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을 운행하는 30년 경력의 기관사 박창순씨인권위 김윤섭
근무교대는 열차가 역사에 머무는 30초 동안에 이뤄졌다. 운전실이 각종 기기로 복잡할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중앙운전대는 자동차의 운전석의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정도다. 항공기처럼 기기 조작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많은 부분이 기관사의 수동 조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운전대는 없으나 속도 조절과 제동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다. 20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는 신호기를 확인해야 하고, 구간마다 속도제한이 달라서 이 부분도 정확히 조절해야 한다. 곡선 구간이 빈번하고, 지하 철로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었다. 심지어 지상의 왕릉을 피하기 위해 지하터널이 심하게 우회하는 경우도 있다.
"기관사는 전동차보다 선로를 잘 알아야 한다. 기관사들에게는 곡선에 대한 공포가 있다. 나도 기관사가 되고 나서 10년 가까이 브레이크를 걸어도 전동차가 서지 않는 악몽을 꾸곤 했다. 레일이 일어나고 기둥이 넘어지는 것 같은 착시에 시달리는 승무원도 있다. 일종의 공황장애인데 그런 사람은 무서워서 전동차를 못 탄다."
필자가 직접 지하철 운전실에 탑승해 보니 가장 갑갑한 것은 풍경이다. 어두운 터널과 콘크리트 기둥의 단조로운 풍경이 반복된다. 그것보다 더 피로한 것은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은 1/3이 지상 구간인데 지상에서 터널로 들어갈 때 일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박창순씨는 이미 40대 초반에 노안이 왔다. 지도가 안 보일 정도이고, 숫자 3과 8, 5와 6이 제대로 식별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도시철도노조가 84명의 기관사를 신경정신과 검진을 받게 한 결과 20명의 기관사가 공황·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기관사들이 집단적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노조는 그중 장애가 심한 7명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해서 4명이 승인을 받았다. 노조는 인명사고의 경험 유무를 산재 승인의 주요 조건으로 삼았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기관사들은 대화를 나눌 때 대체로 목소리가 큰 편이다. 흔히 '가는 귀 먹었다'고 하는 청력 손상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청력보호장구를 사용하는 기관사도 있다. 박창순씨는 집에서 텔레비전 볼륨을 너무 높여서 가족들로부터 자주 지청구를 듣는다.
또한 오랫동안 혼자 근무한 탓에 대화법에 능하지 않은 데다가 늘 초 단위의 스케줄을 따르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 결혼 초에는 가정불화를 겪기도 했다. 이를테면 끼니나 약속 시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요즘 기관사들에게 떨어진 과제는 속도 전쟁이다. 지하철 2호선은 운행속도를 시속 80km에서 90km로 끌어올리기 위해 ATO작업 선로의 지반을 자갈에서 콘크리트로 교체하는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다.
"지금 여건으로는 한 바퀴 도는 데 2분 단축하기도 어렵다. 20분을 단축하라는 것은 기관사들의 속도감으로는 미친 짓이다. 나도 시운전으로 90km를 달려본 적이 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승객들의 입장에서는 빠른 것이 좋겠지만 우리가 속도의 경쟁에 휘말려 있지 않은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녹색병원 신경정신과 임상혁 과장은 협소하고 폐쇄된 공간보다 그런 공간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불안감, 거부감, 공포, 우울증, 적응장애 같은 게 올 수 있다. 인명사고를 낸 기관사에 대한 완충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 계속 차를 타게 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공간의 문제라기보다 근로 환경의 문제다."
작은 공간의 문제는 어쩌면 인간 소외를 낳고 있는 물질문명사회의 한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른다. 우리는 사람 중심의 근로 조건이 무엇인지 아주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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