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감 속에서 보낸 하루

[한나절동안 떠나는 여행7] 서종면 명달리 통방산

등록 2005.05.19 17:30수정 2005.05.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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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에서 시오리 떨어진, 사방 십리가 800미터가 넘는 계룡산으로 둘러싸인 깡촌이 본적지이자 스물두 살 때까지의 내 주소지라 말하면 사람들은 일단 나무나 들꽃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해버린다.

서양 사람들이 비슷비슷해 구별을 못하는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이 제각각이듯, 시골출신 또한 마찬가지다. 비교적 대처에 속했던 석계리와 부남리가 1970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전기가 들어온 데 반해, 큰외삼촌이 살던 개울건너 용동리는 4년 후에야 전기가 들어왔을 만큼 같은 동리라도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내가 살던 석계리는 하루에 몇 번 되진 않지만 대전에서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를 중심으로 길게 펼쳐진 동네였다. 우체국, 학교, 출장소, 장터, 술도가가 골고루 있는 신도안의 중심 동네였다. 내가 고등학교가 있는 대전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알고 있던 꽃의 이름은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무궁화, 채송화, 봉숭아 정도가 전부였다.

수학여행을 가면 집을 떠난 흥분으로 밤새도록 수다를 떨다 지쳐 정작 어디를 다녀왔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보곤 깨떡이라 불렸던 오영두(국어) 선생님께서 늘 말씀 하셨다. 뭐 하러 돈 들여, 시간 들여 아깝게 설악산까지 가냐고? 차라리 시내에 체육관 하나 얻어놓고 그 안에서 3박 4일 동안 맘껏 노는 쪽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수긍하고 조금은 반성하고 그랬었다.

돌이켜보니 그 땐 그랬었다. 인간의 기가 너무 강해 그 밖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절이었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었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도 꽃도 나무도 전혀 의식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관심조차 없는 시절이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조금씩 주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사람들과 자연이 함께 보이고 그렇게 세월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해 여러 곳을 헤집고 다녔지만, 정상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듯 그렇게 산을 향하고 정상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렸었다.

a 우리가 맛있게 먹은 머위, 우물가 돌단풍, 산괴불주머니, 천남생, 제비꽃, 봄맞이꽃, 귀신도 쫓는 엄나무가시, 벌깨덩굴, 병꽃나무... 별의별 꽃이 다 피었다

우리가 맛있게 먹은 머위, 우물가 돌단풍, 산괴불주머니, 천남생, 제비꽃, 봄맞이꽃, 귀신도 쫓는 엄나무가시, 벌깨덩굴, 병꽃나무... 별의별 꽃이 다 피었다 ⓒ 이승열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축령산 들꽃 기행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세상에! 여태까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별의별 꽃이 다 피어 있었다. 식물도감 속에서, 혹은 달력에서만 봤던 온갖 들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종류의 현호색, 괴불주머니, 앉은 부채, 개감수, 피나물, 얼레지….


그때부터였다. 산책을 나가면 아파트 화단의 꽃들을 눈여겨보고 모르면 묻고 식물도감을 찾기 시작한 것이. 의외로 도심에도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큰개불알풀, 종류가 다른 민들레, 씀바귀, 꽃다지, 봄맞이꽃, 살갈퀴 등 수많은 꽃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 곁에서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해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오월이 되면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에 간다. 양수리시장에서 20여분 눈 맛이 시원한 북한강가를 달리다 노문리, 명달리 팻말이 보이면 우회전해 다시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2002년 자연생태 마을로 지정된 명달리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마을 주변에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며 주민들은 유기농법 등 친환경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a 내가 살던 시골에 지천으로 있었다는 할미꽃. 내 기억 속의 처음 할미꽃은 운주사 앞 농로이다. 꽃, 홀씨 등 할미꽃 한살이

내가 살던 시골에 지천으로 있었다는 할미꽃. 내 기억 속의 처음 할미꽃은 운주사 앞 농로이다. 꽃, 홀씨 등 할미꽃 한살이 ⓒ 이승열

고려시대 사찰이, 조선시대 서원이 뒤덮었던 이 땅을 가든과 모텔과 최근 펜션까지 합세해 사이좋게 구석구석 파고들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차를 세우고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온갖 도감 속의 꽃들을 만날 수 있는 정다운 땅이다.

a 성산제 명달리 도공작업실. 창문, 흙, 나무, 돌 무엇이든 도공의 손을 거치면 작품이 된다. 뒤뜰에 오래된 우물도 있다

성산제 명달리 도공작업실. 창문, 흙, 나무, 돌 무엇이든 도공의 손을 거치면 작품이 된다. 뒤뜰에 오래된 우물도 있다 ⓒ 이승열


a 두릅, 돌미나리, 곰취, 머위 등 봄나물로 차린 봄날의 성찬. 마법의 손을 가진 도공

두릅, 돌미나리, 곰취, 머위 등 봄나물로 차린 봄날의 성찬. 마법의 손을 가진 도공 ⓒ 이승열

대한민국에서 도자기를 빚어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삶인가를 몸소 보여주는 벗까지 명달리에 있으니, 더 이상 좋은 봄나들이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오랜만에 방문하는 벗들을 위해 도공은 돌미나리, 곰취, 머위, 두릅을 데치고 보쌈을 삶아 작업대 위에 차려 놓았다. 감탄! 또 감탄! 쳐다만 봐도 벌써 배가 부르다.

a 유난히 잣나무가 많아 요행히 다람쥐, 청솔모를 피한 잣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 붓꽃은 붓꽃인데 솔인지, 각시인지?

유난히 잣나무가 많아 요행히 다람쥐, 청솔모를 피한 잣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 붓꽃은 붓꽃인데 솔인지, 각시인지? ⓒ 이승열


a 축 늘어진 꽃을 본 순간 5분안에 기억해내겠다고 큰소리쳤다. 결국 1분도 안돼 '윤판나물'하고 외치다

축 늘어진 꽃을 본 순간 5분안에 기억해내겠다고 큰소리쳤다. 결국 1분도 안돼 '윤판나물'하고 외치다 ⓒ 이승열


도공을 따라 나선 통방산 탐방. 사방이 통하고 하늘에 통하는 명달리 통방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사리를 잘도 발견해 연신 자루 속으로 손이 들랑거린다. 작년 고사리 마른 것이 있는 주위를 살피란다. 어딘가에 떨어진 포자가 싹을 틔우고, 도공 눈에는 지천인 고사리가 우리 눈에는 한 개도 띄지 않는다. 이래서 원주민과 함께 하는 여행은 즐겁고 알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누구에게나 고사리가 다래순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a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 우산나물. 활짝 피면 아무리 세찬 비바람도 막을 수 있을 듯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 우산나물. 활짝 피면 아무리 세찬 비바람도 막을 수 있을 듯 ⓒ 이승열

고사리, 다래순을 따는 동안 난 주위에 지천으로 피어난 꽃들에게 눈길을 준다.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꽃들이 제법 생겼다. 벌깨덩굴, 솔붓꽃, 으름꽃, 노루삼, 홀아비꽃대, 참꽃마리, 할미꽃은 벌써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었다. 그래도 들꽃에 관한 한 도공보다 내가 한 수 위다.

a 홀아비꽃대와 노루삼. 노루삼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풀솜대라고 가르쳐주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홀아비꽃대와 노루삼. 노루삼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풀솜대라고 가르쳐주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 이승열

낙엽을 헤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족두리꽃을 보여주고, 자줏빛 미치광이 풀에 실제 독성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은 내 몫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게 뭐지? 음, 종류는 구별 못 하지만 제비꽃 종류. 아, 비가 오려나 우산나물도 활짝 우산을 피고 있다.

a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꽃 바로 옆에서 발견한 더덕. 물욕에 눈이 멀어 사진찍는것도 잊었다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꽃 바로 옆에서 발견한 더덕. 물욕에 눈이 멀어 사진찍는것도 잊었다 ⓒ 이승열


a 통방산 정곡사 근처의 산작약. 난 아직 함박꽃하고 산작약을 구별 못하는 초보. 스님이 산작약이라했다

통방산 정곡사 근처의 산작약. 난 아직 함박꽃하고 산작약을 구별 못하는 초보. 스님이 산작약이라했다 ⓒ 이승열

어젯밤 무슨 꿈을 꿨던가? 도공의 판단으로는 굵기를 보아 십년이 넘었을 더덕이 덩굴째 굴러 들어왔다. 조심조심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캐어 바로 껍질을 벗겨 시식, 공복이면 쓰라릴 만큼 진액이 강하다 한다. 더덕줄기에서도 강한 향이 난다. 발견한 세 개 중 두 개만 시식, 한 개는 다음을 위해 남겨둔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낙엽을 덮어 살짝 가리는 것도 잊지 않고.

어린 시절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실제로 들꽃을 볼 수 없었나, 아니면 들꽃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워낙 척박한 곳이라 곡식이 잘 되는 곳이 아니었다는 대답이셨다.

계룡산 가는 길목 백암동에 살던 옛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햇수를 되짚어보니 그 아이가 프랑스 가는 해 96년에 만나고 10년만이다. 너 살던 동네에는 혹 들꽃 많았니? 많았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들꽃과 함께 지냈단다. 내가 관심이 없어 잊었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실제로 함께 산에 올라가 많은 들꽃을 본 적이 있단다.

덧붙이는 글 | 하루면 족한 집 근처 나들이 장소입니다.

덧붙이는 글 하루면 족한 집 근처 나들이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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