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손학규 전투' 손익계산서

차기주자 존재부각은 성공했지만... 으르렁 대지만 닮은 두사람

등록 2005.05.23 16:29수정 2005.05.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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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해찬 총리와 손학규 경기도지사 사이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지난 7일 총리 주재로 열린 수도권발전대책협의에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뒤 불거진 양측의 대결은 일단 손 지사의 판정승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나, 이에 대해 이 총리측은 매우 불쾌한 표정이다.

이 총리는 지난 20일 취임 1주년에 앞서 기자들과 3시간에 걸친 간담회를 갖고 자칭 "대선기획으로는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경험자"라며 손 지사를 겨냥한 가시 돋힌 말들을 쏟아냈다.

이 총리는 '대권 자질론'을 펼치며 현재 시도지사 중에는 대통령감이 없다고 일갈했고, 손 지사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것에 대해서는 "정치인으로나 행정가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재반격했다. 또한 이 총리는 "정치적으로 나는 고수에 속한다며 손 지사는 아래라도 한참 아래"라고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지난 22일 손 지사 역시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를 찾아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손 지사는 일본 출장에 앞서 수도권 규제완화의 입장을 재차 설명하려고 마련한 자리였으나 기자들이 총리의 발언을 전하자 "원래 이 총리 입이 거친 것은 다 알지 않냐", "정치는 나보다 한수 위인지 모르지만 행정과 경제는 0점"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총리와 경기지사의 공방은 그렇게 재점화되었다.

손학규 지사 측의 '성적표'

이해찬 총리와 손학규 경기지사의 대립은 애초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입장차에서 불거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야 차기 대권주자간의 자존심 대결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까지 가세해 확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오만불손한 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역 주민을 볼모로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손 지사와 한나라당은 좀더 여유 있는 표정이다. 손 지사는 일본 출장을 다녀와 정부와 한판 붙겠다고 공언했고, 한나라당은 정부의 공공기관에 대한 타당성, 효율성 등을 따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나라당은 총리를 상대로한 손 지사의 '맞짱'에 대해 일단 속이 후련하다는 분위기다. 17대 국회 들어 한나라당은 이 총리를 발언대로 불러냈지만 이렇다할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야당 시절에 터득한 전투력과 5선의 정치경륜을 갖춘 총리의 노련미와 능변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손 지사는 달랐다. 명분을 손 지사측에서 선점한 결과다. 손 지사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상당수 의원들이 반대한 행정도시특별법에 찬성하면서 그 후속대책을 정부여당과 협의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시장과의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긴 했지만, 총리와 여당의 정책위의장을 만나 수습책을 논의하는 야당 자치단체장의 모습은 정략을 떠난 '통 큰 정치'로 비쳐졌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기업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 등 구체적인 경제 현안을 놓고 이 총리에 맞서는 모습을 보인 손 지사는 그간의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논리와 한나라당의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동시에 틀어쥐었다는 평가다.

손 지사의 한 측근은 "극단의 하나를 취해야 하는 한국 정치판에서 손 지사의 합리적 자세는 평가받지 못해왔다"며 "하지만 이번만큼은 외눈박이가 아닌 양눈박이로 세상을 보자는 손 지사의 소신이 제대로 드러났다"고 자평했다.

또 내부적으로 당내 MB(이명박)계로 통하는 '수투위(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상임대표 이재오)'를 압도했다. 수투위는 행정도시특별법을 '제2의 수도분할' 시도라며 박 대표 체제를 흔들었지만, 현재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해서는 찬성-반대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하고 있다. 찬성할 경우 자신들의 전술적 오류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잠재적 대권 후보로 통하는 손 지사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존재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다. 더욱이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싸움으로 비견되는 경기도지사와 총리의 대결이니만큼 두 사람의 백병전에서 손 지사는 저절로 '업그레이드'되는 효과를 얻은 셈이다.

그러나 손 지사의 이번 '총리 대전'은 단기적으로는 호재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존재 부각에는 성공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며 "더욱이 대권의 꿈을 꾸고있는 지도자 입장에서 경기도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인상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수도이전 공방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서울공화국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샀듯, 손 지사가 공공기관 이전을 수도권 규제 완화와 연계하는 모습은 스스로를 경기도의 틀 안에 가두어두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해찬 총리 측의 '성적표'

이 총리 역시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아보인다. 자신의 대권 출마설과 관련해 이 총리는 "공익근무만 18년 했고 해볼 것은 다 해봤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냐"며 부인했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더욱이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리는 남북 장관급 회담 성사와 관련해 "지난달 자카르타에서 남북당국자회담에 대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재개하자고 사실 합의했다"며 "위(김영남 위원장)에서 얘기했으니까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해 자신의 공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김영남 위원장과의 만남 이후 정동영 통일부 장관측에서는 이 총리를 잠재적인 대권 경쟁자로 보는 견제 시각이 높아졌다는 것이 정계 반응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 손 지사와의 대립에서 이 총리측에도 딜레마가 있을 것이라며 "최대 국정 현안인 경제활성화에 대한 총리의 입장이 매우 수세적으로 전달되었다"고 말했다. 싸움이 오래 가면 둘 다 다친다는 결론이다. 실제 정치권 주변에서는 공공기관 이전 문제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려면 둘 다 개인 감정과 정치적 계산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로 으르렁 대도 닮은 데 많은 두사람
민청학련 사건 투옥·수배... 학생운동은 손학규, 정치는 이해찬 "내가 선배"

보름째 감정의 골을 드러내고 있는 이해찬 총리와 손학규 경기도지사. 하지만 이들의 이력은 닮은 데도 많다. 이 총리와 손 지사는 각각 서울대 사회학과(72학번), 정치학과(65학번)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벌인 '운동권 1세대'로 꼽힌다.

학번은 한참 후배지만 정계입문은 이 총리가 빨랐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굵직한 민주화 운동 사건들에 연루되면서 오랜 재야생활을 거쳤고 1988년 14대 국회에 입문했다.

손 지사는 6·3 한일회담 시위에 가담하는 등 대학시절 3번의 무기정학을 당했고, 대학졸업 후에는 구로공단에서 공장 노동자 생활, 청계천에서 빈민운동을 했다. 손 지사의 정계 입문은 많이 늦다. 손 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감옥에서 풀려났고, 80년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13년만인 1993년 신한국당 당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 총리와 손 지사는 유신에 저항한 긴급조치·민청학련 세대로도 함께 묶인다. 1973년 이 총리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고 손 지사는 배후조종 혐의로 수배를 받았다.

손 지사는 YS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노인, 여성, 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총리는 DJ 정부가 들어서고 초대 교육부장관을 맡으면서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대학입시정책'에 매스를 들이댔다. 그리고 지금은 각각 행정부를 통할하고 수도권 행정을 책임지는 위치로 만났다.

무엇보다 둘은 차기 대권의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직은 눈에 띄는 지지율은 아니지만 잠룡 하마평에 늘 오르내린다. 수치상으론 이 총리가 다소 앞서지만 양측 모두 2%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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