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로지향 (鄒魯之鄕) 안동기행

등록 2005.05.10 16:29수정 2005.05.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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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하면 아무래도 '양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성리학의 집대성자 퇴계 이황을 낳았고 그 문하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유학자를 길러내 거대한 '영남학파'를 이루었으니 그 자부심이 과연 헛된 것만은 아니리라.

그런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땅에 유교이념이 들어온 이래로 안동은 스스로를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추로지향'으로 부르며 강한 자부심을 표현해 왔다. 안동이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보다도 국보가 4점이 더 많다는 얘기 또한 안동인들 자부심의 또 다른 표현이다.


때론 그들이 자신들 일족의 부귀영화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어지럽히기도 하였으나, 사람 사이에 예의가 흐르는 인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대의를 지켜왔던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한 차원 높게 승화시켜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일찍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왔는데 피난길의 고단함을 이 고장 사람들의 극진한 정성으로 풀었다 한다. 그래서 내린 이름이 '안동웅부', 공민왕의 친필로 쓰인 이 현판은 지금도 안동 사람들의 자랑거리중 하나이다.

그뿐인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전란이 있을 때에도 사람이 오래 살만한 곳으로 도산과 이곳 안동의 하회를 제일로 꼽고 있다. 이렇듯 지리적으로도 안동은 주변에 높은 산이 많지 않고 낙동강의 물줄기가 곁에 있어 옛 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다.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안동기행을 떠나보자.

전탑의 고장


유학이 자리를 잡기 훨씬 전, 불교가 성했을 때에도 안동은 이 지역의 중심지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고창군'으로 불렸는데 당시의 전탑들이 많이 남아 있어 '전탑'의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드는 전탑은 특이한 지질구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고장에서는 보기가 매우 힘든 유적이다.

신세동 7층 전탑


a 신세동 7층전탑

신세동 7층전탑 ⓒ 이양훈

안동댐과 중앙선 철길을 바로 옆에 두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국보 제16호 '신세동 7층 전탑'이 우뚝 서 있다.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17m 높이의 장대하지만 안정감이 느껴지는 탑으로 안동을 '전탑의 고장'이라 불리게 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수난도 많아 화려했던 금동의 상륜부는 객사의 소용물로 쓰기 위해 녹여졌고 일제강점기에는 보수라는 명목 하에 탑의 기단부를 시멘트로 덧칠해버려 전체적 생김새가 기형적으로 변해 버렸다. 그뿐 아니라 탑은 중앙선 철길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진동음에 늘 노출되어 있다. 대책이 시급하다.

동부동 오층 전탑

안동역 철우회관 구내에 보물 제56호 동부동 오층 전탑이 있다. 원래는 신세동의 것과 같이 7층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오층만 남아 있고 금동의 상륜부는 임진년 조일전쟁 당시 명나라 군인들이 도둑질해 갔다고 안동의 지리지 '영가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봉감 모전오층탑

a 봉감 모전오층탑

봉감 모전오층탑 ⓒ 이양훈

정확히는 영양군에 속하지만 넓게 보아 '안동권'이라 할 수 있는 영양군 입암면 신해리에 국보 제187호 '봉감 모전오층탑'이 있다. 마을길을 따라 휘적휘적 걷다보면 동산천 줄기를 바로 곁에 두고 탑이 우뚝 서 있는데 수성암을 벽돌처럼 잘라 만든 것이다. 그 높이가 무려 11m. 그러나 탑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아름다운 비례에 상승감이 더해져 흡사 경주의 감은사탑을 보는 듯. 마을사람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한 가운데에 이렇게 천 년을 버텨온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목조건물의 박물관 천등산 봉정사

안동의 서북방 16Km에 의상대사의 수제자였던 능인대덕이 창건했다는 봉정사가 있다. 영주 부석사에 있던 의상대사가 종이학을 접어 도력으로 날려 보내니 학이 이곳 천등산에 내려앉아 이름을 '봉정사'라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극락전

a 봉정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 ⓒ 이양훈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목조건축물 '극락전'이 있다. 1972년 해체복원시 발견된 상량문에 따라 대략 12세기 중반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대들보 위의 복화반(엎어놓은 꽃 모양)과 공포, 결구처리 등을 근거로 보는 이에 따라 고구려계통의 건축기법으로 8세기까지도 연대를 올려 잡기도 한다. 국보 제15호.

대웅전

현재 봉정사의 주불전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보물 제55호. 퇴락한 단청 때문에 근래에 새로 칠한 극락전보다 오히려 더 고풍스럽게 보인다. 얼마 전 이 대웅전의 후불벽에 걸려있던 탱화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후불벽화가 발견되어 떠들썩하기도 했다. 지붕 용마루의 한가운데에 다른 것과는 달리 유달리 반짝이는 기와가 하나 있는데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방문을 기념한 친필 사인이 들어간 것이라 한다.

이 외에도 봉정사에는 조선후기에 지어진 보물 제448호 화엄강단과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촬영된 요사채 영산암이 있다.

도산서원

a 도산서원

도산서원 ⓒ 이양훈

안동의 동북쪽 35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이 있다. 천 원권 지폐의 뒷면을 장식하고 있기도 하지만 안동을 양반의 고향으로 만든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사적 제170호. 인근에 퇴계종택과 퇴계묘소가 있고 안동댐으로 물에 잠기게 된 광산김씨 동족마을을 옮겨놓은 '오천문화재단지'가 있다.

a 오천 문화재단지

오천 문화재단지 ⓒ 이양훈

하회마을

a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 ⓒ 이양훈

안동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낙동강 본류가 제 몸을 구부렸다 펴 마치 태극문양을 만들 듯이 휘감아 나가는 곳에 하회마을이 있다.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이라는 '연화부수형'으로 대단히 특별한 길지의 하나로 꼽힌다.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 류씨의 동족마을이지만 원래는 김해 허씨와 광주 안씨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유성룡의 맏형이며 류씨 대종택인 겸암 류운룡의 양진당과 서애 유성룡의 충효당. 남촌, 북촌댁 등의 종택들이 있으며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 운치가 남다르다.

부용대

a 부용대

부용대 ⓒ 이양훈

하회마을의 강건너에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나지막한 바위절벽이 있으니 '부용대'다. 달 밝은 밤에 이 부용대에서 불꽃을 내려 보내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이를 즐기는 '줄불 선유놀이'가 전하니 '하회탈놀음'과 함께 하회를 대표하는 전래놀이이다.

병산서원

a 병산서원 만대루

병산서원 만대루 ⓒ 이양훈

풍천면 병산리에 우리나라 서원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병산서원이 있다. 사적 제260호.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로서 류성룡(柳成龍)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柳袗)을 배향하고 있다. 1868(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의 대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가히 일품이다.

주왕산

a 주왕산 주왕암

주왕산 주왕암 ⓒ 이양훈

안동 인근 청송의 주왕산에 가면 짤막한 산보를 하는 정도만으로도 설악산 천불동의 그것과 같은 기암절벽을 구경할 수 있다. 용암이 아닌 화산재의 일종인 '회류응회암'이 흘러내리다가 굳었다는 기암괴석들은 모두 이곳 주왕산이 아니면 좀체 보기 힘든 것들이며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당나라의 '후주천왕'이라고도 하며 신라의 김주원이라고도 하는 '주왕'에 얽힌 전설 또한 산행을 즐겁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길이 잘 닦여 있어 가족들이 함께 하기에도 좋을 듯하다. 인근에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무대였던 '주산지'가 있어 그 비경을 조용히 뽐내고 있다.

a 주산지

주산지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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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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