)

마노는 답답했다. 그는 지금껏 담명장군을 죽인 자들이 백련교도들인지 알았다. 헌데 자신들이었다니…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무리 강중이 다른 마음을 먹었더라도 균대위 내에서는 동원할 인물이 없었다. 또한 동원 했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우린 아니야. 절대 아니네."

마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섭장천이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도 역시 아니네. 내 분명히 약속하지."

"정말인가?"

"지금에 와서 자네들이 움직일 것을 두려워 거짓말 하는 게 아니네. 이미 자네들이 움직인다 해도 우리를 어쩌지 못해.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은 인정하지."

"자네들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럴 수 있나?"

"왜 조사하지 않았나?"

"조사…? 이미 다 끝난 마당에…? 더구나 우리들 중 일부가 자네들에게 설득되어 넘어갔더군."

"설득이 아니라 그가 죽은 것에 대한 반발이었네. 주원장에 대한 반발이었지."

섭장천은 이왕 털어 놓은 마당에 모두 털어내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이것은 도박이었다. 이들은 절대 걸림돌 정도가 아니었다. 만약 그를 죽인 누군가가 밝혀지고 그 복수를 그 아들인 담천의가 외친다면 이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자들이었다. 누가 그 분노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긴 그랬겠군. 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고자 나설 곳은 없었겠지.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슨 말인가?"

"우선 자네들… 자네들은 애써 우리가 그랬을 것이라 믿고 싶었겠지만 황제의 칙령 때문이었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어. 더구나 그는 남옥과 관계가 있었지만 자네들은 아니었지. 주원장의 마지막 숙청이 될 남옥숙청에 자네들은 나서야 했겠지.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네들이 모셨던 그가 죽었음을 알았어. 조사 하는 것은 황제에 대한 항명이었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옥의 옥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흩어졌다. 담명 장군의 죽음은 그들에게 불신을 심어 주었다. 더구나 그들의 가슴 속에 못을 박고 고통을 준 것은 '방관'이라는 괴물이었다. 그들은 분명 담명 장군이 어떤 형태로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담명 장군 스스로가 그 사실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방관했다. 그 방관이 그를 죽이는데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지. 우리 모두… 아니 세상 모두… 힘을 가진 자들이라면 모두 그가 죽기를 바랐어. 황실에서 보면 위험한 존재였지. 언젠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존재였고, 그것이 항명이란 형태로 나타난 것이지. 만약 그가 남옥대장군에게 미리 그 사실을 알리고 역모를 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노는 처음 해보는 위험한 상상이었지만 어찌 보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들의 힘은 막강했다. 더구나 남옥대장군에게는 군사가 있었다. 그들이 그 지휘계통을 미리 끊지 않았다면 금릉을 둘러싼 수만의 군대가 움직였을지도 몰랐다. 남옥대장군이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중회 역시 마찬가지… 그 당시 매우 위험하다 할 정도로 그들은 궁지에 몰리고 있었지. 그들이 왜 회주를 세 명씩이나 둔지 아나? 당시 회주가 너무 빨리 죽었기 때문이지. 도저히 그 맥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으니 말이야. 자네들의 그 재빠른 솜씨 때문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

비웃는 것인지 정말 감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옳았다. 백련교도들의 색출작업은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었고, 남은 것은 오중회였다. 그들은 당시 상당히 위험한 존재였다. 황제 암살이나 황자들에 대한 암살 시도가 계속되고 있었던 때였다. 더구나 그 당시 황태자였던 의문태자의 죽음은 그들의 짓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있어 아예 뿌리를 뽑으려 했던 것이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뿌리를 뒤흔든 그를 가만둘 수 없었지. 그들 중에는 지금이나 그 때나 관직에 있던 자들도 있었으니 뇌물과 간언으로 그를 모함하기 쉬었다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몇몇 실세들에게 전달되었지."

"들은 바 있네."

마노 역시 균대위에 대한 모함과 그 수장에 대한 모함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비밀스런 조직이었지만 시일이 흐르면서 고위관리들은 쉬쉬하면서도 균대위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것은 그들에게 무한한 공포를 심어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줄을 죌지도 모르는 조직에 대한 모함은 어쩌면 당연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네. 그의 죽음에서 가장 이득 본 것은 우리였네.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었으니까… 자네들은 방관했다는 자책감에 숨어 들어갔고…."

담명이란 존재의 죽음은 사실 모두가 원한 것이었다. 서로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그의 죽음을 원한 것이다. 또한 조금씩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일조를 했다. 만박서사 구효기나 몽화가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 의미는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그 사안(事案)에 대하여 조사를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자네들…? 아니면 황실…? 오중회…?"

섭장천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그 사안은 아무도 건들 수 없는 '뜨거운 감자'였다. 차라리 모른체 하고 묻어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 마노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래도… 그래도 분명 그 양반을 죽인 자가 있을게 아닌가?"

마노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 씰룩거렸다. 그 순간 그 말을 외친 마노나 그 외침을 들은 섭장천이나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저지른 일은 아닌가?)

강하게 부정은 했지만 이제는 자신들도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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