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수업시간에 보지 말자!"

[르포] 병원학교 장기투병 어린이들의 희망찾기

등록 2005.05.15 23:09수정 2005.05.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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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 권준 장영은 이석영 최지애 기자

만성질환으로 장기입원한 아이들. 그들은 퇴원 후, 때늦은 학교로 돌아가기가 매우 힘들다. 이런 이들을 위해 '어린이 병원학교’라는 시설이 있지만 그 필요성에 비해 환경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5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과 서울대 부속병원 어린이 병원학교를 찾아 수업 참관과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현 실태와 문제점을 알아보았다. 기사에 실린 어린이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a 연대 세브란스병원 내 어린이학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연대 세브란스병원 내 어린이학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 권준

"어? 처음 보는 선생님들이다."
어린이 병원학교를 취재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리를 본 동찬(8)이가 소리쳤다. 다른 아이들도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하던 일에 열중한다.

이날 수업은 물감으로 색을 낸 밀가루 풀을 손으로 도화지에 발라 그 위에 손가락이나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밀가루 풀을 손으로 만지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혜민이, 아파서 힘이 없는지 엄마가 그리는 것을 지켜보는 유정이, 선생님과 장난치는 동현이…. 1시간 수업이 끝나자 어서 퇴원하라는 뜻으로 선생님들은 "내일은 보지 말자" 하고 인사를 한다.

어린이 병원학교?

어린이 병원학교는 잦은 입원이나 장기 입원으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병원 내에 만든 학교다. 장기입원 어린이 환자들에게 학업 공백 기간은 치명적이다. 오랜 입원으로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장을 못 받고, 검정고시도 쉽게 치를 수 없어 완치가 되어 사회에 나오더라도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런 불확실한 미래는 아이들 인지구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신체적, 정서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병원 내에 학교가 생겼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돕고 있다. 보다 자세한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어린이 병원학교 두 곳을 찾아가 보았다.

일반 학교와는 다른 특수한 공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본관 53병동에 있는 어린이 학교의 경우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색종이 접기, 구연동화, 영어, 일어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매 수업마다 3~7명 정도의 어린이 환자들이 휠체어를 끌고, 또는 링거를 꽂은 채 찾아온다.

병실 하나 크기의 교실 한 면에는 5~6대의 컴퓨터가 구비되어 아이들이 오락을 하거나 학습용 게임을 하고, 다른 한 면에는 책들이 꽂혀 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꾸며진 벽면과 아기자기한 시설들은 여느 놀이방과 똑같아 보이지만 연대 어린이 학교 자원봉사자 김승현(22)씨는 모든 교구와 시설은 기증된 것이며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어린이 학교의 운영은 병원에서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후원금으로만 유지된다. 꾸준히 하는 자원봉사자들도 드물어 아이들은 매시간 새로운 선생님에게 적응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김씨는 몸이 아프고, 회복을 우선으로 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기 때문에 보통 학교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어린이 병원학교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a 서울대 부속병원 늘푸른 교실에서 수업 중인 자원봉사자와 어린이 모습

서울대 부속병원 늘푸른 교실에서 수업 중인 자원봉사자와 어린이 모습 ⓒ 권준

서울대학교 부속병원 소아병동 5층에 있는 '늘 푸른 교실'도 미술, 언어, 과학, 수학 등의 수업을 한다. '늘 푸른 교실'은 평생 교육 시설로 인가받아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일반 학교와 달리 학습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아픔에 지치고 병실에서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린이들에게 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자신의 병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12평 정도의 교실에는 컴퓨터와 책, 피아노, 지능 발달 도구들, 인형, 그리고 아이들이 활동적으로 놀 수 있도록 시소와 장난감 자동차들이 구비되어 있다. 4~5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교실을 찾아와 바닥에 앉아 그림을 맞추거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매 주말 '늘 푸른 교실' 미술 수업을 맡고 있는 자원봉사 동아리 'K.I.D.S'의 신아람(23)씨는 "보다 많은 병원에서 어린이 학교의 필요성을 알고, 손해를 보더라도 어린이 교육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식 부족이 가장 큰 문제

세브란스 병원의 경우 뜻있는 소아과 선생님 몇 분의 모임이 시작이었다. 공간이 없어서 기존 인턴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빌렸고 운영비는 주변 분들의 후원금이 전부다. 수업 재료비도 자원봉사자들이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병원 측은 그 필요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놀이방 정도의 시설이라도 갖추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많지 않다.

외국의 경우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특수 교육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학교 복귀를 목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병원에서 운영하고 있고 지역 사회와 연계망을 통하여 그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는 상태이다.

정책과 함께 지속적 관심 필요

현재 병원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곳은 부산대병원, 인제대부산백병원, 동아대병원, 경상대병원, 국립부곡병원 등 전국 5개 병원이다. 서울대병원과 연세세브란스병원은 병원 자체적으로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이중 서울대병원만 평생교육시설로 인가받아 학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설과 서비스 모두 수요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반학교와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다. 연세대 어린이 병원학교 한은숙 선생님은 "교육부에서 얼굴 비추기식 출석은 인정해 주면서 병원학교 활동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전문교사의 참여와 정부와 병원의 재정 지원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 3월 24일자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에 따라 병원학급을 전국 36개 종합병원으로 확대하여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책과 더불어 정부와 병원, 자원봉사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고려대 언론학 취재보도실습 전공 수업에서 실시된 프로젝트로 최지애 기자 등 4명이 공동으로 아이템을 선정하여 병원학교를 직접 방문, 취재하고 학생들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거나 정부에 문의하여 작성한 기사입니다.

공동취재: 권준(고려대 신방과 3년) 장영은(고려대 언론학부 3년) 이석영(고려대 사회체육과 3년) 최지애(고려대 언론학부 2년)

이 글은 <중앙일보> 대학생기자 '아리아리'에도 올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고려대 언론학 취재보도실습 전공 수업에서 실시된 프로젝트로 최지애 기자 등 4명이 공동으로 아이템을 선정하여 병원학교를 직접 방문, 취재하고 학생들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거나 정부에 문의하여 작성한 기사입니다.

공동취재: 권준(고려대 신방과 3년) 장영은(고려대 언론학부 3년) 이석영(고려대 사회체육과 3년) 최지애(고려대 언론학부 2년)

이 글은 <중앙일보> 대학생기자 '아리아리'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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