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의 깃발은 성요한 기사단으로 남아

중세가 살아 숨쉬는 섬 '몰타' 여행기

등록 2005.05.23 19:07수정 2005.05.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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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의 복장과 몰타의 십자가 문양
기사단의 복장과 몰타의 십자가 문양함정도
몰타행 비행기를 타려고 튀니스공항으로 갔다. 오후 5시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가 시간이 지나도 뜨지를 않는다. 2시간쯤 더 지나서야 직원이 나타나서 문제가 생겼다면서 3시간 후에 출발할 터이니 저녁 먹고 기다리란다. 항공사 직원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가지고 왔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도 티켓을 보여주고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받았다.

내가 봐도 샌드위치가 무지 큰데 모두가 깨끗이 먹어 치웠고 우리만 남겼다. 근데 열시쯤 되자 직원이 나타나서 더 기다리라면서 또 음식을 가져 왔다. “어떻게 또 먹냐”생각했더니, 근데 우리 빼고 다 먹었다. 게다가 유일한 동양인 부부가 안 먹으니까 걱정이 되는지 서로 다가와서 상황을 설명해주고는 공짜니까 먹으라고 난리다. 괜찮다고 해도 영어를 몰라서 못 먹는다고 생각하는지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이러니 서양인들이 비만이 안 될 수 있나.


키 작은(몰타인들은 유난히 키가 작다. 평균 신장 160cm 조금 넘는 정도) 할머니들은 더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름조차 낯선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몰타에 간다니까 서로 나서서 궁금한 점을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영어와 몰타어를 공용어로 쓴다)

저 쪽에서 모여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우리한테까지 서명을 받으러 왔다. 항공사의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 내일 몰타신문에 낼 편지에 사람들의 서명을 받는단다. 편지까지 보여주며 우리도 동참하라고 한다. 서명은 했지만 어리벙벙하기만 하다. 이러다 내일 아침 몰타신문에 나오는 한국인이 되는 거 아냐는 생각을 했더니, 결국 밤 12시에 이륙했다. 몰타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1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20유로를 부른다. 택시 요금 장난 아니다.

몰타는 이탈리아 시실리 섬 아래쪽에 있는 작은 섬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40만(연간 관광객은 120만명)의 미니국가지만 어엿한 EU회원국이다. 몰타리라를 쓰지만 곧 유로화로 바꿀 예정이어서 유로화도 받는다. 사철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어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몰려온다. 우리 영화 '실미도' 수중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라 전체가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이다.

옛날 옛적, 신앙심이 넘쳐나던 십자군 시절, 예루살렘에서 순례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기사들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 그리스의 로도스 섬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주 임무는 주변을 항해하는 기독교도 선박을 보호해 주는 거지만 무슬림 선박을 만나면 약탈하는 거니까 일종의 해적인 셈이다.(물론 무슬림은 반대로 했겠지) 하여튼 엄청난 부를 쌓았다. 성요한 기사들은 주로 귀족의 차남들인데 결혼을 못하는 신분이니 죽고 나면 재산은 모두 기사단으로 귀속되었다. 이 것 때문에 성요한 기사단은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낭만적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스만 튀르크 군대에게 쫓겨 멀고 거친 섬 몰타로 올 때에도 보물을 그대로 챙겨 와서 최초의 계획도시를 건설하였다. 너무나 훌륭하게 만들어서 지금도 그 때의 성벽이나 요새, 석조건축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영화 '트로이'중 전쟁장면과 바닷가 장면도 그렇고 '글래디에이터'에도 나온다. 요즘 상영하고 있는 '킹덤 오브 헤븐'의 중세 도시가 현실로 되살아난 느낌이다.


영화에서 보듯이 십자군은 하얀 바탕에 끝이 갈라진 빨간 십자가(혹은 빨간 바탕에 하얀 십자가)를 사용했는데 성요한 기사단의 주요 제복이 되었다가 지금까지 몰타국기와 모든 상징에 빨간 십자가를 쓴다.

뉴스에도 잘 안 나오는 조그만 나라, 왕이 아닌 기사단장이 통치하던 조그만 섬나라, 아직도 중세가 살아 숨 쉬는 환상의 섬을 마침내 밟았다.


몰타 구시가지 전경
몰타 구시가지 전경함정도
새벽부터 울리는 종소리에 잠을 깼다. 유럽에서 가장 독실한 신자들이 사는 나라라서 그런지 성당마다 종을 울리고 있었다. 호텔 앞에 교복 입은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비는 전혀 없고 부모들이 교회에 기부금을 낸다고 했다. 학교가 모두 교회에 부속되어 있었다.

구시가지 골목길
구시가지 골목길함정도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한가하게 거닐거나 아침운동을 하는 시민들이 보였다. 좁고 예쁜 현관에다 화분을 놓아두고 작은 발코니에 장대를 걸쳐서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이 꼭 이야기 속의 호빗 마을에 와 있는 것 같다. 친절하고 느긋한 사람들이다.

성 요한의 성당 내부
성 요한의 성당 내부함정도
버스를 타고 성문 앞으로 갔다. 여기부터 구시가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성 요한의 성당이다. 두 개의 종탑이 있는 길쭉한 모습의 성당이다. 기사들의 공동예배를 위해 모금하여 세웠다고 한다. 본당의 가장자리에는 8개의 격실이 있는데 각국 언어로 예배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첫 번째는 독일 기사단의 방이 있으며 각 나라들의 특색을 살려 장식했다. 가장 화려한 곳은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아라곤(스페인)기사의 예배실이다. 바닥도 하나하나 섬세하게 이어 붙인 대리석 타일이다. 밟고 서 있기가 송구스럽다. 로도스에서 가져 왔다는 성모상은 은으로 된 문 너머로 보였다. 금은으로 꾸며진 여러 방에는 유명작가들의 성화가 천정과 벽을 빈틈없이 장식하고 있다. 역대 기사단장의 유해는 지하에 있고 초상화는 복도에 길게, 길게 걸려 있다.

대 영주의 궁전 복도의 기사 갑옷
대 영주의 궁전 복도의 기사 갑옷함정도

대 영주 궁전 복도를 장식하고 있는 중세 기사들의 복장과 무기들
대 영주 궁전 복도를 장식하고 있는 중세 기사들의 복장과 무기들함정도
대영주의 궁전은 지금도 대통령궁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일부만 개방하고 있었다.

성 요한 기사단의 지하 병원 입구
성 요한 기사단의 지하 병원 입구함정도
성 요한의 병원은 지하에 있는 으스스한 장소이다. 좁고 어두운 돌계단을 구불구불 내려가면 당시의 병원모습을 재현해 놓은 인형들이 피를 흘리고 붕대를 칭칭 감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게다가 감옥까지 겸하고 있어서 복잡한 미로 구석구석에 창살도 보인다. 아내는 무섭다며 빨리 나가자고 조르지만 나가는 곳을 잘 몰라서 길을 따라가야만 했다.

성 엘모 요새 입구
성 엘모 요새 입구함정도
마침내 바깥으로 나와서 성벽에 올랐다. 밝은 햇살아래 지중해의 잔잔하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손을 꼭 잡고 기념품을 고르는 노부부가 다정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관광객은 서구인들이다. 아시아에서 온 사람ㅇ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닷가 성벽이 시가지를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다. 실제로 다시 터키군이 공격해 왔을 때 이 요새화 된 성벽을 뚫지 못해 물러갔다고 한다. 성 엘모 요새는 현재 경찰학교와 전쟁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2차 대전 때 이곳에 있었던 치열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 바닷가에 세워져 있었다.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몰타 시민들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몰타 시민들함정도
늦은 오후, 갑자기 경찰들이 대통령궁 근처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성문부터 궁전까지 시위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을 하고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달려와서 찍어 대고 경찰은 연방 호각을 불어 대고 난리였다. 시위의 이유를 궁금해 하던 아내가 시위대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번에는 몰타방송에 나올까봐 겁이 나서 말렸다) 구호는 'movement graffic' 그러니까 건물 벽에 색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라서 페인트칠이 금지되어 있고 꼭 하고 싶으면 흰색으로 칠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소박한 요구지만 이곳에서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할 것 같다.

구시가 발레타 성의 야경
구시가 발레타 성의 야경함정도
어둠이 내린 구시가지 성벽에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성벽을 멀리서 감상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과일가게에서 체리 한 봉지를 샀다. 조명을 받은 아름다운 발레타 성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달콤한 체리 향이 입 안 가득 번지고 눈앞의 야경은 잊지 못할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성요한 기사단은 1798년 나폴레옹에게 쫓겨나 모스크바, 시실리, 페라라 등을 전전하다가 한 독지가의 기부로 19세기중반 부터 로마의 한 건물에 자리 잡았다. 유명 상점가가 늘어 선 콘도티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바티칸과 더불어 이탈리아 안에 있는 독립국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2005년 1월 아직도 중세가 살아 숨쉬는 나라 몰타를 다녀온 여행기 입니다. 안락답사회 홈페이지(http://hamjunhdotour.netia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2005년 1월 아직도 중세가 살아 숨쉬는 나라 몰타를 다녀온 여행기 입니다. 안락답사회 홈페이지(http://hamjunhdotour.netia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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