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숙제는 뭐예요?

<오마이뉴스> 기사 응모는 내게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등록 2005.05.05 01:29수정 2005.05.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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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회원가입을 하면서 기자소개 란에 다음과 같이 두서없이 썼다.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내 집 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춰놓았던 날개를 끄집어내어 내 겨드랑이에 다시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야겠다. 딱히 글을 쓴다는 것보단 그저 내 가슴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들을 글이란 것을 통해 가끔 표현하는 정도다. 아마도 그건 내가 살아가는 필요충분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작정 쓴다. 내 가슴에서 어떤 형태의, 어떤 아우성이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시골아줌마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다. 그건 장날 5000원이면 아주 흡족하게 사 입을 수 있는 몸뻬 바지 대신 살갗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촉감만으로도 짜릿한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선녀의 날개 한 자락 같은 것이었다.

아내라는, 엄마라는, 딸자식이라는, 며느리라는 이름이 아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정혜란 이름은, 내 마흔 둘의 인생에 마술을 걸어 버렸다. 순간순간 신열로 들뜨게 하고, 흥분에 입술이 파르르 떨리게도 하고 괜히 실실 웃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 시간이 벌써 한 달 보름. 정말 눈 깜짝할 사이라더니 아주 적절한 표현인 듯싶다. 그동안 나는 하루 종일 내가 동동거리는 이 울타리 밖을 원 없이 구경하였다. 시간마다 아니 매 분마다 쉴 사이 없이 올라오는 시민기자들의 기사들을 보면서 내 삶과는 다른, 참으로 생경스러운 그네들의 세상살이를 돈 한 푼 내지 않고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오전 한나절은 커피 한 잔 여유롭게 마시며 감미로운 봄바람까지 향유하는 내 평범한 일상에 철철 넘치는 짜릿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내가 누리는 그 짜릿한 행복을 그냥 그대로 보아 넘겨주지 않았다.

아주 지독한 숙제들을 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기사공모들이 그것이었다. 응모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무어라 말할 사람도 없건만 기사공모 주제를 본 순간 머릿속에선 그 주제의 연결고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더니 서로 이리저리 부딪히다 못해 윙윙 울부짖기도 하고 또 서로 끌어안기도 하고 급기야 밖으로 튀어 나오려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 숙제들을 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은 어지럽게 난무하는 그 생각들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 버릴 듯했다. 나는 머리를 싸매야 했다. 꼭 해야만 하는 숙제들이었다.

맨 처음 ‘내 집 마련 분투기’라는 주제를 접하는 순간. 가슴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 시댁에 들어선 순간 집이 낡아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꼈다. 재개발 소문이 무성한 그때, 한 푼이라도 더 준다는 부동산을 찾아 하루에도 수십 군데를 쫓아다녀야 했다.


무허가 집을 판 돈으론 시부모님께 새 집을 마련해 드린다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지만, 30년이란 세월을 저당 잡히며 기어이 새 집을 마련해 드렸을 때 시부모님의 두 눈에 그렁그렁했던 눈물로 이미 내 가슴은 큰 강을 이루었다.

며칠 동안, 나는 시간을 그때로 되돌려야 했고 그때의 그 아픔 속으로 나 자신을 고스란히 내동댕이쳐야 했다. 한기가 들고 몸이 떨리고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그렇게 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하지만 ‘내 집 마련 분투기 응모 글’이 편집부로 넘어가던 그 순간, 며칠 동안 나를 초죽음이 되게 만들었던 그 몸살은 이미 내 몸 속에서 후련하게 다 빠져 나가고 없었다.

a 우수작으로 뽑힌 '내 집 마련 분투기' 응모글

우수작으로 뽑힌 '내 집 마련 분투기' 응모글 ⓒ 김정혜

다음으로 기사공모를 한 것은 ‘어버이날 최고의 선물. 부모님 자서전 대필’이었다. 그 주제를 본 순간, 나는 시아버님을 떠올렸다. 명절이나 아니면 집안일로 자식들이 모일 때면 시아버님께서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기를 참 좋아 하셨다. 또 아침저녁으로 안부 전화를 주고받던 죽마고우의 부고를 접하셨을 때는 먼 허공을 바라보시며 인생무상에 며칠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씀이 돈 많은 사람들이 살아생전 자서전 쓰는 그 호사스러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아버님께 비록 제대로 된 자서전 형식은 갖추지 못할지라도, 그 흉내라도 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자서전 대필이라는 참으로 뜻 깊은 글을 쓰게 되었다.

아버님과 함께 한 보름이라는 그 시간은 아버님의 며느리로 살아온 7년이란 세월을 다 뒤엎을 정도였다. 뜨거움으로 서서히 데워지는 가슴. 그 감동은 어느 사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으며 그 불꽃은 눈물 그리고 웃음을 만들며 영원히 내 가슴에 아로새겨 지고 있었다.

나는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글을 넘기고 나서 그 글을 다시 인쇄하였다. 그리고 아버님 성함 석 자를 정성스럽게 쓰고 자서전이란 제목을 붙여 겉표지를 예쁘게 만들었다. 이번 어버이날 아버님께 선물로 드릴 참이다. 아마도 우리 시아버님은 그 어떤 자서전보다도 값지고 소중하게 생각하여 주실 것이다.

a 우수작으로 뽑힌 '부모님 자서전 대필' 응모글

우수작으로 뽑힌 '부모님 자서전 대필' 응모글 ⓒ 김정혜

다음으로 ‘결혼 에피소드’공모였다. 우리집 벽 중앙에 떡 하니 걸려 있는 결혼사진.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게 되는 그 결혼사진. 그것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 결혼사진의 실체에 대해서 한 번 써보라고. 결혼식 전날, 예기치 못한 불상사로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벌에 쏘인 것마냥 퉁퉁 부어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사진 속의 나를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그 연유에 대하여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아마도 수십 번은 더 설명한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단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듣는 이들도 한결같이 '이별여행 다녀와서 그런가. 어째 이 집에선 매일매일 깨가 한 대박씩은 쏟아지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나의 한마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거야’. 그건 바로 남편에 대한 철썩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철없는 치기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남편은 당연히 나를 잡아 줄 것이라고 믿었다. 바꾸어 말하면 남편이 헤어지자고 말한다면 나는 당연히 남편의 바지가랑일 붙잡고 늘어질 것이기에. 왜냐, 우리는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을 무식하리만치 맹신하며 사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서로 한 적이 있다.

"내가 ‘우리 이제 헤어져’ 하는 말은 우리 오래오래 마르고 닳도록 같이 살자는 말로 해석해줘."

a 우수작으로 뽑힌 '결혼 에피소드' 응모글

우수작으로 뽑힌 '결혼 에피소드' 응모글 ⓒ 김정혜

부부싸움. 그것처럼 싱거운 것은 없는 것 같다. 더더군다나 결혼생활이 횟수를 더해갈수록 부부싸움의 싱거움도 그 농도가 자꾸만 옅어져 감을 느낀다. 하여 이번 결혼에피소드를 준비하면서 남편과 함께 그때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았다.

추억. 그것은 지난 시간이기에 그 어떠한 것도 행복이라는 훌륭한 포장을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은 올해 결혼기념일에 그때 그 신혼 여행지를 다시 한 번 다녀오자고 한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렇게 나는 <오마이뉴스>가 내준 숙제를 나름대로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며 훌륭하게 다 해낸 것 같다. 그리고 운 좋게도 다 ‘참 잘했어요’라고 별 다섯 개를 받았다. 다 우수작에 뽑혔으니 말이다. <오마이뉴스>가 다음번엔 또 어떤 숙제를 내줄지 그것이 많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를 준비하면서 천금같은 교훈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처 일깨우지 못한 것들을 새삼스럽게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획의 기사공모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공모를 준비하면서 천금같은 교훈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처 일깨우지 못한 것들을 새삼스럽게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획의 기사공모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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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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