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으로 친구를 죽였다.” 내신등급제 논란 속에 무한경쟁 입시전쟁터에서 친구를 죽인다는 발상이 섬뜩하다.내신등급제반대카페
"저주 받은 89년생."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로 '내신등급 상대평가제'를 처음 적용 받는 고교 1학년들이 자신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입시교육 역사상 처음으로 촛불집회를 열고 교육당국을 향해 입시제도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대학입시를 앞서 경험한 선배들도 저주 받은 건 마찬가지라며 89년생들은 엄살 부리지 말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과연 대학입시제도로 인해 저주 받은 인생은 따로 있는 걸까? 교육과정과 대학입시제도 변화를 둘러 싼 교육환경을 되짚으며 해답을 구해본다.
광복 이후 시작된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1955년 1차를 시작으로 1997년 7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변화했다. 그 변화에는 대학입시제도는 물론이고 교육이념, 인문-자연계열 분리, 고교평준화, 수능시험, 선택교과제 등 다양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교육과정 57년 역사 동안 7차례 변화, ‘교육백년지대계’ 무색
1차 교육과정(1955년-1962년)은 반공교육과 실업교육을 강조하며 출발했다. 2차(1963년-1972년)에는 고교의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이 처음으로 분리됐다. 3차(1973년-1980년)는 반공교육이 삭제된 때다.
4차(1981년-1986년)는 인문계, 실업계, 특목계 등으로 고교를 구분했으며 처음으로 몇몇 지역에서 일반고가 평준화되기 시작했다. 5차(1987년-1991년)는 우리나라 교육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수능'을 도입했다.
6차(1992년-1996년)에는 대입전형이 교육부 관리에서 각 대학교 자율로 넘어 가며 대학별 입시전형이 처음으로 달라졌다. 7차(1997년-현재)는 학생들의 개인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며 여러 시험과목을 선택으로 바꿨다.
이상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57년 역사 중 길게는 10년에서 짧게는 4년을 주기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책의 일관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대학교를 정점으로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줄 세우는 주범인 대학입시제도 역시 수시로 요동쳤던 것은 마찬가지다. 본고사세대, 학력고사세대, 원조저주세대, 이해찬 1세대, 배틀로얄세대 등 세대 앞에 붙는 수식어는 입시제도 변화만큼이나 다양하다.
본고사세대, 학력고사세대, 이해찬 1세대, 배틀로얄세대 등 세대수식 다양
80학번(79년도에 시험을 치르고 80년도에 대학입학)인 61년생들은 '본고사 마지막세대'다. 이들은 예비고사 성적에 따라 대학지원자격을 획득한 후, 지원한 대학에서 국어, 영어, 수학 등 본고사를 별도로 치렀다.
88학번인 69년생들은 선지원 후시험의 '학력고사세대'다. 이들은 전기와 후기 별로 각각 한 곳의 대학에만 지원이 가능했다. 이들은 평소 성적을 감안해 대학을 먼저 선택지원한 다음 시험을 치렀기에 배짱 지원과 소신 지원이 양립했다.
93학번인 74년생들은 수능이 도입됨에 따라 재수도 못해먹겠다고 투덜거린 '학력고사 마지막세대'다. 94학번인 75년생들은 국가에서 수능을 도입해 대학입시를 쥐고 흔드는 바람에 '원조저주세대'로 불린다.
01학번인 82년생들은 수능 만점자가 속출하며 '물수능세대'로 불렸다. 당시 만점자가 서울대 법대를 탈락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02학번인 83년생들은 '이해찬 1세대'로 불린다.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교육부 때문에 공부를 못했다고 항변했지만, 점수가 대폭 하락하면서 역대 최저의 학력수준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04학번인 85년생들은 '비운의 이해찬 라스트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6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마지막 수능 세대로 83년생과 84년생 재수생들까지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녹초가 됐다. 05학번인 86년생들은 중학교 때까지 6차였다가 고교에서 7차가 적용된 첫 세대다. '짬뽕 7차 1세대'로 불린 이들은 참고할 만한 이전 기록이 없어 대학선택 기준에 대해 갈팡질팡했다.
07학번이 될 88년생들은 이후부터 적용되는 내신등급제로 인해 재수하면 인생은 끝이라며 불안해 한다. 08학번 예정인 89년생들은 말은 7차인데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입시제도가 적용되는 '배틀로얄세대'라 자칭한다. 내신등급제는 친구를 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학년별 4번의 시험과 수능까지 감안할 때 사실상 13번의 수능을 치르는 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대학입시제도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거쳐 81년부터 치러진 학력고사, 93년부터 시작한 수학능력시험, 2008학년도 대학진학을 위해 2007년 평가부터 적용될 내신등급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본고사는 본고사대로, 내신등급제는 내신등급제대로 각각의 장단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학생은 돼지, '등급'에 따라 백화점(일류대학)과 정육점(이삼류대학)으로 간다"
양강욱(88학번)씨는 학력고사세대에 대해 "학력고사, 체력측정, 내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 받으며 선지원후시험으로 대학에 입학했다"고 소개하며 "교육환경의 개선은 예나 지금이나 요구되지만 수능이든 내신등급제든 수시 별로, 가나다라군 별로 여러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고 말했다.
수능과 대학별고사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 오모(95학번)씨는 "입시총점이 내신 400점, 수능 200점, 본고사 400점이었는데 내신이 부족하면 수능으로, 수능이 부족하면 본고사로 서로 보충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본고사는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사교육이 조장된다고 걱정하지만, 과외로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기 때문에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 안소현(00학번)씨는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능이 좋았다"며 "내신등급제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불신한다는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뜩이나 내신조작, 부정입학 등 어수선한데 학생들끼리 무한경쟁으로 치고받으라는 식의 입시제도는 너무 잔인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내신등급제를 처음 경험하는 김홍석(고1)군은 "사람을 딱 잘라서 등급을 매기는 것이 비인격적으로 느껴져 내신등급제를 반대한다"며 "강남의 고교와 인천의 고교에서 똑같이 1등급을 받아도 실제 평가는 다를 거라는 인식을 보면 도대체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 주려는 것인지 절망을 심어 주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내신평가의 공정성과 고교등급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김군은 학생들의 신세를 돼지에 비유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배제하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식용 돼지나 다를 바가 없다"며 "학교라는 우리에 갇혀 시험이라는 것에 사육돼 '등급딱지'에 따라 어떤 돼지는 백화점(일류대학)으로, 어떤 돼지는 정육점(이ㆍ삼류대학)으로 간다"며 교육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은 교육과정 변화는 '전인교육'을 위한 대전제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논의의 중심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일 최근 논란을 지적한 '학벌없는사회'의 요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좋은 대학의 입학이 교육의 지상과제인 입시경쟁의 상황에서 대입전형의 내용은 내신중심이건, 수능중심이건 학교교육의 정상화와는 무관하다. 수능중심이면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이 번성하여 학교는 입시교육에 뒤쳐질 것이고, 내신중심일 경우 학교는 입시기관이 되어 입시전쟁터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사태는 문제제기의 수준에 그칠만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학교는 본격적인 입시전쟁에 돌입하였고, 학생들은 교육부의 내신중심 입시의 과대광고와 서울대의 내신비중 동결과 논술 등 대학별 고사가 본고사로 부활될 것이라는 상반된 소식 가운데 극도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태의 책임 당사자인 교육부에 대학서열체제를 완화시키기 위한 가시적 정책대안을 요청함과 동시에, 이를 도출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합의기구를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더불어 죽어 가는 학교교육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안위만을 추구하는 서울대에 대하여 우리 교육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여 줄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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