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샘물이 졸졸...박철
아내와 막내 은빈이는 좋아하는 눈치이고, 첫째와 둘째는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시큰둥한 표정이다. 부산으로 이사 와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아침 시간이 많이 지난 터라 가는 도중에 김밥과 과일을 사 갖고 간편한 차림으로 산에 오르기로 했다.
이미 산자락은 초록으로 물들었고, 듬성듬성 철쭉꽃이 반겨준다. 둘째 넝쿨이가 맨 앞에 섰는데,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몸이 날씬해서 그런지 산에 오르는 속도가 제일 빠르다. 늦둥이 은빈이도 힘든 기색 없이 가파른 산길을 잘도 오른다. 나보다 앞서가던 은빈이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빠, 아빠는 왜 빨간 구두 사준다고 약속 해놓고 안 줘요? 제가 7살 때 빨간 구두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제 나이가 10살인데 언제 사 주실 거예요?"
"야, 은빈이 기억력이 대단 하구나. 아빠가 그랬단 말이지? 오늘 산에 갔다 와서 꼭 사줄게. 정말이야!"
구봉산 고스락에 서니 부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시내 뿐만 아니라 너른 바다도 한눈에 펼쳐진다. 부산은 참으로 살기 좋은 도시이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도시이다. 산은 산끼리 이어져 있고 바다는 바다끼리 이어져있다.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셈이다. 도심지 어디에서든, 산에 오를 수 있고, 산자락을 넘어 또 다른 산으로 갈 수도 있다.
오늘 우리집 식구들은 구봉산 정상에 올라 거기서 점심을 먹고 능선을 타고 동아대학교 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길이다. 아내는 초록으로 물든 나무와 숲을 보면서 연신 감탄을 한다. 다 자란 아이들이 우리 내외를 앞질러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 걸 보니 참으로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