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이돈명 변호사인권위 김윤섭
그는 자신이 보던 책을 들어 보인다. 600쪽에 달하는 <유러피언 드림>(제레미 리프킨 저)이 전혀 부담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책상 위에는 요즘 나오는 각종 서적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비록 변론을 맡거나 하진 않지만 그는 늘 책을 본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으로 다음을 꼽는다.
"중요한 것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나와 더불어 같이 사는 사람들의 위치에서 볼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앞으로의 진로를 계속 걱정하고 생각하고 서로 토의하는 게 늙을수록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 기능이 소멸되면 세상 사람들이 상대를 안 해 주지요."
법조계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모두 그를 존경하는 이로 꼽는데 서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자 그는 소탈하게 웃는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사각지대에 관심 기울여야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저 박정희를 굉장히 무서워하던 시대에 법정에서 인권 변론을 한 것이죠. 법정 변호사 대기실에서 다른 변호사들은 우리를 만나면 슬슬 피하는 거예요. 그때 같이 일하던 우리 변호사들이 많이 속상해 했지. 우리가 잘못하는 거냐고, 왜 우리에게 그러느냐 하면서."
그때 그는 이렇게 다독거렸다.
"그 사람들 입장을 생각해야지. 그럴수록 우리가 다가가서 인사하고 다정하게 말도 걸고 해야 한다. 같이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럽고 죄스러워서 그런 것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선대 총장으로 학생들을 돌보기도 했고 지금도 인권단체의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그는 나직하게 말한다.
"좀더 일을 많이 했어야지. 그때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가톨릭 신자가 된 지 꽤 오래 되었다. 그가 종교인이 된 것 또한 인권 활동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정희를 규탄할 때 저것이 종교의 참뜻이구나 싶어서 신자가 된 것이지요. 입교 동기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가톨릭 하면 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다 싶어요. 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종교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일 것이지만 그것이 어떤 차원이든 간에 약한 사람, 병든 사람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한편이 되어 주고 그들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이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모순, 자본문화의 수탈에 치인 이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날 국제적으로 받은 지원과 축복을 되갚을 때가 아닌가 합니다."
국가보안법과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그에게 보수주의의 목청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의견을 물어 보았다.
"보수주의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수사회 쪽에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지위, 지위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항상 누리려 하는 그런 것을 보수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요. 나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항상 거부하고 반대하고 오히려 규탄하는 편입니다.
다만 옳은 전통을 계승하고 그 전통이 낡으면 새롭게 바꿔가는 이러한 보수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닌 한, 대립이라는 것도 충분한 타협이 가능한 것이라 봅니다. 원수처럼 상극하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진전, 사회적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지요. 자기 것을 양보하려고 하지 않으면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을 화살로 만들어 역사의 급류 속을 뚫고 지나온 이. 결국 과녁을 맞히고 그 질주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던 이. 그는 지금도 젊은 변호사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누는 자신을 '복 많은 영감'이라고 한다. 언제나 누구와도 함께 동시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는 말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