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과 된장에 무친 봄 배추와 구수한 된장찌개김정혜
그때 고개를 있는 대로 숙이고 배추를 솎고 있던 내게 친정어머니께서 불쑥 한마디 던지신다.
"이거는 사진 안 찍나?"
언젠가부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사진을 찍어대는 딸자식의 뜬금없는 취미생활을 꼬집어 하신 말씀이었다.
친정어머니의 말씀에 영미어머니는,
"사진은 왜?"
영미어머니는 못내 궁금하신지 내 얼굴로 궁금증을 가득한 호기심의 시선을 건네신다.
"아, 맞다. 사진 찍어야지. 아주머니들의 말씀에 넋이 나가 사진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나는 벌떡 일어나 밭고랑 사이를 종종 걸음 쳐 부리나케 카메라를 가져와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배추밭을 찍고 봄배추의 싱그러움도 찍고 다음으로 영미어머니와 친정어머니와 정희어머니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여기 보세요. 예쁜 얼굴들 좀 들어주세요. 그리고 다 아시죠? 김~~치~~~"
"볼품없는 시골 아지매들은 찍어서 뭐 할 건데?"
아마도 영미어머니는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가 도무지 궁금해서 못살겠다는 표정으로 자꾸만 그 연유를 다그치신다. 그런 영미어머니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줌마. 아줌마 봄배추 솎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기사 좀 쓸려고요. 그러니 멋지게 포즈 한번 잡아 보세요."
"뭐 기사. 그럼 내가 신문에 나온다는 그 말이야?"
"글쎄요. 기사가 날지 안 날지 그거는 저도 모르지요."
"그 말은 기사가 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잖아. 그럼 잠깐 기다려봐. 내 가서 준비 좀 하고 올게."
벌떡 일어서시는 영미어머니를 보고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아줌마. 됐어요. 지금도 충분히 예쁘시니까 그냥 얼굴만 좀 들어보세요."
"아이 싫어. 그럼 나중에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찍어. 이대로는 안돼. 내가 신문에 나면 그건 집안의 경산데 이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지."
끝내 영미어머니는 얼굴을 들지 않으시고 고개를 더 숙이고 계셨다.
나는 결국 봄 배추밭의 아름다운 시골 아지매들의 얼굴을 찍는 것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영미어머니는 나중에 꼭 한번 제대로 찍어 달라며 몇 번이나 부탁을 하셨다.
그 사이 봄배추 솎은 것은 저마다 가져간 그릇들에 수북하게 담겨졌고 아주머니들은 엉덩이에 묻은 흙들을 툭툭 털며 집으로들 향하셨고, 그런 아주머니들 뒤로는 푸른 봄 배추들이 봄 햇살을 받아 더욱 더 싱그럽게 쑥쑥 자라고 있었다.
봄날 오후. 봄 배추밭에서 벌어진 한바탕 수다는 봄배추 겉절이만큼이나 아삭아삭한 감칠맛으로 내게 감겨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