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은 '때밀이 아저씨'

등록 2005.05.11 09:10수정 2005.05.1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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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사시는 부모님을 찾아뵈면 항상 하는 것이 있다. 가진 재산이 별로 없으니 돈으로 호사를 시켜 드릴 수는 없고, 직장생활을 하느라 곁에서 살 수도 없는 불효자식이기에 찾아뵐 때마다 정성껏 안마를 해 드린다. 아버지를 해드리고 엄마도 해드리고, 머무는 동안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드린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도 해드린다.


어렸을 때 부모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릴 때는 별로 신통치 않아 하셨는데 십수 년을 계속 하다보니 나도 나름대로 이력도 붙어 이제는 무척이나 시원해 하신다. 사실 어렸을 때는 마지못해 했기에 성의가 부족했고, 조금 커서는 힘으로만 하려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뭉친 실타래를 풀듯이 손끝으로 느껴지는 세세한 근육을 한올 한올 부드럽게 만져 드린다. 그리고 안마 뿐만 아니라 스트레칭과 지압도 해드리며 다양한 신기술을 선보이니까 어디서 배웠냐며 신기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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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근

주변 사람들한테 배우고,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배운 것도 있다. 그리고 경기장에 출근해 선수들이 스트레칭하는 것을 눈동냥으로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나의 스승은 동네 목욕탕의 때밀이 아저씨다.

9000원을 주고 때를 밀면, 아저씨는 온 몸 구석구석 때를 성심껏 밀고 나서, 때를 밀어준 시간만큼 지압과 안마를 해준다. 어디가 아픈지 귀신같이 찾아내서 꾹꾹 누르고 당기는데 그렇게 깔맵고 시원할 수가 없다.

팔 다리를 당기고 허리나 어깨를 주무르는 것은 기본이고, 올라타서 체중을 이용해 누르기도 하고, 얼굴 위에 수건을 대고 지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발목이나 무릎, 어깨를 이리저리 꺾으며 뭉친 곳을 풀어주기도 한다.


여느 목욕탕과 다른 때밀이 아저씨의 고급기술에 탄복한 나는 물어봤다.

"아저씨, 참 시원해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그는 스포츠마사지 학원에서 정식으로 배웠다고 답했다. 보통 목욕탕에서 때를 밀면 어깨 좀 주무르고 허리 좀 눌러주고 끝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자신은 서비스 차원에서 정성껏 해준다고 했다. 받는 사람들도 좋아하고. 전신 마사지는 3만원인데 자주 받으러 오는 아저씨의 팬클럽도 있다고 했다.

나는 아저씨가 하는 방법으로 부모님께 그대로 해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시더라며 목욕탕에 갈 때마다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럴 때마다 아저씨는 마지못해 알려주셨는데 오늘은 오십견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어깨를 푸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아저씨는 초보자가 아무 데나 마구 누르면 오히려 안 좋을 수가 있으니 학원가서 배워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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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근

그러면서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다. 그냥 회사 다닌다고 했더니 스포츠마사지 학원에 가서 안마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 때밀이를 하는 건 어떠냐고 자꾸 권유했다. 내가 틈날 때마다 안마하는 방법을 물어보니 때밀이 직업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나 보다.

"아저씨,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엄마 아버지 두 분의 전용 안마사로 만족합니다. 오늘도 비기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삼십년 경력의 선배 안마사인 작가 최인호의 이야기를 같이 남깁니다.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인사와 동시에 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언제나 되풀이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가슴 아픈 것은 어머니의 다리가 점점 더 말라간다는 사실이었다. 다리를 못 쓰시게 되고부터는 말라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돌아가실 무렵에는 뼈만 남아 있었다. 다리를 주무르다가 나는 몇 번이고 울곤 했다. 삼십 년 동안 어머니의 전속안마사였으므로 나는 어머니의 다리가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 잘 알고 있었고

- 중략 -

한밤중에 눈을 뜨면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던 그 행복한 기억이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아아,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던 그 작은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가. 어머니가 아직까지 살아 내곁에 계신다면, 그래서 전화를 걸어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얘 아범아, 와서 다리 좀 주물러다우"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가리라.

나는 안다. 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걸어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청승을 떠신 것은 실제 다리를 주물러 주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나를, 이 아들을 보기 원함이었음을. 보고 싶어할 때마다 달려가 주는 그 사소한 행위도 왜 나는 귀찮아 하였던가.

갈 때마다 어머니는 내 앞에 누우셨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고 누우셨다. 어머니는 안마를 하는 손끝에서 육체의 피로를 덜기보다는 자신의 뱃속에서 열달을 키우다가 낳은 자식으로서의 친정(親情)을 마음 깊이 느끼고 싶으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홈페이지 www.seventh-haven.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홈페이지 www.seventh-haven.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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