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따먹던 그 시절로 초대합니다

창원 정병산 기슭의 산딸기 군락지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5.05.22 16:58수정 2005.05.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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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마이뉴스>에 가끔씩 기사를 올린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분이 지난 금요일(20일)에 남편에게 이런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창원의 정병산 기슭 사람들이 모르는 장소에 산딸기 군락지가 있어서 지금쯤이면 산딸기가 익어 갈 시기인데, 그 산딸기들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리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무척 좋아할 것이라면서 일요일 오전(5월 22일)에 함께 산딸기 구경을 하러 가자고 하더랍니다.

아내가 하는 일이라면 워낙 외조를 아끼지 않는 남편이기에 저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남편은 그렇게 하자고 그분과 덜컥 약속부터 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제가 남편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은 토요일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두 아이들과 함께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는데, 아들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고 없어 남편과 딸아이, 저는 창원시 사림동의 사격장 아래에 위치한 주차장에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을 했습니다.

저희 가족들에게 산딸기 군락지를 안내하시겠다는 분은 아침 8시에 나오셔서 산딸기가 잘 익어가고 있는지 이미 확인차 다녀오셨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원한 물 한 병,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1회용 커피 몇 개를 넣은 작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딸기 군락지로 향했습니다.

그리 험난하지 않은 산길을 조금 걷다보니 '창원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산뜻한 숲속 바람이 산들산들 느껴지는 것이 기분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이미 아카시아 꽃잎은 떨어져서 산길 여기 저기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손길로 가꾸어진 크고 작은 텃밭이 보기 좋았습니다.


편안하고 넓다란 길에서 벗어나 여러 종류의 풀들이 무성히 나 있는 산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습니다. 질서없이 편안한 자세로 자란 나무들의 가지와 가시에 발길이 저지당하기도 했지만, 기어코 저희 일행은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a 우거진 나무들 속에서 곱게 익은 산딸기

우거진 나무들 속에서 곱게 익은 산딸기 ⓒ 한명라

정병산 중턱 산딸기 군락지에 도착했을 때에 탄성이 절로 날 정도로 많은 덩쿨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a 주저리 주저리 빨갛게 익은 산딸기.

주저리 주저리 빨갛게 익은 산딸기. ⓒ 한명라

그 산딸기들을 발견하는 순간,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불렀던 노래가 떠 올라서 저도 모르게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은 산딸기
지나가던 나그네가 보았습니다.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

잎새 뒤에 몰래 몰래 익은 산딸기
귀엽고도 탐스러운 그 산딸기를
차마차마 못 따가고 그냥 갑니다."

a 산딸기처럼 제 마음도 빨갛게 익어갑니다.

산딸기처럼 제 마음도 빨갛게 익어갑니다. ⓒ 한명라

유난히 선명하게 붉고, 곱게 익은 산딸기를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는 딸아이에게 이 <산딸기> 동요를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딸아이는 처음 듣는다고 합니다.

산딸기를 발견한 일행들은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가시에 찔릴까 조심스럽게 따서 입에 넣어 먹었습니다. 단맛과 새콤한 맛이 동시에 느껴지고, 산딸기 씨앗이 씹힙니다.

a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고스란히 익었습니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고스란히 익었습니다. ⓒ 한명라

제가 태어나고 자라던 고향, 제가 다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근처에는 산딸기 넝쿨이 유난히 무성했고 탐스러웠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던 철없던 그 시절, 우리들은 쉬는 시간이면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따 먹으러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고는 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유난히 그 빛이 선명하고 붉게 단풍이 들던 산딸기 잎들을 보면서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던 적도 있습니다. 인적이 끊이지 않는 산과 들에 자라는 산딸기 넝쿨은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 자취를 감추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은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몇 개의 산딸기를 따 먹는 것으로, 빨갛고 곱게 익어가는 산딸기를 보는 것 만으로,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아 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쓸어 넘어진 나무 가지에 잠시 앉아서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잠시 식혔습니다. 가방에 넣어갔던 휴지 한 장도 그 자리에 남기지 않고 그대로 가방에 담아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산딸기 군락지를 벗어나 돌아오는 수풀 속에는 그 종류를 알 수 없는 짐승의 배설물도 있었습니다. 노루인지, 토끼인지. 유난히 동물에 관심이 많은 아들아이가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아했을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a 알 수 없는 야생동물의 배설물

알 수 없는 야생동물의 배설물 ⓒ 한명라

그리고 수풀 속 누워 있는 나무등걸이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도 자라 있습니다. 선뜻 손을 내밀어 만져 보지 못하고 그 모습만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a 설마 독버섯은 아니겠죠?

설마 독버섯은 아니겠죠? ⓒ 한명라

앞장을 서서 걷던 분이 "앗! 깜짝이야! 뱀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길이 30cm 정도의 검은 뱀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산딸기보다 더 붉고 소담스러운 뱀딸기를 발견했습니다.

뱀딸기를 처음 본다는 딸아이에게 남편은 어린 시절 뱀딸기도 많이 따 먹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린 시절에 저는 뱀딸기를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는데. 뱀딸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뱀딸기도 먹을 수 있는가요?

a 산딸기가 아니예요. 뱀딸기입니다.

산딸기가 아니예요. 뱀딸기입니다. ⓒ 한명라

길이 없는 험난한 산속을 벗어나서 넓게 뚫린 산길로 내려서서 걷다보니,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남긴 바퀴자국에 고인 물 속에 작은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웅덩이에 어느 순간에 올챙이가 헤엄을 치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비가 오지 않는다면,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기 전에 웅덩이의 물이 다 말라버린다면 올챙이는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아카시아 꽃잎이 웅덩이에 떨어져서 올챙이가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습니다.

a 물이 고인 웅덩이에 올망 졸망 모여 있는 올챙이들...

물이 고인 웅덩이에 올망 졸망 모여 있는 올챙이들... ⓒ 한명라

정병산에서 내려 와 주차장 근처의 국수집에서 다리를 쉬면서, 산딸기 군락지로 안내를 했던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등산로가 아닌 곳을 다니다보니, 정병산 구석 구석을 속속들이 잘 아신다는 그 분은 가을이면 싸리버섯이 많이 자란다는 장소에도 안내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1993년 3월 초, 서울에서 창원으로 이사를 와 창원사람이 된 지 12년째 되었지만, 이제까지 창원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또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번에 우연히 산딸기 군락지를 다녀 오면서, 좀 더 창원을 알고, 사랑하고 이해할 줄 아는 진정한 창원시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산딸기 군락지를 다녀 왔지만, 그곳을 훼손하는데 일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제 기사를 보고 잠시 추억에 잠겨 어린 시절의 고향에 다녀 오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산딸기 군락지를 다녀 왔지만, 그곳을 훼손하는데 일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제 기사를 보고 잠시 추억에 잠겨 어린 시절의 고향에 다녀 오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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