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86회

등록 2005.05.19 07:51수정 2005.05.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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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삐쩍 마른 사내는 한줄기 의혹스런 표정을 내비췄다. 자신이 아는 한두 사람은 그리 실수할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급조된 일이었다 해도 그들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표정을 본 담천의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첫째, 그녀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오. 아마 저 여인은 아기를 낳아본 적이 없는 여자일거요. 그녀가 아기를 안은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어미가 사랑스런 자식을 안은 모습이 아니었소. 대개 아이를 낳은 여자는 자신의 왼 가슴에 아기의 얼굴을 바싹 갖다대고 안는 법이오. 그녀는 편안하게 안기는 했지만 사랑이 없었소.”


그의 말에 삐쩍 마른 사내는 더욱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런 미세한 차이를 파악한 그가 정말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서투른 엄마라면 그럴 실수를 할 수도 있소. 중요한 것은 두 번째요. 아기가 잠만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오.”

“아기가 잠을 자는 일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기가 아무리 엄마의 품에 안겨 있다 해도 조금씩은 칭얼거리기 마련이오. 이곳은 안방이 아니라 시장이오. 더구나 저 뚱뚱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요란했소. 하지만 아기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소. 당연히 아기의 수혈(垂穴)을 짚고 아혈(啞穴)마저 닫아놨을 것이라 생각했소.”

“세 번째는?”


“이 두 사람이 나를 공격했을 때 아마 저들이 보통 부부였다면 비명을 질렀거나 이곳을 빠져 나가려 했을 거요.”

“대단하군…. 대단해!“


말은 문에서 들렸다. 기어왔는지 걸어왔는지 모르지만 정말 뚱뚱한 인물이 열려진 문틀에 끼여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 상태에서 밷은 말이었다. 그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더운지 연신 비단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마치 늙은 호박에 점을 찍은 듯한 그의 두 눈에서 쏘아 나온 살기를 보는 것은 담천의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괴이하여 이런 심각한 상황임에도 웃음이 터져 나오게 했다. 하지만 그가 문틈에 끼여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한다는 것은 문을 닫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하는 한 아무도 문을 통하여 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뚱뚱하다는 것이 저런 묘용이 있을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담천의는 여전히 실소를 머금었다. 이것이 일종의 함정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 왔다. 함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은 이미 자신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가 어쩔 수 없이 옷가게를 찾을 것이란 것도 미리 알았음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을 상대가 미리 읽었다는 점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 것이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왜 갑자기 자신을 공격한 것인가? 더구나 그들은 하나같이 독랄한 살초를 전개했다.

(누가… 어디서 나를 노리는 것일까?)

풍철영이 보낸 자들일까? 아닐 것이다. 풍철영은 자신을 찾으려는 해도 죽이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련교도들일까? 아니면 천지회…?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모르는 제 삼의 인물이나 세력…? 그는 일단 궁금증을 접기로 했다. 이들을 제압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시기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게까지 아량을 베풀 그가 아니다. 그는 빈정거리듯 말을 밷았다.

“당신은 스스로 걷기도 힘들면서 나를 죽일 수 있겠소?”

그의 비웃음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문틀이 와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려앉는 것과 동시에 뚱뚱한 인물의 몸은 둥글게 말리며 맹렬하게 굴러왔다. 인간이라고 꼭 걸으라는 법은 없다. 기어 다닐 수도 있고 뛰어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인물처럼 굴러다니는 인간은 오직 이 자 하나뿐일 것이다. 더구나 그 구르는 속도는 뛰는 것 보다 훨씬 빨랐다. 단지 한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둥그런 그의 몸은 담천의를 깔려 죽일 듯 덮쳐왔다. 확실히 저 인간의 몸에 깔리면 호흡을 하지 못해 죽을 것이다.

굴러오는 인간을 막으려면 대개 발길질을 해대기 마련이다. 담천의 역시 그의 몸을 향해 가볍게 발길질을 해댔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를 모르는 그의 실수였다. 바위라도 부셔버릴 위력을 가진 그의 발길질이었지만 굴러오는 인물의 몸에 닿는 순간 마치 솜뭉치를 가격하는 듯한 느낌에 어리둥절 하는 동안 갑자기 가죽 북이 터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팡---!

그와 동시에 담천의 몸이 허공에 붕 띄어지며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오른발이 그의 몸으로 박히는 순간은 너무나 부드러웠지만 그 뒤에 튕겨지는 충격은 그의 오른발에 있는 모든 뼈를 산산히 바스라 뜨릴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의 반응이 조금만 느렸다면 그의 오른발은 지금쯤 흐느적거리고 있을 터였다. 오른발에 통증이 느껴졌다. 또한 그것이 시작이었다.

번----쩍!

삐쩍 마른 인물의 손에서 섬광이 터지며 한 줄기 싸늘한 빛줄기가 허공을 갈랐다. 몸을 허공에 띠운 담천의로서는 피할 사이가 없었다. 그는 황급히 검집으로 날아오는 도기를 막았다. 양손에 묵중한 압력이 느껴졌다. 상대의 도는 왜도(倭刀)였다. 중원의 검보다 한자 정도 길고 폭이 좁은 그것은 두 손으로 전신의 경력을 실어 내치는 도로 그 묵중함은 중원의 검이나 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미 해안을 수시로 드나드는 왜구들의 침탈로 나라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만큼 왜도는 간혹 중원인 들에게도 사용되는 병기였다. 흔히 일도류(一刀流)니, 무쌍류(無雙流)라는 말이 나돌고 누가 왜도로 석양을 베었다는 말도 들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직접 왜도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자와 마주치다보니 이것은 중원의 검로와 확실히 틀렸다. 손목의 움직임이나 발놀림을 억제해 중원의 검보다 현란함은 전혀 비교할 바 아니었지만 일도 일도에 온 진기를 실어 펼치는 단순한 검로는 오히려 위맹하고 매서웠다.

“헛…!”

담천의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지며 황급히 신형을 뒤집는 모습이 보였다. 한순간의 안이한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허공에 그의 옷소매가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리자 팔뚝에 그어진 상처에는 피가 조금씩 배어 나왔다. 뿐이랴! 그가 신형을 바닥으로 내려서기 전에 공격을 멈추고 있었던 주인과 중년인이 달려들었다. 기괴한 조공과 기쾌한 발차기는 오랫동안 연수합격을 익힌 듯 너무나 자연스럽고 완벽해 틈을 찾을 수 없었다.

(대단한 자들이다!)

그리고 무모한 자들이었다. 이들의 공격은 치명적이고 독랄했다. 수비보다는 공격에 치우쳐 일단 상대를 죽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몸을 비틀며 중년인의 조공을 피해냈다. 하지만 동시에 쏘아오는 삐쩍 마른 사내의 섬칫한 도기에 몸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인이 신형을 거꾸로 뒤집으면서 기쾌하게 연환각을 펼쳤다. 그것은 열려진 담천의의 하체를 노린 공격이었다.

빠--각--!

담천의는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상대의 공격에 마주쳐갔다. 주인은 각법(脚法)의 달인(達人)이었다. 다리와 다리가 비껴나가고 발과 발이 마주치자 담천의는 허벅지까지 뻐근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그 탄력을 이용해 신형을 뒤집으면서 자신의 어깨를 찍어 오는 중년인의 공격에 마주쳐갔다. 이것은 중년인이 바라던 바였다. 극독이 스며있는 자신의 손톱에 긁히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절정고수라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중독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움직임이 느려지게 마련이었다.

“허…억!”

하지만 유연하게 마주쳐 온 담천의의 수도는 그의 손을 타고 올라 그의 팔뚝을 강타했을 뿐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왼쪽 옆구리에서 피어오르는 맹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태극산수의 진수(眞髓)가 펼쳐진 것이다. 그는 위험을 느끼며 마구 손톱을 뾰쪽하게 세운채 마구잡이로 휘둘렀지만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담천의의 수도가 그의 목줄기를 강타하는 순간 그는 목을 꺾어야 했다.

우지찍---!

목뼈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은 직각으로 꺾이며 나동그라졌다. 목이 저렇게 꺾인 후에 숨을 쉴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담천의는 그 기세를 몰아 연환각을 펼치는 주인을 향해 연속적으로 오권(五拳)을 뻗었다.

퍼--퍼--퍼-- 퍽!

처음 좌우 복부를 파고 든 두 주먹에 주인은 온 내장이 뒤집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숨이 막히고 몸이 굳어졌다. 연이어 명치와 턱에 틀어박히는 권에 피분수를 뿜었고 그의 미간에 꽂히는 주먹에 신형이 날라 가며 벽에 부닥쳤다. 벽이 무너져 내렸다. 즉사였다.

너무나 찰나에 벌어진 일이고 세 사람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던 삐쩍 마른 사내의 입에서 폭갈이 튀어 나왔다.

“이놈---!”

세 줄기 섬광이 담천의의 전신을 휘감아왔다. 늘어진 옷가지가 마구 베어나가며 허공에는 형형색색의 천조각이 날리고 있었다. 마치 봄날 꽃잎이 바람에 휩쓸려 허공에 휘말렸다가 떨어져 내리는 모양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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