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 터져도 보증금 없으면 수술 못해요

중국 땅에서 급성 맹장염 수술하기

등록 2005.05.16 12:04수정 2005.05.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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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押金) 7000원(우리 돈 약 91만원) 내셔야 수술할 수 있습니다."
"……."

급성맹장염으로 맹장이 터져 번지고 있는 상황이라 수술을 해야 하는데도 중국 의사는 보증금 7000원부터 내라고 환자에게 말한다. 보증금 안내면 수술이 어렵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한다.

"보증금 없으면 수술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와 급히 콜택시를 불러 타고 상하이홍차오병원(上海虹橋醫院)을 찾았다가 오전에 신장 결석에 의한 염증으로 진단 받고 입원을 하고서 오전 내내 결석 치료 준비를 위한 염증 치료를 받았다.

a 맹장염 수술을 받았던 상해홍교의원

맹장염 수술을 받았던 상해홍교의원 ⓒ 유창하

그러나 열이 계속 38도를 유지하자 결석 판정의 이상 여부를 감지하고 해당 의사들이 의논을 하더니 다시 초음파를 찍고 최종적으로 맹장염 판정을 받은 시각이 저녁 8시경이었다.

a 초기에 진료한 위장과 '후'의사. 입원 환자 회진을 하고 있다

초기에 진료한 위장과 '후'의사. 입원 환자 회진을 하고 있다 ⓒ 유창하

"처음에 오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환자의 신장과 방광에서 3미리 가량의 결석이 발견되어 판정을 잘 못할 수밖에 없었다"며 "맹장은 뒤쪽에 붙어 있어 확장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담당 외과 의사가 최종 진단 결과를 설명하며 보증금 7000원도 준비하란다. 예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아니 저녁, 은행 문 닫은 시각에 현금 7000원을 병원 수납 창구에 입금하라니?"
"우리가 집에다가 돈을 쌓아 두고 있단 말인가?"
"한국인들은 돈을 쌓아 두고 사는지 아는 모양이지?"
"중국인들은 돈을 집안에다 모셔 두고 병원 갈 때를 미리 대비하고 사는가?"


병원의 처사에 병실 안의 중국인 환자들과 함께 서툰 중국말로 투덜거리면서 아내와 난 보증금 마련할 방안을 찾아보았다.

지금 시간이 저녁 8시이므로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현금 카드기로는 이미 다른 용도로 3회 인출을 했으므로 더 이상 출금이 되지 않는 터였다. 더구나 한번에 1500원 이상 인출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중국 의사들 보기에 7000원도 없는 '가난한 한국인'으로 보일까봐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얄팍한 한국 자존심' 때문인지 군소리 한번 제대로 못했다. 그런 소리를 듣고도 생뚱맞은 표정만 짓고 말았다.

결국은 야밤에 현금카드 인출이 가능한 지인 두 사람에게 부탁해 수술 보증금을 겨우 맞출 수가 있었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병원 근처 은행으로 오게 해 돈을 빌렸다.

그렇게 수납 창구에 입금하고 다음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워서 받는 수술'을 받아 보았다(15년 전에 받았던 비염 수술은 앉아서 받았기에). 그것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 땅에서 받을 줄이야….

a 입원 병실에 아침 식사가 배급되고 있다

입원 병실에 아침 식사가 배급되고 있다 ⓒ 유창하

또 모자란다고 맞던 포도당 주사도 중단해

그런데 '보증금 사건'이 또 한 번 발생했다. 수술을 하고 4일째 되던 날 매일 정기적으로 받던 소염제 치료와 포도당 주입 치료가 이상하게 중단됐다. 옆 침대의 환자는 치료를 하는데 나에게는 포도당 주입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불현듯 아침 식사 시간에 들린 간호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보증금이 모자라니 보충을 해야 됩니다."

'입원 중일지라도 걸린 보증금이 떨어지면 맞던 주사도 끊어 버리는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중국 병원 당국의 철저한 계산에 다시 한번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한국에 있었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다른 일로 멀리 나가 있던 아내에게 연락을 하고 부랴부랴 보증금 1000원을 찾아오게 해 수납 창구에 입금하고 영수증을 간호사 데스크에 내밀고 나서야 비로소 소염 치료도 계속 받을 수 있었고 포도당 주사도 받을 수 있었다.

입원 중에도 간호사가 매일 와서 전날 치료비 내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영수증을 입원 환자에게 전달해 준다. 그럼 환자들은 매일매일 꼼꼼히 살펴 보고 차곡차곡 정리하여 보관을 한다.

덕분에 치료비에 대한 흥미를 더 가지게 됐다. 물론 외국인들에게 보험 혜택은 당연히 안 된다. 한국에서 여행자 보험이라도 들어 놓았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미국 다국적보험회사인 AIG 같은 회사는 이곳에서도 정상 영업을 하므로 외국인들도 보험 가입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곳에 입원하는 중국 환자들 대부분 역시 보험 혜택 없이 자비로 치료하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대기업이나 공무원 이외에는 의료보험 가입이 잘 되어 있지 않고, 개별적으로 의료보험에 들기도 하나 많은 사람들이 무보험이다.

특히 상하이에 호구를 취득하지 않은(우리처럼 주민등록이 신고만으로 등록이 되는 게 아니라 '호구 등록'은 시가 인정하는 직업군에 속하든지 아니면 상하이 소재 주택 소유 증명 발생 이후 몇 년의 경과 조치 이후라야 정식 등록이 된다) 외지인은 고향에서만 의료보험이 적용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맹장 수술 한 번에 한 달 생활비가 쑤욱~

친절히 제공되는 영수증을 근거로 중국인들처럼 꼼꼼히 치료비 통계를 내보았다.

입원 전 검사비: 접수비 15원, 피검사, 소변검사, 대변검사, 초음파 1차 검사비(담낭 간 십이지장 신장 방광), 초음파 2차 검사비(위) 포함하여 500원

입원 후 8일간 검사 및 치료비: 병실비(도시락비 포함) 784원, 약비(소염제 치료 및 포도당 ) 2755원, 검사비(3차 초음파 검사) 110원, 치료비 140원, 화학검사비(피검사 및 소변검사) 130원, 재료비 25원, 간호사비 122원, 주사비 143원, 수술비 2515원, 마취비 1375원, 진료비 80원.

이렇게 해서 총합계 금액이 8695원(우리 돈 약 113만원) 나왔다.

a 입원실의 간호부 데스크 모습이다

입원실의 간호부 데스크 모습이다 ⓒ 유창하

나로 인해 우리 집 한 달 생활비가 쑥 빠져나갔다. 더구나 5살 우리 집 '귀염둥이'의 폐렴 증상을 치료하느라 소아과병원을 보름 동안 들락거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내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이번 중국 병원의 입원 과정에서 중국인들의 철저한 산술(算術) 의식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상하이에 살며 지켜본 중국인들의 산술 습관은 이방인이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였다. 길가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숫자라고는 모를 듯한 남루한 리어카 행상 할아버지도 1개를 팔면서도 몇 근이 나가는지 저울에 꼭 달아 보고 계산을 한다(가령 무게 0.6근, 단가 1근 2원이면 0.6근 곱하기 2원을 하여 1.2원에 판다).

지금과 같은 중국 고도 성장 비결에는 개방의 물꼬를 튼 정치 지도자들의 판단뿐만이 아니라 그 근원에는 '바닥 민중'에까지 깔려 있는 수백년 이어온 뿌리 깊은 장사 기질이 한 주리를 틀고 있었다.

야밤에 보증금 없어 수술 안 된다는 소리를 들을 때나 보증금 모자란다고 포도당 주사 중단되는 어이없는 일도 당하면서 중국 병원의 처사에 곤혹스럽고 한편 의아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오랜 습관으로 자리 잡은 산술 의식을 생각하면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 공개, 한국도 빨리 실행해야
중국 환자들, 진료 소견서·처방약 성분까지 알아

중국의 병원은 우리와 또 다른 의료체계의 좋은 점을 지니고 있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 공개', 바로 이것이다.

이번에 맹장염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처음 '칼라초음파검사'를 하니 신장과 방광에서 각각 2~3미리의 결석(結石)이 3~4개 발견됐다. 검사 직후 컴퓨터 프린트로 출력되어 나온 초음파 담당 의사의 소견서에는 '담낭에 염증이 있고, 지방간이며 결석이 신장과 방광에 있다'고 사진과 함께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알기 쉽도록 한자로 적혀 있었다.

중국 의료체계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진료 소견서를 환자들이 알기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처럼 날려 쓰는 의사의 의학 전문용어가 아니라(의사들의 영어 필체에 주눅 들어 제대로 물어 보지 못했던 기억들이 환자 누구나 많으리라 짐작된다) 또박또박 정체로 출력되어 나온 한자이다. 한국 병원으로 가상한다면 '고딕체 한글로 프린트 출력된 진료소견서'인 셈이다.

또한 환자가 외래진료(問診診療)를 할 때 피검사, 초음파검사 등 각종 검사기록과 의사의 소견 및 처방 등이 자세히 적혀 있는 '외래진료카드'를 환자가 보관하면서 어느 병원에 가더라도 제출하고 참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중국 의료제도의 선진화된 부분으로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공개로 환자들이 자신의 병력을 인지하고 치료를 준비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으며,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제3자가 검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국 의사들의 '비밀스런 의술'은 하루 빨리 보호막을 걷어야 한다. 한국의 의술시스템은 전반적으로 공개되어 평가되어야 마땅하고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개선책도 시급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류창하 기자는 다음카페 '중국상하이한인모임' http:cafe.daum.net 운영자이다. 상하이 거주 한인들의 정착 안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류창하 기자는 다음카페 '중국상하이한인모임' http:cafe.daum.net 운영자이다. 상하이 거주 한인들의 정착 안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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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기간 오마이뉴스에서 쉬었네요. 힘겨운 혼돈 세상,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일상을 새로운 기사로 독자들께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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