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소설] 깜둥이 모세 - 23회

23회 - 모세, 미리암을 만나다

등록 2005.05.14 08:46수정 2005.05.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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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늪에 빠져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바치고 간 꽃이에요.”

함족과 셈족을 통틀어 이집트인은 중산층 이상만 되면 물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종교적인 금기도 약간 있었고 고급 어종만 먹었지, 서민들처럼 즐겨먹지는 않았다. 늪지까지 와서 낚시를 하다 죽은 사람이라면 분명 서민층 이하의 빈곤한 사람들일 터, 그들이 꽃 이상의 헌물을 바칠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데서 소년 혼자 어떻게 살지?”
“물고기는 잘 잡혀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일년에 두세 번씩 보리를 바치거든요. 게다가 이래뵈도 할 일이 많은 몸이에요.”

신전 안은 문자로 빽빽했다. 어린 신관은 하루 종일 신전 안에 눈신의 찬가와 영웅 서사시를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은뎅게이는 모세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세빈투, 읽을 줄 알아요?”
“아주 조금. 게다가 이건 한 문자가 아닌데? 신성문자에 가나안 말까지? 너, 이 말들을 다 읽고 쓸 줄 아니?”

“돌아가신 노사제께서 가르쳐주셨어요.”

두 누비아인은 마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호세아, 너 여기서 혼자 사는 것이 무섭지 않니? 나랑 큰 도시에 가보고 싶지 않아?”

호세아는 작업을 멈추고 모세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만 봐도 모세는 어린 신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업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그건 괜찮아. 도시에는 파피루스 종이가 많아. 거기서 네가 눈신의 사원을 새로 창건하면 되고 문서로 기록해두면 되잖아? 눈신도 이런 쓸쓸한 늪지보다는 큰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싶어하지 않을까?”

모세는 자기의 일을 도와줄 서기가 필요했다. 밑의 셈족 관리들이 모세에게 협조를 잘 안 하니까 더욱 이런 신동이 절실했다. 모세는 감언이설을 총동원해서 호세아를 꼬셨고 결국 그 날 해질 무렵 같이 도시로 돌아갔다.


“하지만 세빈투, 군대 내에 신전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인데요. 게다가 눈신처럼 인기 없는 신을 병사들이 참배할 것 같지도 않고.”
“일단은 세트신의 사원에 가서 맡겨야지. 연못 없는 사원은 없으니까 나름대로 적응하겠지.”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세트신의 신전에 당도한 세 사람은 책임자를 찾았다. 호세아는 태연한 척 하려고 했지만 눈동자는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사제께서는 행사 문제로 수도 아바리스로 가셨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몸에 딱 붙는 하얀 원피스, 사랑의 하토르 여신보다 오뚝한 콧날, 원피스 끈 사이로 보이는 하얀 어깨선, 옷 위로 두드러져 보이는 젖가슴, 치렁치렁한 흑진주빛 머리칼,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미소, 모세는 순간 자기가 여기에 왜 왔는지 잊을 정도였다. 은뎅게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모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네, 실은 이 어린 신관은 눈신의 대사제이신데, 홀로 지내는 것을 보고 제가 여기로 모시고 온 겁니다.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잠시 이 신전에 교육을 부탁드리면 안될까요?”

“눈신이요? 눈신의 사원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음, 이건 제 혼자 결정한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따라오시죠.”

대부분 신전에서 봉사하는 사제들은 아리따웠다. 모세도 그런 사제들을 흔히 봐왔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다른 사제들보다 특히 어느 부분이 더 아름다운지는 지적할 수 없지만 모세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한 미모였다. 모세는 그 여사제 뒤를 따라가며 은뎅게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여기 신전은 축제가 언제냐?”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같이 가던 호세아가 대신 대답했다.

“축제 때에는 사제들이 반라로 춤을 추잖아요.”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뒤도는 여사제와 모세가 눈이 마주 쳤을 때, 모세는 까만 피부가 붉게 물드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여사제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는 호세아는 문이 닫히기 직전 모세에게 날름 혀를 내밀었다.

“세빈투, 정말 저 녀석을 서기로 고용할 생각이슈?”
“닥쳐.”

한참 뒤에 그 여사제와 호세아가 방에서 나왔다. 여사제의 얼굴을 마주 보니 모세의 낯은 다시 붉어졌다. 다행히도 피부가 검다는 것이 신에게 감사할 노릇이었다.

“신전 내의 학교에서 무료로 배우게 해주겠다고 승낙이 내렸습니다. 하지만 숙식 문제는 곤란하다고 그러시는군요.”
“그건 괜찮습니다. 제 막사에서 같이 지내면 되니까요.”

감사의 인사를 하고 세 사람은 세트 신전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카의 꼬리를 잡고 걷던 호세아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여사제 이름이 미리암이었어요. 나 고맙죠?”
“궁금하지도 않아, 짜샤.”

“에이, 맨날 신전에 나 데려다 줄 거잖아요. 미리암 보기 위해.”
“입 다물어라, 응?”
“그런데 세빈투, 사제는 결혼할 수 없잖아요? 파라오라 하더라도 사제한테는 손댈 수 없는데.”
“은뎅게이, 맞고잡냐?”

그날 저녁, 모세는 호세아에게 공짜밥은 없다는 교훈을 맹렬히 주입했다. 힉소스 말단 관리들의 불성실 때문에 처리가 늦은 공문을 몽땅 호세아에게 맡겼다. 자정이 넘어서야 끝난 서류 작업에 모세는 간단히 서명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서기의 이름도 써야지. 호세아란 이름 대신에 이집트식으로 ‘여호수아’라고 적어라.”

모세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이렇게 만났다. 훗날 모세의 누이로 잘못 전해진 미리암 역시 첫 만남은 약간 희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기분 좋은 첫 만남이라 해도 세 사람의 최후는 그리 희극적이지 못했다. 세 사람의 얘기는 쭈욱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미리암이 사제로서 등장합니다. 구약성서에서도 미리암은 아론,모세,미리암 삼남매가 '예언자(?)'로 나오는데, 구체적인 활동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미리암이 사제로서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리 이 소설의 예고편을 보낸다면, 미리암은 장차 이집트의 열가지 저주 중에서 마지막 열번째 재앙을 담당할 것입니다. 열번째 재앙은 인간과 짐승을 합쳐, 모든 맏이가 죽는 저주였죠. 미리암이 뭔 수로 모든 맏이를 죽이냐구요? 그게 소설이 감당해야할 허구 아니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미리암이 사제로서 등장합니다. 구약성서에서도 미리암은 아론,모세,미리암 삼남매가 '예언자(?)'로 나오는데, 구체적인 활동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미리암이 사제로서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리 이 소설의 예고편을 보낸다면, 미리암은 장차 이집트의 열가지 저주 중에서 마지막 열번째 재앙을 담당할 것입니다. 열번째 재앙은 인간과 짐승을 합쳐, 모든 맏이가 죽는 저주였죠. 미리암이 뭔 수로 모든 맏이를 죽이냐구요? 그게 소설이 감당해야할 허구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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