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분별한 폭력, 그 적나라한 실체

김용규·김성규의 지식소설 <다니>를 읽고

등록 2005.05.21 19:07수정 2005.05.2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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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로 보면 침팬지와 인간은 침팬지와 오랑우탄보다 더 가깝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8.4퍼센트가 똑같고, 1.6퍼센트만 다르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의 차이인 3.6퍼센트보다 훨씬 더 작은 것이다. <책 속에서>

500~700만 년 전에 인간의 조상과 침팬지의 조상은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서 각각 다른 길을 선택했다. 좀 더 넓고 눈부신 길을 택했던 인간과 열대우림에서 머물렀던 침팬지는 무수한 세월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유전학적으로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소설 <다니>는 인간의 본성에 잠재해 있는 폭력의 실체와 뿌리를, 유전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를 통하여 찾아보는 김용규, 김성규 형제의 지식소설이다.


지식소설이라니? 소설에 대하여 전문적인 공부를 한 적 없어서 약간은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쳐 읽었다. 그러나 감동스럽게 전개되는 소설의 줄거리에 더해지는 지식의 파노라마에 손에서 놓지 못하고 틈을 노려 정신없이 읽었다.

겉그림입니다
겉그림입니다지안
소설로 보면 지극히 감동스런 한편의 소설이요, 지식 쪽에서 보면 참고 삼아 지식 확장에 큰 몫을 할 생물학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독특한 소재의 이 소설은 또한 인류학과 철학적인 면도 강하다. 소설이라는 씨줄과 지식이라는 날줄이 정교하게 직조되어 한편의 감동으로 남는다.

소설 이론은 물론 생물 생태학이나 인류학이란 개념조차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다만 순수 독자인 나에게 '지식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제대로 알려주는 뜻있는 만남이 되었다.

호기심만으로 펼쳐 들었다가 사바나에서 펼쳐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제니퍼 모건과 지극히 야생적인 침팬지 다니의 순수한 본성의 교감에 한편의 감동스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책에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이 책의 독특한 소재와 풍부한 지식에 누군가든 나처럼 쉽게 빠져들고 말 것이다. 또한,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편승하여 함께 사바나에서 뒹굴며 침팬지의 세계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함께 생각하기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제노사이드(동종 간 무차별 학살, 집단살해)의 한 모습인 중국의 문화혁명으로 부모를 잃은 제니퍼 모건, 그녀는 동물행동학을 전공했다. 제니퍼 모건은 야생에서 침팬지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맡아 탄자니아로 떠난다.


빅토리아호로 이어지는 사바나 나망가 계곡에는 두 집단의 침팬지가 살고 있다. 그녀는 튀들덤과 튀들디라는 이름을 각각의 집단에게 붙여준다. 튀들디 집단과 친해지는 제니퍼 모건에게 다니는 특별하다. 12살 암컷 침팬지 다니는 갓 태어난 새끼를 잃은 슬픔 속에 빠져 있었다. 제니퍼도 다니도 서로의 상처 때문인지 무수한 진화의 세월을 뛰어넘은 교감을 한다.소설 곳곳에서 보이는 이들의 교감은 인간과 침팬지의 구별조차 잊을 만큼 감동스럽다.

나망가 계곡의 땅주인 웨슬리경은 무분별한 벌목을 한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개발이지만 그 이면에는 돈벌이에 대한 욕심뿐이다. 오만스런 인간의 무리한 벌목으로 터전을 잃어 가는 침팬지들 사이에 제노사이드가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경을 비롯한 막강한 힘을 가진 집단에 의해 그들에게 반대하는 힘없는 사람들이 제노사이드 된다. 제니퍼도, 요하네스도…. 힘 있는 자의 무차별 제노사이드에 가담하여 이용 당하는 것도 힘없는 다른 무리들이다. 튀들덤 집단에게 제노사이드 된 튀들디 집단의 살아남은 암컷들은 인간의 전쟁역사처럼 승리한 자들의 성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다니도.


줄거리는 이렇게 몇 줄로 요약하고 말 수 있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인간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며 뻔뻔하게 정당화되는 폭력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끊임없는 폭력에 대한 강한 펀치를 생각할 수도 있다. 개발이라는 문명적인 언어로 무차별적인 자연훼손을 하는 인간에게 울리는 경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갈수록 이기적으로 변해가면서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면 너무 억지일까.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빨리, 고속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고 싶다는 그릇된 욕심만으로 무분별한 개발 계획에 의해 산천을 파헤치고 갯벌을 막으면서 우리들이 유린한 우리 생태계-그 안에 깃든 생명들끼리 살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치고 서로를 뜯어 먹었을까.

글쓴이에 대하여

김용규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서울 한가운데이지만 봄이면 목련도 앵두꽃도 하얗게 피는 검은 벽돌집에서 아내,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지식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이론과 실천 2001)과 영화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영화관 옆 철학카페>(이론과 실천 2002),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이론과 실천 2004), 그리고 십계명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한 <데칼로그>(바다출판사 2002) 등을 펴냈다.

김성규

프랑스 몽펠리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도봉산 자락에서 나무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며 책읽기와 글쓰기가 즐겁다고 한다. 나무들처럼 언제나 의연하게 살아가길 희망하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아끼는 마음으로 다니를 썼다. 소설 <레카피툴라티오>를 펴냈다.(미세기 1994)
"지식을 소설로 읽는다. 소설을 지식으로 읽는다." 소설로 읽어도 감동스럽고 지식으로 읽어도 흥미롭다. 감동스런 줄거리와 함께 끊임없는 질문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식에 밑줄을 긋고 그으며 읽을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인간의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가슴으로 읽어야 하며, 아울러 밑줄 그어 가며 머리로 읽어야 하는 지식소설인 것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이들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운명을 같이한다는 뜻이다!’<책 속에서>"

인간의 끊임없는 폭력에 대한 그 해답을 이렇게 제시해 준다. 결국 하나라는 것. 인간과 인간도, 인간과 만물도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 혼자만의 이익으로 다른 존재에게 행하는 여러 형태의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 부메랑처럼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

덧붙이면, 이 책은 생물학적인 특별한 지식을 원하지 않고 다만 소설로만 생각하여 읽어도 썩 흥미롭다. 청소년이나 일반인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내용이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도 풍부하다.

이 책을 읽으려면 가급 연필 한 자루 쥐어라. 지식소설이라고 자신 있게 표방한 글답게 곳곳에서 나오는 귀중한 지식들은 그냥 읽고 이해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 풍성한 지식들을 눈으로만 읽지 말고 서슴없이 밑줄을 그어라. 제인 구달의 이름에도 다이안 포시란 이름에도 밑줄을 그었다가 다시 의문을 가지고 또 다른 지식의 확장을 시도하라.

덧붙이는 글 | 책명:다니
글쓴이:김용규,김성규
출판사:지안
출판일:2005. 4. 25
책값:1만1000원

덧붙이는 글 책명:다니
글쓴이:김용규,김성규
출판사:지안
출판일:2005. 4. 25
책값:1만1000원

다니

김용규.김성규 지음,
지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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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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