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85회

등록 2005.05.18 07:48수정 2005.05.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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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장 대두자(大肚子)와 수조자(瘦条子)

누군가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음을 느낀 것은 개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본능적인 직감이 발동하기도 했지만 두세 차례 시험한 결과에 따른 결론이었다. 상대는 그 방면의 전문가였다.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의 유혹에도 말리지 않았다.


은신(隱身)과 잠입(潛入)에 대해 배운지 석 달이 지난 후에 그를 찾아 온 천교두(千敎頭)는 그에게 추적술을 가르쳤다. 그는 단 한달 보름 동안 같이 머물렀는데 담천의가 배우던 말던 자신이 가르쳐야 할 내용만을 말해준 사람이었다. 배우는 자가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두 사람 간에 약속도 없이 상대를 노리는 순간이 다가왔다.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상대를 추적하느라 반나절을 보낸 끝에 그의 삐쭉한 기형단검이 담천의의 목에 닿았고, 담천의의 검이 그의 복부를 노리는 것으로 결말이 났을 때, 그는 예상보다 보름 정도 빨랐다는 말과 함께 작별인사도 없이 떠났다. 그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담천의에게 살아남는 법을 많이 가르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추적하는 상대는 추적술에 있어 천교두를 능가하는 자인 듯 싶었다. 분명 느낌은 오는데 발견할 수 없었다. 추적자가 있는 가운데 강중장군을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변장은 할 줄 몰랐지만 모습을 바꾸기는 해야 했다. 그가 개봉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띠는 난전(亂廛)의 옷가게를 들른 것은 당연했다. 가난한 민초들의 시장인 이 난전은 복잡하고 왁자지껄했다. 그가 추적자를 따돌리려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어둠이 깔릴 쯤 되서야 그곳을 들어선 것도 역시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그곳에는 한 중년인이 주인과 물건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 중년인은 장의(葬儀)인 것 같았다. 그가 주문하는 것은 주로 상복으로 그 양이 꽤 많아 한 푼이라도 깎아 보려는 듯싶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골랐다. 얼굴을 바꿀 수 없으니 차라리 가리는 편이 나았다. 사립(蓑笠: 삿갓)은 꼭 필요했다. 옷도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않는 황색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민초들이 흔히 입는 황색무명옷을 골랐다. 그 옆으로 승복(僧服)이 눈에 띠자 그는 말없이 집어 들었다. 머리는 깎지 않았으나 머리를 기른 떠돌이중은 많았다.


그 때 한 쌍의 행복해 보이는 젊은 부부가 옷가게로 들어왔는데 여자의 품에는 아직 돌이 지나지 않아 보이는 애기가 안겨 있었다. 그들 부부는 보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다만 사내보다 여자의 나이가 더 많아 보이고, 아름답기는 하나 매우 차가워 보이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담천의가 자신이 고른 물건을 들고 중년인과 흥정을 하고 있는 주인에게로 다가갈 때 갑작스럽게 옷가게 입구에서 집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쿵--!

대들보라도 무너져 내린 듯 옷가게 전체에 진동이 일어났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한 떨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진동이 끝나기 전에 고막을 찢을 듯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해골바가지야. 형님을 쓰레기 버리듯 내동댕이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아이구구… 이건 분명 이 형님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 분명하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말 어이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뚱뚱했다. 그저 뚱뚱한 것이 아니라 너무 뚱뚱했다. 몸은 말할 것도 없이 허벅지 하나가 보통사람 몸통만 했다. 더구나 너무나 살이 찐 탓으로 그의 눈과 입은 살 속에 파묻혀 있고, 주먹코는 우스꽝스럽게 둥그런 쟁반에 종지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머리와 가슴은 구분이 없어 목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노란색 화복은 너무 꽉 끼어 그가 잘못 움직이기라도 하면 찢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마 저 옷을 입고 벗기도 전에 살이 쪄 꽉 끼인 것 같았다.

더구나 그는 스스로 걸을 수 없었다. 저렇듯 온몸이 둥그런 사람은 이 중원에서 저 사람일 뿐일 것이었다. 뚱뚱한데다가 키는 보통사람보다 작은 관계로 그의 등에 배갑(背甲)을 얹어 놓았다면 분명 왕팔(王八: 鼈, 자라)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건 형님이 조심스럽지 못한 탓이오. 소제 손을 놓친 것은 형님이오."

대답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선 사람 역시 어이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말랐다. 그저 마른 것이 아니라 너무 말랐다. 마치 뼈다귀 위에 살가죽을 입혀 놓은 것 같았다. 뚱뚱한 인물이 말한 해골바가지란 말은 정확한 표현 같았다. 더구나 키는 보통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인물이 삐쩍 마른 몸을 가지고 있다보니 더 말라보였다.

아직 문 앞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뚱뚱한 인물과 안으로 들어선 삐쩍 마른 인물을 번갈아 보다가 담천의는 실소를 흘리며 주인에게 다가갔다. 세상은 확실히 공평하지 않았다. 저 두 사람을 합쳐서 적당하게 다시 갈라놓는다면 너무나 이상적인 두 사람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헌데 느닷없는 일이었다. 담천의가 주인에게 다가가 가격을 물으려는 순간 지금까지 주인과 가격을 흥정하고 있던 중년인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담천의의 가슴을 향해 우수를 쾌속하게 뻗어왔다. 그것은 너무나 급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아무리 고수라 해도 피하기 어려웠다. 뿐이랴! 담천의가 오른쪽으로 밀려나며 그 공격을 피하려는 순간 주인인 사내가 미리 담천의의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왼발을 뻗었다.

파-----팍----!

그들의 공격은 매우 날카롭고 위력적이어서 비껴 맞는다 하더라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담천의는 들고 있던 사립으로 빠르게 뒤집어 내치면서 우측으로 몸을 활처럼 휘었다. 그것은 중년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을 뿐 아니라 그의 오른쪽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주인의 발길질을 사립으로 뒤집어서 내동댕이친 것이다.

하지만 옷가게 주인은 그의 민첩한 대응에 허공에서 두 바퀴나 회전을 하며 구석으로 날아가는 듯 했지만 진열대의 반동을 얻어 재차 양발을 차며 공격해왔다. 연환각(連環脚)의 일종인 것 같았는데 너무나 현란하고 위력적이어서 막기보다는 일단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장의로 보였던 중년인 역시 기괴한 조공(爪功)을 익혔는지 검은 빛이 번뜩이는 손톱을 마구 휘둘러왔다. 손톱은 물론 손가락 끝 한마디가 시커멓게 물든 채 날카로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치명적이고 독랄한 무공을 익힌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그가 물러난 위치에는 공교롭게도 행복하게 보이는 부부가 있는 곳이었고, 그가 밀려오자 여자는 아기를 진열대로 매정하게 팽개치며 담천의의 등을 향해 맹렬한 일장을 퍼부었다. 동시에 남편으로 보이는 자 역시 옆에 놓여져 있던 옷감을 재는 자(尺)로 담천의의 허리를 쓸어왔다.

너무나 의외의 일이어서 담천의는 반드시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 같았다. 헌데 어느 순간이었을까? 기이하게도 두 사람은 공격도 하기 전에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야했다. 자(尺)를 가지고 담천의의 허리를 베어오던 사내의 움직임이 갑작스럽게 멈추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동시에 여자의 하이얀 손 역시 팔뚝에서부터 인간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각도로 급하게 내려뜨려졌다. 관절도 아닌 곳에서 팔이 꺾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다면 오직 하나 뼈가 부러져야 가능하다. 여인의 팔뼈는 부러졌고, 급격하게 부어오르는 순간 뒤늦게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그 비명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자신의 팔목이 부러졌다는 고통이 물론 먼저였고, 자신과 동행한 사내가 꼬꾸라진 채 두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면서 선혈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녀는 이것이 어떻게 된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 남녀의 공격은 완벽했다. 저 자는 몸을 돌리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은밀한 공격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 뜻밖의 사태에 중년인과 주인은 맹렬한 공격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이러한 사태는 정말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과였다. 지금 자신들이 상대하는 저자는 정말 무서운 자였다. 그는 몸이나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의 공격을 알기에는 자신들의 공격은 빠르고 치밀했다.

헌데 저 자는 기이하게도 마치 두 남녀가 자신을 공격해 올 줄 알았다는 듯 달려드는 두 남녀를 향해 먼저 공격한 것이다. 그것도 허리에 찬 검을 뽑지 않은 가운데 단지 왼손으로 공격해 오는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한 듯 보인 몇 가지 간단한 동작만으로 부부로 보이던 두 남녀를 순식간에 제압해 버린 것이다.

검집의 끝은 사내의 사혈(死穴)인 거궐혈(巨闕穴)과 천돌혈(天突穴)을 찍으면서 연이어 뻗어오는 여인의 팔뚝을 때려 부러뜨린 것이다. 두 남녀는 자신들이 공격하기도 전에 담천의가 먼저 공격해 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공격하는 모습이 아니라 단순히 중년인과 주인의 공격에 밀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상황이었고, 그 순간에 먼저 공격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상대가 공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가운데 당하는 공격이야말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두 남녀는 그러한 치명적인 공격에 당한 것이다. 하지만 보지 않는 가운데 그토록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처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은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나?"

물은 자는 중년인이나 주인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선 삐쩍 마른 사내였다. 그가 나직하게 말하자 갑자기 주위의 공기가 스산해지는 듯 했다. 그의 물음은 어떻게 자신들이 공격할 것이라 알았느냐는 것일 터였다. 담천의는 마른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돌려 삐쩍 마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세 가지 실수를 했소."

그 말에 삐쩍 마른 사내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세 가지씩이나…? 그렇다면 그들은 죽어 마땅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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