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선조께서 심은 가지가 아홉 개 달린 '구송정'입니다. 천연기념물로 장인어른이 몸소 돌보셨습니다.박희우
그 날 새벽이었다. 장인어른은 병원에 계셨다. 코에 호스를 꼽고 있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다. 양 볼이 홀쭉하게 패였다. 눈은 뜨고 있었는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초점이 흐려 있었다. 솥뚜껑만 하던 손은 이미 어린애 손이 되었다. 80㎏을 웃돌던 몸무게도 반으로 줄었다. 암이 장인어른을 저렇게 만들었다.
"젊은 양반, 객사는 막아야 하지 않겠나?"
같은 병실에 있는 노인이 내게 넌지시 말한다. 임종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의사도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자 노인이 나를 다그쳤다. 객사 또한 불효라는 것이다.
나는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었던지 눈자위가 바짝 말랐다. 장모님도 셋째처남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장인어른을 들쳐 업었다. 어린애처럼 몸이 가볍다.
나는 병원을 나서며 자꾸만 울었다. 이제 당신의 외손녀 겨우 세 살이다. 귀하신 딸을 내게 주신 장인어른이시다. 당신께서는 몸소 못난 사위를 점찍으셨다. 나는 가난했고, 서른여덟의 노총각이었고, 등기소 하급직원이었다. 그런데도 장인어른은 내 중매를 자청하셨다. 민원인을 가장해 등기소에서 몇 번씩이나 나를 훔쳐봤다고 했다.
아내와 내가 결혼하는 날 장인어른은 중절모를 쓰고 예식장에 나오셨다. 멋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때 장인어른 머리카락은 암으로 다 빠져 있었다. 결혼식 내내 장인어른은 웃음을 흘리셨다. 그 기뻐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미안하오. 나도 잘못 알고 있었소."
나는 억지로 아내를 방으로 데려갔다. 아내에게 눈 좀 붙이라고 했다. 아내가 마지못해 자리에 눕는다. 나는 베란다로 나왔다. 아직도 새벽이다. 가로등 불빛이 밝다.
나는 죄스러움을 느낀다. 사위도 자식이다. 장인어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나다. 그런데도 장인어른 돌아가신 날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만한 불효가 또 어디 있을까. 불효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