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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부인이 조그마한 아기 바구니를 들고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이곳 캐네디언들은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들고 다닙니다. 처음엔 그렇게 아기들을 물건 다루듯 하는 모습이 너무 생소하고 때론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되려 어릴 적 부터 저렇게 기르니 아이들이 칭얼거리며 엄마에게 달라붙는 모습이 별로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기를 데리고 외출 할 때면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엄마 가슴을 아기가 느끼도록 앞으로 매고 다녔지요. 우리 아이 둘도 그렇게 키웠고, 그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지금도 가끔 꺼내봅니다.
자랑스럽게 아기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아기가 잘생겼지요? 7개월 됐어요" 하고 저의 동의를 구합니다. 가끔 아기를 낳아 바구니째 카운터에 올려 놓는 손님들에게 저희 부부는 진심반 영업차원반으로 호들갑을 떱니다.
"와! 아기 정말 예쁘네요!"
"아기가 정말 씩씩하게 보여요!"
혹은 "여보! 얘 자는 모습 좀 봐. 정말 천사지?" 이렇게 해주면 젊은 아기 엄마나 아빠들의 표정이 자랑스럽게 변합니다. 그러나 스튜어트 부인이 데리고 온 입양된 7개월짜리 한국남자 아기를 보는 순간에는 그런 반자동화된 표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외입양아'란 단어를 신문이나 TV뉴스에서만 보고 듣다가 이곳 캐나다에 이민 와서 처음으로 직접 보게 되니, 순간 난감하고 어색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으레 '극찬' 하던 말들이 자동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개월 된 '타일러'란 이름의 한국 남자 아기가 저를 올려보며 '쭐쭐이(아기가 엄마 젖꼭지 대신으로 빠는 것으로 이곳에서는 '수더(Soother)'라고 합니다)'를 빨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막 젖니가 나서 엄마 젖꼭지를 깨물 때면 고무로 된 젖꼭지 모양의 쭐쭐이를 물렸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 '쭐쭐이' 혹은 '공갈 젖꼭지'를 꽤 물고 다녔죠.
온순한 성격의 스튜어트 부인은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유독 한국 아기를 입양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 세탁소에서 자주 했습니다.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도 했고, 올 5월이면 아기가 온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온 지 이틀만에 우리 가게에 데려 왔다는 말에도 나는 그냥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못해 건성으로 "아기가 참 잘생겼네요…"라고 했지만 내심 복잡했습니다. 이제 막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성장을 이룬 내 조국이 아직도 '홀트' 입양으로 인식되는, 영아 입양 수출국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탓일까요.
무엇보다 정말 그 '성택'이란 한국명을 가진 남자아기가 잘 생겼다는 사실이 아이 엄마가 바구니를 들고 나간 후에도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제 저희 부부도 50대 초입으로 들어서서 쭐쭐이를 물리며 아기를 키운 추억도 가물거리는 터라 갓난아이들을 보면 국적을 떠나 모두 귀엽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성택'이는 누가 보더라도 늠름하고 총명하게 보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무슨 사연이 묻어있길래 이곳 먼 캐나다까지 입양되었는지 모르지만 마냥 남의 아이 같지 않은 여운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그 젊은 부인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보게 되겠지요. 한국인의 피를 받은 아이가 외국 가정에서 자라고 성장하며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까지 느끼게 되는 과정을 거치겠지요.
이민 오기 한참 전의 일이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떤 TV에서 특집으로 내보낸 스웨덴 입양아가 자라서 한국을 다시 찾아온 장면입니다. 입양아가 스웨덴에서 자라서 그곳에서 또 미혼모가 되어 여자아이까지 데리고 한국을 찾은 특집내용이었습니다. 동양의 '참선'에 관심을 가진 그녀가 가부좌를 하며 참선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은 아직도 슬픔으로 저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혈통 중심 사고로 국내 입양이 어려워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사정도 알지만 이곳에서도 한국인 가정이 한국아기를 입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습니다.
때문에 사랑으로 작은 실천을 하고 있는 젊은 스튜어트 부인을 보면 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더우기 해맑은 표정으로 자기 피부와 비슷한 모습의 중늙은이 저를 쭐쭐이를 문 채 올려다 보는 '성택 타일러'를 보니, 더욱 죄스러워지는 5월입니다.
덧붙이는 글 | 토론토 세탁소에서 보는 이민 가정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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