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의 복장과 몰타의 십자가 문양함정도
몰타행 비행기를 타려고 튀니스공항으로 갔다. 오후 5시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가 시간이 지나도 뜨지를 않는다. 2시간쯤 더 지나서야 직원이 나타나서 문제가 생겼다면서 3시간 후에 출발할 터이니 저녁 먹고 기다리란다. 항공사 직원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가지고 왔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도 티켓을 보여주고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받았다.
내가 봐도 샌드위치가 무지 큰데 모두가 깨끗이 먹어 치웠고 우리만 남겼다. 근데 열시쯤 되자 직원이 나타나서 더 기다리라면서 또 음식을 가져 왔다. “어떻게 또 먹냐”생각했더니, 근데 우리 빼고 다 먹었다. 게다가 유일한 동양인 부부가 안 먹으니까 걱정이 되는지 서로 다가와서 상황을 설명해주고는 공짜니까 먹으라고 난리다. 괜찮다고 해도 영어를 몰라서 못 먹는다고 생각하는지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이러니 서양인들이 비만이 안 될 수 있나.
키 작은(몰타인들은 유난히 키가 작다. 평균 신장 160cm 조금 넘는 정도) 할머니들은 더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름조차 낯선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몰타에 간다니까 서로 나서서 궁금한 점을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영어와 몰타어를 공용어로 쓴다)
저 쪽에서 모여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우리한테까지 서명을 받으러 왔다. 항공사의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 내일 몰타신문에 낼 편지에 사람들의 서명을 받는단다. 편지까지 보여주며 우리도 동참하라고 한다. 서명은 했지만 어리벙벙하기만 하다. 이러다 내일 아침 몰타신문에 나오는 한국인이 되는 거 아냐는 생각을 했더니, 결국 밤 12시에 이륙했다. 몰타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1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20유로를 부른다. 택시 요금 장난 아니다.
몰타는 이탈리아 시실리 섬 아래쪽에 있는 작은 섬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40만(연간 관광객은 120만명)의 미니국가지만 어엿한 EU회원국이다. 몰타리라를 쓰지만 곧 유로화로 바꿀 예정이어서 유로화도 받는다. 사철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어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몰려온다. 우리 영화 '실미도' 수중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라 전체가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이다.
옛날 옛적, 신앙심이 넘쳐나던 십자군 시절, 예루살렘에서 순례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기사들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 그리스의 로도스 섬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주 임무는 주변을 항해하는 기독교도 선박을 보호해 주는 거지만 무슬림 선박을 만나면 약탈하는 거니까 일종의 해적인 셈이다.(물론 무슬림은 반대로 했겠지) 하여튼 엄청난 부를 쌓았다. 성요한 기사들은 주로 귀족의 차남들인데 결혼을 못하는 신분이니 죽고 나면 재산은 모두 기사단으로 귀속되었다. 이 것 때문에 성요한 기사단은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낭만적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스만 튀르크 군대에게 쫓겨 멀고 거친 섬 몰타로 올 때에도 보물을 그대로 챙겨 와서 최초의 계획도시를 건설하였다. 너무나 훌륭하게 만들어서 지금도 그 때의 성벽이나 요새, 석조건축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영화 '트로이'중 전쟁장면과 바닷가 장면도 그렇고 '글래디에이터'에도 나온다. 요즘 상영하고 있는 '킹덤 오브 헤븐'의 중세 도시가 현실로 되살아난 느낌이다.
영화에서 보듯이 십자군은 하얀 바탕에 끝이 갈라진 빨간 십자가(혹은 빨간 바탕에 하얀 십자가)를 사용했는데 성요한 기사단의 주요 제복이 되었다가 지금까지 몰타국기와 모든 상징에 빨간 십자가를 쓴다.
뉴스에도 잘 안 나오는 조그만 나라, 왕이 아닌 기사단장이 통치하던 조그만 섬나라, 아직도 중세가 살아 숨 쉬는 환상의 섬을 마침내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