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땅>과 <안전한 풍경>.미국이 만든 가장 안전한 이라크의 풍경?양김진웅
대한민국 두 종족
'제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에 진주한 미군은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단독정부 수립까지 3년 남짓 이뤄진 통치 기간동안 남한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정부였다.
미국의 석학 브루스커밍스(시카고대 역사학 교수)는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1950년 훨씬 이전, 미국이 정식으로 군정을 실시했던 3년간 점령기로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움을 표시한다. 4·3은 바로 그 시기에 일어난 일 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미간의 비밀협약에 따라 미군은 1949년 6월까지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 통제했다. 따라서 1945년 점령부터 1949년 6월말 철수할 때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 잔혹행위에 대해 미국은 단지 윤리적 책임만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법률적인 책임이 있다"고 그나마 미국 국민의 양심을 대변했다.
4·3기획가로 활동하는 작가가 '화해'와 '상생', '평화'의 키워드가 난무하는 21세기에 여전히 '미국'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제국 아메리카'의 문제가 제주 4·3의 문제임을 넘어 분단 상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대한민국엔 두 종족만이 있다.
한 종족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4.3의 살륙이 정당했다는 종족과 또 한 종족은 절대로 그런 살륙이 반복되어선 안된다고 외치는 종족.'
| | '21세기에 존재한 엄연한 미국의 그늘' | | | 전시 후기- "아날로그 감성의 작가가 시도한 디지털 이미지" | | | |
| | ▲ 화백 박경훈 | ⓒ양김진웅 | | 작가에게 미국과 4·3은 제주 역사에서 볼 때 분단이 만들어놓은 '쌍생아'다.
주로 부시의 이미지 비틀기를 통해 '제국 아메리카'의에 대한 사유의 틈을 벌리려는 그의 의도된 작업들은 CG(computer graphics) 작업을 통한 디지털프린더 작업물들이다.
그의 특기인 손 작업을 떠나, 손맛과 촉각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에만 의존한 채 가장 비물성적인 작업을 시도한 이유는 뭘까.
작가는 "이미지 전쟁의 시대에 이미지를 교란, 조작, 재배치하는 전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되묻고, "가령 '김일성'을 '김일성 주석'과 '김일성 괴수'라고 부를 때 그 이미지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America를 '米國'으로 표기하는 중국, 북한, 일본 등 3국과 달리 유독 남한만은 '美國'으로 고수하는 이미지 왜곡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표기상의 차이는 글자 하나지만 현실에서의 효과는 국민적 정서를 교묘하게 친미(親美)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정교한 문화적 이미지 전략의 장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근대사에서 여전히 '금기의 인물'인 무장유격대 최고사령관에 대한 그의 접근 의도 또한 엿보인다. 한라산과 오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화, 김달삼 이후 무장유격대의 최고지휘관이 된 이덕구(제주도인민해방군 제2대 사령관)의 학창시절 얼굴을 합성시켜 놓음으로써 작가 내면의 의식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작가의 이력으로 봤을 때도 이번 개인전은 꼭 10년만은 아니다.
1985년 첫 개인전을 가진 박경훈(44)은 '목판화'에 매료된 후 '그림패 보롬코지'를 통해 <나의 칼 우리노래> <4.3 넋 살림전> 등으로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명징한 주제의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전은 이번을 두번째로 꼽는다.
초대 그림전 <높은 오름, 너븐 드르>(1995.갤러리제주아트) 이후 지난 10년간 줄곧 디지털 기법에 의한 이미지 합성 작업에 대한 결과물인 것. 그는 "4.3 50주년 기념 초대 <바람길 넋살림칼>(1998) 역시 이전 작업물(판화)의 모둠전이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말대로 '20년만의 전시'인 셈이다.
(사)민족미술인협회 제주지부 탐라미술인협회를 함께 이끌어 온 화가 강요배씨는 "여타 장르의 표현 보다 명징한 주제 의식이 돋보인다"며 "어줍잖은 회화 보다 오히려 강렬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몽타주 기법의 응용으로 해석되는 그의 작업은 철저히 '대상의 리얼리티' '시각의 리얼리리'를 추구하는 듯 보인다.
미술평론가 김현돈씨(제주대 철학과 교수)는 "그의 머리와 손은 디지털 이미지의 합성 작업에 익숙하지만 가슴은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감성 코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며 "포스트모던한 디지털 정보로 재단하기엔 4.3의 역사인식은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 양김진웅 | | | | |
덧붙이는 글 | 박경훈 순회 개인전은 제주전(4.26~5.2)에 이어 5월 광주전(5.8~14, 5.18 문화회관)과 부산(5.31~6.19, 부산민주공원 기획전시실), 청주, 수원, 인천, 서울, 원주 등으로 이어집니다. 문의 725-4410, 011-698-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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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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