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입맛, 눈물 쏘옥 빼는 낙지볶음으로 잡으세요

<음식사냥 맛사냥 20>입에 불이 붙은 것처럼 매콤한 '낙지볶음'

등록 2005.05.09 15:09수정 2005.05.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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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무교동 낙지볶음의 원조 '이강순 실비집'

무교동 낙지볶음의 원조 '이강순 실비집' ⓒ 이종찬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거덕 삐거덕 소리를 내는 나무계단과 마룻바닥. 70년대 전봇대나 허름한 가게 들머리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방공방첩'이라는 글씨가 쓰인 차림표. 어릴 적 초등학교 교실에서 보았던 낡은 탁자. 시골 목로주점에 아무렇게 놓여있어야만 어울릴 것 같은 낡고 긴 의자.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매워 보이는 시뻘건 낙지볶음이 넘치도록 담긴 하얀 플라스틱 접시.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수북하게 담겨 나오는 콩나물.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국물과 함께 반쯤 담겨 나오는 동그란 단무지. 연초록 플라스틱 병에 담긴 허연 빛깔의 서울막걸리 한 병.


이러한 풍경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곳이 무교동 낙지볶음의 원조라 불리는 '이강순 실비집'(서울 종로구 청진동 277)이다. 교보문고 맞은 편 종각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는 40년 전통의 이강순(68) 실비집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야말로 70년대 낡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낙지볶음(2인분 14000원) 전문점이다.

a 교보문고 맞은 편에 있는 40년 전통의 '이강순 실비집'

교보문고 맞은 편에 있는 40년 전통의 '이강순 실비집' ⓒ 이종찬


a 삐걱거리는 나무계단과 낡은 탁자, 긴 의자가 1970년대 풍경을 연출한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과 낡은 탁자, 긴 의자가 1970년대 풍경을 연출한다 ⓒ 이종찬

지난 달 22일(금) 오후, 전기철(숭의여대 문창과 교수) 시인과 함께 찾은 이강순 실비집. 이강순 실비집은 들어서는 순간 그 낡고 허름한 분위기 때문에 금세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깡촌의 허름한 목로주점으로 날아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어디 그뿐이랴. 아직 저녁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손님 또한 어찌나 많은지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낡고 긴 의자에 엉덩이를 나란히 붙여놓고 허연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 시뻘건 낙지를 콩나물에 맛나게 비벼먹으며 이마와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마구 훔치는 사람. 시뻘건 낙지국물에 밥을 비벼먹다가 입을 호호거리며 찌그러진 냄비에 담긴 시원한 조개탕(9000원) 국물을 열심히 떠먹는 사람.

왁자지껄한 실내. 잔칫집이 따로 없다. 마치 종로구에 있는 동네잔치가 이곳에서 한꺼번에 벌어진 것만 같다. 잠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저만치 차림표 옆에 있는 자그마한 빈자리에 앉자 전기철 시인이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낙지볶음과 막걸리를 시킨다. 그리고 이 집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1970년대, 무교동 하면 일자로 쭉 늘어선 낙지골목이 유명했잖아요. 그중에서도 이강순 실비집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요. 전국 각지에서 이 집 낙지볶음을 먹으려고 올라올 정도였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집이 청진동에 있어도 아예 무교동 낙지 집으로 통하잖아요."

a 막걸리 한잔과 함께 먹는 낙지볶음의 맛은 기막히다

막걸리 한잔과 함께 먹는 낙지볶음의 맛은 기막히다 ⓒ 이종찬


a 한 점 입에 넣으면 눈물이 쏘옥 빠질 정도로 맵다

한 점 입에 넣으면 눈물이 쏘옥 빠질 정도로 맵다 ⓒ 이종찬

저만치 벽에는 이 집을 소개하는 커다란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그 액자에는 1992년도에 무교동에 빌딩이 들어서게 되면서 청진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글과 함께 60~70년대 배고픈 대학생들이 많이 찾았다고 되어 있다. 이어 '너도 나도 무교동 낙지볶음의 원조라고 이름 붙여' 그때부터 할 수 없이 이강순이란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써 있다.


그렇게 4~5분쯤 지났을까. 허연 쟁반에 시뻘건 국물이 철철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 담긴 낙지볶음이 막걸리 한 병과 함께 낡은 탁자 위에 올려진다. 따라 나오는 밑반찬도 거의 없다.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수북이 담긴 콩나물 한 그릇과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반쯤 담겨 나오는 동그란 단무지뿐이다.

잠시 머뭇거리자 전기철 시인이 낙지볶음은 이렇게 먹어야 맛이 좋다며 콩나물에 낙지 몇 점과 시뻘건 낙지국물을 올려 쓱쓱 비빈다.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키더니 낙지볶음과 함께 잘 비벼진 벌건 콩나물을 한 입 가득 넣는다. 이어 흐뭇한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빤히 바라본다. 이렇게 한번 먹어보라는 투다.


이에 질소냐. 나 또한 허연 막걸리를 쭉 들이 킨 뒤 콩나물에 잘 비벼진 낙지볶음을 한입 가득 넣는다. 이내 코를 톡 쏘는 매운 맛과 함께 쫄깃쫄깃 씹히는 낙지의 매콤한 맛.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의 달착지근한 뒷맛도 아주 깊다. 근데, 너무 맵다. 혓바닥이 화끈거릴 정도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매운 그 맛 때문에 막걸리에 손이 절로 간다.

a 이 집 낙지볶음은 질좋은 국산 고추와 마늘, 생강을 쓰기 때문에 속이 쓰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낙지볶음은 질좋은 국산 고추와 마늘, 생강을 쓰기 때문에 속이 쓰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 이종찬


a 낙지볶음은 콩나물에 비벼먹어야 제맛이 난다

낙지볶음은 콩나물에 비벼먹어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쌀뜨물보다 더 하얀 막걸리 한 잔 쭉 들이켜고 낙지볶음에 비빈 콩나물 한 입. 막걸리 한 잔 쭉 들이켜고 낙지볶음 한 점. 시뻘건 낙지볶음 국물에 밥을 비벼먹으며, 입속이 화끈거릴 때마다 막걸리 한 잔 들이키는 그 맛도 정말 기막히다. 그렇게 낙지볶음을 다 비워갈 때쯤 되자 이마와 목덜미에는 마치 불가마에 들어있는 것처럼 땀으로 흥건해진다.

이 집 낙지볶음의 특징은 입에 넣으면 불이 붙을 정도로 매콤한 그 맛에 있다.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손님들 중에서는 간혹 낙지볶음이 너무 매워 속을 버리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며, "질 좋은 국산 고추와 마늘, 생강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속이 절대 쓰리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이강순 실비집의 낙지볶음을 만드는 비결은 미리 많은 양의 낙지를 양념에 버무려놓고 주문 즉시 다진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 큼직하게 썬 굵은 파, 설탕과 조미료를 넣어 재빨리 쓱쓱 볶아내는 것. 특히 낙지볶음의 지독하게 매운 맛은 바로 어떤 고춧가루를 얼마나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달라진단다.

a 낙지볶음의 시뻘건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그 맛도 기막히다

낙지볶음의 시뻘건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그 맛도 기막히다 ⓒ 이종찬


a 이 집 낙지볶음의 특징은 입에 넣으면 불이 붙을 정도로 매콤한 그 맛에 있다

이 집 낙지볶음의 특징은 입에 넣으면 불이 붙을 정도로 매콤한 그 맛에 있다 ⓒ 이종찬

"낙지볶음은 조개탕과 함께 먹어야 제 맛이 나요. 낙지의 매운 맛을 시원한 조개탕 국물이 달래주거든요. 특히 조개는 차가운 성질이 있기 때문에 매운 맛을 내는 낙지볶음과는 음식궁합으로도 참 잘 어울린다고 봐야지요."

덧붙이는 글 | ※이강순 실비집(02-732-7889)/낙지볶음(14000원), 조개탕(9000원), 감자탕(9000원), 낙지파전(7000원), 낙지만두(6천원).

덧붙이는 글 ※이강순 실비집(02-732-7889)/낙지볶음(14000원), 조개탕(9000원), 감자탕(9000원), 낙지파전(7000원), 낙지만두(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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