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흙먼지 속에서 뒹굴었습니다

원경고등학교의 스승의 날 기념 체육대회 풍경

등록 2005.05.14 16:33수정 2005.05.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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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스승의 날 기념 체육대회에서 밝게 응원하는 원경고 학생들

스승의 날 기념 체육대회에서 밝게 응원하는 원경고 학생들 ⓒ 정일관

매년 이맘때만 되면 학교 화단의 작약이 세상을 축하해주는 듯, 부모님과 스승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카네이션처럼 환한 꽃 얼굴을 활짝 내밀어 모두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이와 같이 작약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축하해주는 가운데,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서는 지난 13일,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제8회 체육대회를 가졌습니다. 원경고등학교에서는 해마다 어색한 스승의 날 기념 행사보다는 체육대회를 통해 공동체가 하나가 되면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있습니다.

a 여학생들의 단체 줄넘기

여학생들의 단체 줄넘기 ⓒ 정일관

오전에 날이 흐려 체육대회 하기에 딱 좋아서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났고, 답답한 교실 수업에서 벗어나 오월의 싱그러움을 맛보며 뛰어 놀 수 있어 무척이나 좋아하였습니다. 1반과 2반을 각각 청군과 백군으로 나눈 청백전으로 400미터 남자 계주와 여자 계주부터 시작하였습니다.

a 농구 경기

농구 경기 ⓒ 정일관

계주가 끝나고는 12명이 한 조가 된 여학생들이 단체 줄넘기를 하면서 높이, 높이 하늘로 뛰어올랐습니다. 이어서 남학생 농구와 여학생 피구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오전의 끝을 남학생 축구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오후에는 먼저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모두 참가하는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단체로 하는 경기라 더욱 열기가 뜨거웠고, 이어서 벌어진 모자 뺏기 기마전도 그에 못지 않은 접전이 이어져 학교 운동장은 흙먼지로 뒤덮였습니다.

a 축구 경기

축구 경기 ⓒ 정일관

마지막으로 체육대회의 대미를 장식할 4Km 단축 마라톤이 열렸습니다. 전교생이 모두 참가하는 마라톤은 원경고등학교 주변에 넓게 펼쳐져 있는 적중면 황정리 들판을 돌아오는 코스로 오후 들어 해가 나와 더워진 날씨 속에 아이들은 열심히 달렸습니다.

a 으라차차 줄다리기

으라차차 줄다리기 ⓒ 정일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참가하고 식당의 조리사 아주머니까지 참가하였습니다. 서로 손잡고 격려하며 뛰기도 하고 선생님과 함께 달리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은 햇볕에 발갛게 익은 채로, 힘들면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아이들이 더욱 대견해 보였습니다.


a 덤벼라! 기마전

덤벼라! 기마전 ⓒ 정일관

올해 스승의 날 기념으로 열린 체육대회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올해도 역시 졸업생들이 많이 찾아와 선생님들은 쉴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부터 찾아와 기숙사 안에 있는 선생님 방에서 잠을 자고는 체육대회도 지켜보고, 졸업한 후의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얘기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a 마라톤 출발!

마라톤 출발! ⓒ 정일관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저는 체육대회도 즐겁지만, 올해는 졸업생 중에 누가 찾아올까 기다리는 것도 즐겁고, 졸업생들이 많이 찾아와서 시끌벅적하게 학창시절 잊지 못할 추억들의 얘기나,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즐겁습니다. 말하자면 스승의 날은 졸업생들을 만나는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a 마라톤 반환점을 돌아오는 주자들

마라톤 반환점을 돌아오는 주자들 ⓒ 정일관

올해는 9명의 졸업생들이 찾아왔고, 학교를 자퇴하였거나 전학 간 아이들도 3명이 찾아왔는데, 원경고등학교와 같은 대안학교는 그런 자퇴생이나 전학생도 거리낌없이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학교였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주선으로 그 중 몇 명의 졸업생들과 함께 체육대회로 더워진 몸을 식히며 얘기를 나누기 위해 호프집을 찾았습니다.

a 선생님과 함께 마라톤을

선생님과 함께 마라톤을 ⓒ 정일관

졸업생들은 대체로 대학 생활을 생각 이상으로 잘 살아주었고, 지도 교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공부가 힘들어도 며칠 동안 밤을 새면서 공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였답니다. 공부의 어려움이나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 때,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날이 되면 학창 시절의 추억들이 자꾸 생각나, 졸업하고 나서 더욱 학교가 그리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 때는 학교에서 받았던 선생님들의 사랑을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졸업생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학교를 그리워하는 것을 일반 학교 출신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선생님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는다든지, 학교에 너무 가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모두 놀란다고 하였습니다.

졸업생들의 그런 말을 듣고 저는 참으로 기뻤습니다. 아이들을 품고 기다리고 마침내 졸업을 시켰더니, 아니 졸업을 해주더니, 다들 이렇게 성숙하여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은혜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구나! 하는 감회가 들었습니다. 별로 준 것도 없는데, 아이들은 많이 받았다고 하니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만 졸업생들이 학교에 보내는 신뢰감은 우리 선생님들을 행복하게 하였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a 스승의 날을 맞아 학교를 찾아온 졸업생들

스승의 날을 맞아 학교를 찾아온 졸업생들 ⓒ 정일관

저는 졸업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졸업생들이 졸업한 학교를 그리워하여 때가 되면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우리 학교의 힘이다. 나는 졸업생들이 반갑게 찾아오는 학교, 졸업생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비록 아이들에게 지식은 풍부하게 전해주지 못했지만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 성장하여 졸업 후 당당하게 제 길을 걸어가면서도 졸업한 학교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아이들과 졸업하면 학교를 바로 잊어버리거나 다시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원경고등학교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대안학교가 다 사랑과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정성들이 바로 이 땅의 방황하는 우리 아이들이 다시 넓고 떳떳한 길을 찾아가게 하는 안내판이 아닐까요?

스승의 날, 찾아온 졸업생들을 보내며 '좋은 학교', '아름다운 학교'에 대한 화두를 다시 들어봅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
졸업생이 쓰고 간 감사의 편지

사랑하는 스승님들께!

스승님들,
어느덧 졸업한 지 2년이란 세월이 흘러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다닐 때보다 시설도 좋아지고 나아지는 학교의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기뻐요.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스승님들의 따뜻함입니다.

집 떠나 있는 자식처럼 늘 걱정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한 마디가 대학 생활과 사회 생활에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의지하며 큰 힘이 되어주셨는데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계신지….

그럴 때마다 정말 '원경'이란 곳의 가족이었던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재학생들과 스승님들이 함께 웃고 있는 걸 보니 옛 생각이 나는 것이,
다시 한 전 고등학교 생활에 빠져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항상 스승님들의 사랑 잊지 않고 생활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하게, 소중하게, 은혜롭게 살아가는 지현이가 될게요. 스승님들도 항상 건강하십시오. 다음에 찾아올 땐 더욱더 훌륭한 지현이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스승님들 감사드리고, 정말 정말 사랑해요.

2005년 5월 14일
6회 졸업생 박지현 올림 /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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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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