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영 "고대에는 삼성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개편지 통해 "학생 징계해서는 안된다" 주장

등록 2005.05.16 11:37수정 2005.05.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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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 (자료사진)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건희 소동'과 관련해 고려대 학생들에 대한 징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개편지를 통해 학생들 구하기에 나섰다.

최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www.soonyoung.
net) 등에 띄운 '고대인 여러분과 어윤대 총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학생들의 외침을 징계라는 형식으로 가두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고려대에는 삼성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4.18 기념관 또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고대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삼성관이 아닌 4.18 정신일 것"이라며 대학인의 비판적 지성을 강조했다.

현장 노동자 출신 최 의원은 "1970∼80년대 노동자들의 싸움에는 대학생 친구들이 있었다"며 "대학생들에게 진실은 강의실과 전공서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에, 억압받는 고통의 현실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우리를 통해서 알아갔다"고 당시 노동운동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기념하고자 하는 고려대 100년의 역사는 반일 독립 정신이요, 4.18의 민주화의 역사이고 노동자와 친구되는 그 모습"이라며 "지금 대학에 필요한 것은 부당한 권력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 대학 고유의 비판정신이며 자유로운 토론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의 공개편지 전문.

고대인 여러분과 어윤대 총장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십니까.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최순영입니다. 먼저 고려대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려대학교가 한국사회에서 일깨워주었던 비판정신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때입니다. 올해 고려대 100주년을 맞아 기념할 것이 무엇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대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열흘정도가 지났지만, 여전히 '삼성 이건희회장 명예박사학위 수여식'과 관련하여 진통이 계속되고 있군요. 아마도 내일 혹은 모레 정도이면 학생들에 대한 징계여부도 결정될 듯 합니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오늘날 우리 대학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보다 신중하고 깊게 고민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 정문 오른쪽에 그 위엄을 높이하여 서있는 삼성관이 들어섰습니다. 400여억원이라는 거금으로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의 자본이 가지는 거대한 힘이 이미 대학의 심장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건물입니다.

그러나 고대에는 삼성관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움을 시작했던 4.18정신을 기념하고자 하는 4.18 기념관은 오래된 역사의 풍파 속에서 여러 건물들 사이에 그 자리를 그렇게 또한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비록 삼성관에 비하면 건물도 작고 위치도 외진 곳에 있지만 아마도 고대인들이 고대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삼성관이 아닌 4.18 정신일 것입니다.

고대인들이 독재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의 비판정신일 것입니다. 4. 18정신의 뿌리는 일제 식민지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저항해왔던 비판 지성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비록 고려대의 역사에 일부 친일 인사의 오염된 모습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고대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그보다 더욱 굳건하면서도 도도하게 흘러왔던 비판 지성의 정신이 고대 100년의 원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1970~80년대 노동자들의 싸움에는 대학생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다면…"이라는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존재를 노동 현장으로 이전하고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었고, 노동자 자신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했습니다. 그러면서 차차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진실은 강의실과 전공서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에, 억압받는 고통의 현실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우리를 통해서 알아갔습니다. 고려대 학생들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언제나 함께 했습니다.

어윤대 총장님, 그리고 고려대인 여러분. 아마도 여러분들이 기념하고자 하는 고려대 100년의 역사는 반일 독립 정신이요, 4.18의 민주화의 역사이고, 노동자와 친구되는 그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100년의 역사는 지난 100년의 역사의 원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보면서 새삼 자본의 힘의 거대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노동현장에서 대항하고자 했던 자본은 노골적인 경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그 폭력에 제 동료들은 쓰러져 갔습니다. 그러기에 보다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는 비판정신을 그 원류로 하는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가 권력이라는 외피를 쓰고 노동자들을 탄압했던 그 권력은 이제, 그 외피를 벗어던지고 좀 더 세련되게,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폭력적으로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보다 세밀하고 근본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대학의 철학이 노동자에 대한 탄압 정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명예박사학위 수여가 돈 안들이고 인사 치례하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학의 학위는 학문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4.18 정신은 부당한 것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정신입니다.

하기에 학위 수여를 반대하고자 했던 학생들이 부여잡고자 했던 대학정신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 번 고대인들뿐 아니라 우리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삼성권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고려대학이 그리고 한국의 대학이 가져왔던 역사적 정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어윤대 총장님, 그리고 고려대인 여러분. 학생들의 외침을 징계라는 형식으로 가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대학에 필요한 것은 삼성권력에 자기반성의 읍소로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 대학 고유의 비판정신이며 자유로운 토론정신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고려대 10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혹은 더 멀리까지 4.18의 시대정신을 품으면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5년 5월 16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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