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소설] 깜둥이 모세 - 25회

25회 - 한때 인신제물을 받았던 엘(El ; 여호와)신

등록 2005.05.21 08:52수정 2005.05.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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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그렇게 좋은가? 아예 전공을 바꿔서 실용음악과로 가는 게 어떤가?”
학생은 화들짝 놀라면서 이어폰을 빼버렸다. 오카모토 교수는 한숨을 내쉬고 설명을 이어갔다.

“아브라함이 늦둥이 이삭을 얻었을 때 신은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가서 이삭을 인신 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기꺼이 자식을 인신 제물로 바치려는 것을 보고 신은 대신 숫양을 바치게 합니다.


종교인이라면 이 부분을 신앙의 면에서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브라함의 종교개혁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신의 형체를 만들어 섬길 때, 아브라함은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초월적 존재를 ‘설정’했습니다.

남들이 인간을 신의 제물로 바칠 때 아브라함은 동물로도 대신할 수 있다는 종교개혁을 실천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실존인물인가 하는 점은 의문으로 남겨두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아브라함이 한 것처럼, 신의 조각상을 부수고 인신 제물을 거부했다는 것이며, 그것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여기 학생 중에서도 일부는 크리스트교에 심취한 학생이 있을 텐데, 유일신교는 기존 다신교와는 전혀 다른 태생이 아니고 아브라함 같은 종교개혁가에 의해 진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부모님도 한때는 조그맣고 장난치던 아이였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야훼, 혹은 여호와라 불리는 신도 한때는 수소의 뿔을 단, 긴 수염의 조각상의 모습으로 인신 제물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오카모토 교수의 설명에 웅성거리는 찰나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질문 있습니까?”
학생들은 서둘러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을 빠져나갔고 구석에 앉은 프란쯔만이 왼손을 들었다.

“질문 있는데요.”
“도강(盜講)하는 학생의 질문은 받지 않네.”
오카모토 교수는 씩 웃으며 프란쯔에게 다가가 프란쯔의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궁금한 게 뭔가?”


“교수님이 주신 시디롬으로 모세 일가의 가계도를 작성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간단치 않네요.”
“당연하지. 그들은 일가친척이 아니었을 테니까.”
“일가친척이 아니라고요?”
프란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하는데 강의실 뒷문이 열리며 린쳉이 들어왔다.

“프란쯔, 도강을 하루 종일 할 생각이야?”
린쳉은 오카모토 교수의 얼굴을 보더니 애써 입가에 미소를 띠고 인사했다. 서로 아는 척을 하고는 프란쯔는 오카모토 교수에게 계속 질문했다.


“일단은요,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정확히 뭘까요? 르우엘이라고 기록된 곳도 있고 호밥이라는 데도 있고 이드로라고 하기도 합니다. 발음이나 비슷하면 잘못 기록했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이건 아예 발음이 전혀 다르잖아요. 호밥의 경우, 모세의 장인이라면서 르우엘의 아들이라고 적혀 있기도 하고요.”

“누가 누구의 자식이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네?”
“누가 누구의 자식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건, 세습 권력일 때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지. 그런데 말이야, 성경에는 맏아들을 중요시하는 듯 하면서도 맏이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태초의 맏이 가인은 동생 아벨보다 못나서 질투로 살인을 하고, 아브라함의 맏아들 이스마엘은 둘째 이삭보다 인정을 받을 수 없어 쫓겨나고, 이삭의 맏이에서조차 동생 야곱의 자질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오지. 야곱의 자식은 어떤가?

창세기 마지막 부분의 주인공은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이 아니고 열한번째 아들 요셉이란 말이야. 이 전통은 출애굽기에도 이어져, 히브리인의 지도자는 맏이 아론이 아니고 둘째 모세더라 이거야. 그런데 이집트를 탈출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제사장직의 핵심을 이루는 가문은 모세가 아니고 아론의 후세가 돼. 이상하지 않나?”

“듣고 보니 내막이 있는 거 같군요.”
그때 린쳉이 캔커피를 들고 와서 책상 위에 살짝 놓았다.
“고마워.”
린쳉은 두 사람의 뒤에 서서 팔짱을 낀 채로 대화를 들었다.

“신화나 고대 역사에서 형제 서열은 진짜 피붙이 형제의 서열을 뜻하는 게 아니네. 파워 게임에서 이긴 자가 형이 되고 진 자가 동생이 되는 거지. 그건 부자지간도 마찬가지지.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고, 이삭 가문이 아브라함 가문에 흡수될 때 후손들의 융합을 위해 그런 신화를 만들어내는 거야.”

잠시 턱을 긁적거리던 오카모토 교수는 다른 예를 들었다.
“혹시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아나?”
“조금요.”

“한국의 고대 국가 중 백제가 형제 건국 신화가 있는데, 형 비류는 실패하고 동생 온조는 창업에 성공하는 것으로 나오지? 그건 권력을 잡은 온조의 후예가 비류 세력을 만만히 볼 수 없다는 증거가 돼. 온조가 강한 권력을 가졌다면 신화에서도 형으로 나왔겠지만 실제로는 비류 세력이 온조 세력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창업에 성공했으면서도 형이 되지 못한 거지. 두 세력은 내내 서로를 견제하지 않았나 싶어. 왜냐하면 사서마다 백제의 시조가 다르게 나오거든.”

커피를 마시던 프란쯔는 눈을 반짝였다.
“그 예가 아론과 모세에도 적용된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독일인인 프란쯔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겠는데, 아시아 국가에서는 해외에서 학위를 딴 사람을 국내에서 학위 받은 사람보다 우러러본다네.

모세가 아론을 제치고 히브리의 지도자가 된 건 그 비슷한 이유에서일 거야. 모세는 이집트 왕가에 입양된 신화가 있을 정도로 분명 제3자가 보기에도 권위가 있는 무언가가 있었을 게야. 그런데 모세와 아론 사후 아론파한테 밀린 모세파는 아론의 동생으로 편입되는 거지. 좀 뜻밖의 질문 같겠지만 자네, 과학과 신화의 본질적인 차이가 뭔지 아나?”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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