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82회

등록 2005.05.13 07:54수정 2005.05.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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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장 사랑의 이유

이 세상에 완벽한 비밀이란 없다. 이 비밀이란 것은 괴물과 같은 것이어서 소리 없이 발생하여 연기처럼 흐트러지다가 실처럼 퍼져 나가는 것이다. 이번의 일도 그랬다. 신검산장에서 담천의가 사라졌다는 비밀은 채 이틀이 지나기 전에 알만한 인물들은 모두 알았다.


누구의 입에서 퍼져 나갔는지 모르나 풍철영이 그토록 조심했음에도 그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었다. 본래부터 신검산장을 주목하는 눈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룡번이 있다는 소식과 철혈보, 구파일방의 거물들이 신검산장에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은 당연하게 그곳을 주목하게 했던 것이다.

더구나 담천의란 존재를 주시하고 있던 곳이라면 그가 갑자기 행방을 감추었다는 사실에 비상한 관심을 가질만했다. 이제 비밀은 두 가지였다. 담천의가 어디 있느냐는 것과 왜 그가 행방을 감추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풍철영의 노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담천의를 시야에서 놓친 것은 자신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 풍범이란 아이 때문이었다. 그 아이를 돌려받고 섭장천 일행을 보내주는 순간에 그가 사라졌던 것이다. 더구나 철혈보와 구파일방의 인물들과 섭장천 일행을 처리하는 회합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관심을 잠시 놓았던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는 무언가 마노와 섭장천에게서 들었음에 틀림없었다. 어디까지 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소리 없이 떠난 것으로 보아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으리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원망스러웠다.

(빌어먹을…! 그 늙은이들….)


마노를 닦달해 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추궁만 당한 꼴이 되었다. 마노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 분이 선택한 방법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침묵을 지켰지만 이제 움직일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이것은 담천의가 사라진 것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본래 그들의 힘이었고, 지금은 흩어져 있지만 그리고 냉소적으로 방관하고 있지만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에 보여준 그들의 태도는 심지어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왜… 좀 더 일찍 그를 설득하지 못했던가? 만박거사는 왜… 그리고 그 분은 왜 이토록 신중했던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마노가 자신에게 꾸짖듯 추궁했던 것처럼 일찍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 주었으면 될 것 아닌가? 알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 주었으면 될 것이 아닌가?

(황명을 거부하고 관직을 그만 두었다. 그것은 항명이었다. 황제는 노했고, 담명을 죽이라는 칙명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를 죽인 인물들은…?)

풍철영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췄다. 그 역시 몰랐다. 갑작스럽게 그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말을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분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지만 말을 해 줄 수 없는 내용이었을까?)

정확히 몰랐다면 아는 데까지 말을 해주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말했을 경우에 담천의가 오해할 소지는 많았다. 황실에서 부친을 죽이라고 칙명을 내렸고, 정작 그를 죽인 인물을 밝히지 못한다면 황실에서 죽였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화근을 만드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말을 해 줄 수 없는 내용이었을까? 말을 해 줄 수 없는 내용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황실에서 죽였다는 의미였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선뜻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 분도, 만박거사도 말을 하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정확히 깨닫기 시작했다.

담천의의 약점인 인간관계를 두텁게 쌓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려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이 이제는 틀려 버렸다. 이미 그 분에게 경과를 상세히 적어 전서구를 날렸다. 만박거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자신의 수하들을 풀어 담천의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산서성 내에서 움직인다면 찾을 가능성이 높았다. 총관인 조국명은 산서성 내에 인맥이 많았다. 그가 직접 움직이고 있으니 가능성이 높았다. 빨리 찾아야 했다. 이제 그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가장 위험한 인물이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었군.)

그는 발걸음을 석실로 향했다.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동생과 청송자, 그리고 갈유가 그곳에 있었다. 그들을 직접 돌봐야 했다.

---------------
"소저가 송하령이오?"

난간에 기대어 달을 보다가 느닷없는 사내의 목소리에 송하령은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사내였다. 옅은 청의에 문사건까지 쓴 유생의 차림이다. 여자의 방심을 흔들 만큼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얇은 입술이 왠지 냉정하게 보이게 하는 인물이었다. 바로 전월헌이었다. 송하령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하지만 꾸짖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참으로 무례하군요. 아무 때나 불쑥 불쑥 나타나는 것이 당신들의 습관인가요?"

말은 그래도 그녀의 얼굴엔 노기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녀의 꾸짖는 말에 갑자기 자신이 잘못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맞소. 우리 사형제들은 언제나 무례하오. 하지만 겉으로 점잖은 척 하면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나쁜 짓을 하는 철면피는 아니오."

그는 싱긋 웃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의외로 아름다웠다. 화려한 미모도 아니오, 가련하다거나 여리지도 않다. 청순하면서도 고아하고 품위가 있다. 그녀에게는 사내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은근한 매력이 있었다.

"밤늦게 찾아 온 낮선 사람과는 별로 말을 나누고 싶지는 않군요. 돌아가 주시겠어요?"

사내는 여전히 웃었다. 확실히 마음이 끌리는 여자다. 특히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 온 사내라면 아마 저런 여자를 사랑할 것이다. 그는 몸을 돌리다 말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물었다.

"담천의란 그 사람 말이오. 소저의 마음을 빼앗아갈 정도로 정말 매력 있는 사내요?"

그 말에 송하령은 화들짝 놀랐다. 기이하게도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이 사내의 입에서 왜 그의 말이 나오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서 그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무슨 뜻인가요?"

"매력적인 사내라고 들었소.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는지 묻는 것뿐이오."

송하령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어두운 하늘로 향했다. 여인의 아미 같은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사랑은 매력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어요. 그에게 어떤 매력이 있고,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무어냐고 묻는 것은 바보나 할 짓 이예요. 굳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이유를 묻는다면 단지 그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사내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의 말에 사내는 그녀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내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사내에게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 송하령과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소저는 정말 그를 사랑하고 있구려."

사내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몇 발자국을 걸어가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소저의 흥취를 깼다면 죄송하오. 소저를 몇 번 보지도 못했으면서 소저를 사랑하게 된 바보스런 사람이 있구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소저를 보고 있을는지 모르겠소.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나를 때려죽이려 들거요. 하지만 그에게 말해주어야 할지 모르겠소. 소저를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오."

그는 잠시 고개를 까딱이더니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송하령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저 사내가 말하는 그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과 서가화를 납치해 온 그 사내. 그녀와 몇 번 본 사내라면 그 밖에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납치해 온 그날로부터 자신들에게 불편이 없도록 모든 것을 세세하게 챙겨 주었다.

사내가 저만치 가더니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하이얀 선이 그어졌다.

"두 분 소저는 곧 집으로 돌아가시게 될거요. 그 동안의 대접이 허술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소."

갑자기 무슨 말인가? 저 사내는 지금 장난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저들은 왜 자신들을 납치해 왔을까? 돈이라도 요구했던 것일까? 이제 그 돈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속한 조직이 움직였을까? 아마 자신이 남긴 조직만의 음호(陰號)를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녀의 뇌리에는 한 사내의 영상으로 복잡해 왔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고는 사라진 사내를 원망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나직이 탄식을 터트렸다. 그리고 너무도 담천의가 보고 싶어졌다. 부르면 그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고는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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