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게임사이트 아이디 좀 빌려줘"

청소년이 할 만한 게임이 없다

등록 2005.05.23 21:32수정 2005.05.2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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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전쯤 중학교 1학년 아들녀석이 저를 쳐다보며 히죽 웃었습니다. 뭔가 아쉬운 게 있나 봅니다. 같이 웃어 주었습니다.
“아빠, 부탁할 게 있는데….”
“무슨 부탁?”

아들 녀석의 부탁은 모 게임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였습니다. 제걸 알려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 사이트에 네 아이디도 있잖아. 그 아이디에 무슨 문제가 있어?”
아들 녀석이 몸을 배배 꼬더니 사실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15세 관람가 게임을 해야 하는데, 자기의 아이디로 접속인 안 되니 아빠인 저의 아이디로 접속하여 게임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대답은 당연히 “안 돼”였습니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통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챈 아들 녀석이 힘없이 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제 똑같은 대화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제 대답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아들 녀석이 조금 더 도전적입니다.
“친구들 하는 거 보니까 잔인한 게임도 아니고, 칼싸움 하는데 피도 안 나와.”
“그 친구들은 어떻게 한데?”

“우리 반 친구들 중에 그 게임하는 친구들이 많아, 아빠, 엄마 아이디로 한대.”
“그래도 안 돼, 아이들에게 아이디 만들어준 아빠, 엄마가 더 나빠, 난 나쁜 아빠 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 게임하는 친구들 이름 알려줘, 아빠가 그 친구 엄마, 아빠에게 항의 할 거야.”

이쯤 되면 아들 녀석도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런 게임 아니면 내가 할 만한 게임이 없어.”
“할 만한 게임 없으면 그냥 책이나 보면 되겠네.”
두 번째 승리입니다.

하지만, 이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들 녀석은 앞으로도 가끔씩 그 부탁을 할 것 같았습니다. 문득 그 게임이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할 만한 게임이 없는지 그것도 궁금했습니다. 그 자료를 찾다가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첫 번째로 놀란 것은 많이 청소년들이 엄마, 아빠의 아이디로 게임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은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게임에 대한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질문하고 답변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트에서 게임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나이가 15세가 안되었는데, 성인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질문하고 답변한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답변입니다. 대부분의 답변은 아빠나 엄마, 또는 형이나 언니 등 15세 이상의 아이디를 어떻게든 이용하도록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이미 엄마, 아빠의 아이디로 그런 게임을 하는 것을 자랑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청소년들이 할 만한 게임이 정말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영상물등급위원회 자료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게임이나, 영화 등의 연령별 등급을 정해 주는 곳입니다.


아들이 하겠다던 게임을 찾아보니 15세 이용가와, 18세 이상 이용가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원래 18세 이상인데, 청소년까지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잔인한 부분을 조금 바꿔 15세까지 가능하게 했다고 합니다. 18세 이상으로 구분된 구체적인 사유를 알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각 포털에 올린 글로 보아 “폭력적인 장면”이 문제가 되는 듯했습니다.

a 2004년 등급통계를 보면 청소년들의 게임이 정말 적은 비율입니다.

2004년 등급통계를 보면 청소년들의 게임이 정말 적은 비율입니다.

그런데, 영상물 등급위원회의 지난해의 통계 수치 자료를 보다가 문득 아들 녀석이, 아니 그 나이 또래의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정말 할만한 게임이 없을 듯했습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통계 중 지난 2004년의 1년간 자료를 보면 PC게임, 온라인게임, 아케이드 게임등 3개 분류에서 2598건이 허가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 18세 이상 등급이 1436(55.3%)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 이용가가 1047건(40.3%)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연령에 맞는 등급으로 통과된 것은 12세 이상 57건(2.2%), 15세 이상 58건(2.2%)으로 중고등학교 학생의 연령대의 등급을 모두 합쳐도 5%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전체 이용가까지 포함한다면 등급을 허가받은 전체에서 45%정도 되는 게임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할 수 있지만, 전체 이용가의 대부분은 유치원생을 위한 게임들이니 우리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게임이 별로 없는 것이지요.

앞으로 아들 녀석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물론 게임을 하게 해주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니 다른 어른들께서도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우선은 청소년의 자녀들이 해롭다고 하는 게임을 부모님들의 아이디로 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확인해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은 그 게임이 잔인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 게임을 하는 것이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를 보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요?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게임을 만들고 있는 분들도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정서에 맞고, 청소년들이 시시해 하지 않을 그런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지요. 물론, 쉬운 부탁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게임산업의 강국이니,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겠습니다.

아들과 게임 이야기를 하며 제 학창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저 역시 게임을 좋아합니다. 고등학교시절에는 대학 입시의 불안과 긴장을 가끔씩 전자오락실에서 풀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게임이 무조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죠?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적당한 게임을 선택하고, 적당하게 즐길 수 있도록 부모님들의 도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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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홈페이지 초록별 가족의 여행(www.sinnanda.com) 운영자 입니다. 가족여행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좀 다 많은 분들이 편한 가족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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