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고 졸업기념 가족 사진- 형님, 어머니, 매부, 준옥, 큰 누나와 함께이풍호
인하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지평중상고와 인천기계공고에서 가르치다 그 뒤 내가 부평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에도 나는 매부께서 우체국장으로 근무하시던 우체국 사택에서 함께 자취했고, 덕적우체국장으로 덕적도에 계실 때에도 방학에 방문하는 등 매부 가족이 사는 곳마다 찾아가 기거했었으니 함께 지낸 시간은 참 길다.
큰 누나는 홍성에 살고 있는 작은 누나, 서울의 여동생 창숙이와 이전에도 나를 보러 미국에 오셨었다. 이번에 매부가 내게 오게 된 동기는 바로 올 봄이 매부와 누나의 7순 생신(동갑)이라, 자손들의 배려로 이뤄졌다.
처음 호놀룰루 국제공항 입국장 밖에서 매부 가족 일행을 만났던 날. 이른 아침부터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서쪽 하늘에는 알록달록 고운 무지개까지 걸려 있어 손님을 맞으러 가는 우리의 마음은 기뻤다.
25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나는 나를 더욱 마음 들뜨게 해준 것은 날씨뿐만 아니라, 내 곁에 나의 사랑하는 외동딸이 함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혼자 자라고 있기 때문에 아빠의 고국인 한국에서 가족들이 온다거나 연락이 올 때마다 아직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아주 기뻐한다. 낯은 설어도 자기의 살붙이라고 가족들에게 기대고 싶어지는가 보다.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누나와는 달리 매부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건강하셨다. 약간의 피부병을 제외하고는 곧은 기상과 자상한 웃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계셨다. 퇴직 후 시작한 개인 사업도 나날이 형편이 더 좋아지고, 누나를 따라 매주 교회에 열심히 다니신다고 누나와 준옥이가 좋아하였다.
누나의 말에 의하면 자손들이 매부께 7순 생일기념여행을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으니, “하와이 풍호 처남을 보고싶다”고 하셨단다. 그때 누나는 풍호를 보고 싶다는 말에 감동을 받으셨단다. 그 때 매부가 친정 동생을 많이도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면서 다시 눈가에 큰 이슬을 달았다.
누나의 눈물을 보니 내 마음도 같이 젖어 4반세기 전, 내가 가르치던 동양공전 전기과 교직을 중단하고, 더 높고 푸른 희망을 안은 채 두려움 없이 미국 이주길에 나서던 젊은 시절로 뒤돌아 갔다.
그리고 나는 멀리 고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동기간 친척 하나없는 천둥벌거숭이로 몸 고생 마음 고생 다하며 살아온 이민생활을 생각했다. 지난 날들이 주마등이 되어 낡은 영화의 필름처럼 돌아갔다.
그동안 캘리포니아주정부 교통국(Caltrans) 전기엔지니어로 20여년을 근무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Cal State Los Angeles)의 영문학과를 졸업도 했다. 그리고 시인으로 한국과 세계속에서 문학활동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